<슈즈트리> SBS 뉴스
예술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서울역사 앞에 위치한 <슈즈트리> 소문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환경예술가 황지해 작가가 설치한 이 작품은 ‘흉물스럽기 짝이 없기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러한 사람들의 반응이 흥미롭게 다가온 건, 어쩌면 내 목숨이 다해도 영원히 결론짓지 못할 ‘예술 대(vs) 쓰레기’의 담론이 또다시 각축의 설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슈즈트리>를 두고 ‘모양새’를 지적하며 육두문자를 남발하는 이도 있었고, ‘서울로 7017’ 개장을 앞두고 서울시가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렸다고 평가하는 이도 있었다. 결국 야심차게 준비한 것 치곤 너무 짧게 운명을 달리했지만(해당 작품은 9일 만에 철거됐다), ‘신발나무’를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는 건 나뿐일까.
팽이의자(SPUN) 제험존
하나, 정 가운데 앉아서 두 손으로 의자를 꽉 잡는다.
둘, 좌측 또는 우측으로 천천히 몸에 힘을 주어 돌린다.
그러던 지난주, 심심하면 들르곤 하는 DDP 근처(현대시티아울렛)에서 신기한 설치물을 발견했다. ‘저게 뭐야?’라는 의문이 들기도 전에 ‘저것은 의자다!’라는 직관적인 판단이 섰지만, 그 자태가 흥미롭기만 하다. 역시나 나처럼 작품에 시선이 강탈당한 사람들은, 몇 초 동안 고개를 갸우뚱하다 이내 그 쓰임새를 판단하고 엉덩이부터 들이댄다.
팽이의자(SPUN),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rtherwick)
우리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명성을 얻고 있으며, 건축, 조형, 도시계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만의 독창성과 혁신성을 인정받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디자이너다.
그렇다. 의자는 팽이였고, 팽이는 의자였던 것이다. 사람들 틈에 섞여 신나게 팽이를 돌리고 나니 어렴풋이 <슈즈트리>가 떠오른다. 그렇다면 <슈즈트리>와 <팽이의자>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진짜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고, 나아가 ‘예술의 가치’가 어디서 결정되는지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도 그럴게 <슈즈트리>는 ‘보기 쫌 그렇다’며 욕을 먹기도 먹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네거티브) 홍보효과는 숫자로 책정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었다. 반면, 이미지도 좋고 재미까지 있는 <팽이의자>는 긍정적인 디자인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크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진 않고 있다. 이쯤에서 또 유의미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아무래도 긍정적인 메시지보다는 부정적인 메시지에 반응하고 머릿속에 각인시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여전히 ‘노이즈 마케팅’기법이 존재하고 통하는 거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작품 하나로 이런 생각까지 이르게 하다니 예술은 정말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