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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ART ROAD] 그리며 하는 세계일주 : 내 손으로 느낀 아프리카

14.02.13 2
[365 ART ROAD] 그리며 하는 세계일주 4화
내 손으로 느낀 아프리카

 

No. 114
<Serengeti in my hand>, Serengeti, Tanzania

 

 
 

No. 105
<A girl 2>, Zanzibar, Tanzania


여행을 시작한지 4개월째에 도착한 검은 나라 아프리카 대륙. 나에겐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던 곳. 그 곳을 이제 밟고 지나갈 생각을 하니, 걱정보다는 흥분이 더 되었다. 나에게 펼쳐질 아프리카 스토리. 그 기억들이 아직도 참 생생하다.

아프리카 여행 이전에는 그림에 색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프리카 대륙에 발을 디디는 동시에 내 스케치북에는 색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색이 들어감에 신기하고 즐거웠다. 아프리카 여행은 남아프리카-나미비아-보츠와나-짐바브웨-잠비아-탄자니아-케냐-마다가스카르-에티오피아-이집트 약 6개월간의 여정이었다. 물론 편한 여행지는 아니었지만, 개인적인 작업의 면에서는 굉장히 즐겼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음식도 매일 먹으면 질리고,
좋아하는 사람도 매일 같이 있으면 지치고,
좋아하는 장소라도 계속 있으면 지겹다.

나는 좋아하는 그림을 매일 같이 그렸다. 질릴 만도 한데 질리지 않은 것을 보면 이것이 진짜 ‘내 것’이구나 라고 느꼈다.

 

No. 112
<Mother>, Serengeti, Tanzania

 

No. 115
<Horns>, Serengeti, Tanzania

 

 

‘3주간의 동고동락 트럭투어’

 

- 일몰을 바라보며


남아공 케이프타운이 나의 첫 아프리카 도시였다. 벨기에, 스위스, 독일, 영국, 아르헨티나 그리고 한국. 총 12명의 친구들이 모여 캠핑트럭을 타고 남아공,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를 여행하는 일정이었다. 이전에도 여행을 하면서 외국친구들을 많이 만나보고, 함께 며칠 씩 여행도 함께 했었지만, 하루 이틀이 아닌 3주간 같이 살다시피 하면서 계속 여행을 하는 것은 이전의 경험들과는 달랐다. 그리고 12명의 멤버 중 나 혼자만 아시아인이었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하는 설레임과 동시에 약간의 걱정도 함께 공존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했던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하루하루가 나에겐 선물과도 같았다. 여행을 하기위해 온 친구들이라 그런지 자신들과 다른 것에 대한 받아들임과 이해심이 깊었다. 그리고 ‘재미’가 뭔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No. 82
<Camping>, South Africa

 

No. 84
<Tree and animals>, Namibia

 

No. 85
<Dune45>, Namibia


매일같이 캠핑장에서 큰 텐트를 치고 안에 매트리스를 깔고 침낭 안에서 잠을 청하고, 아침에 일어서 각자의 텐트를 정리하고 식사시간마다 트럭에 있는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모기에 함께 뜯기고, 뜨거운 술 한 잔에 몸을 풀고, 초원을 달리는 아프리카 동물들을 보며 함께 환호하고, 지나가는 사자의 움직임에 함께 숨을 죽였으며, 달리는 트럭 안에서의 신나는 댄스파티에 서로가 전혀 어색해 하지 않았고, 새벽같이 일어나 사막 정상을 향해 서로 등을 밀어주며 등반했고, 하마가 사는 늪지대에서 긴장하며 함께 배에 노를 저었으며, 정글 속 천연 수영장 웅덩이에서 어린아이들처럼 함께 물장구를 쳤고, 짧았지만 소나기 같은 사랑에 빠져보기도 했으며, 빅토리아 폭포 111m에서 아찔했던 번지점프의 경험을 함께 공유했으며,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 사랑이 더욱 깊어졌고, 그 우정은 더 찐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진지한 이야기들에 함께 눈물 흘려줄 수 있는 사이가 되어갔다.

 

No. 86
<Sand boarding>, Namibia

 

No. 88
<Himba Tribe woman>, Namibia

 

No. 95
<Bungee jumping>, Victoria falls, Zimbabwe

 

- 트럭에서 한바탕 춤추기

 

- 내 몸에 그림을 그려주는 친구들


3주간의 이야기를 풀자면 끝도 없겠지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내가 그 3주 동안의 모든 하나하나를 다 기억한다는 것이다. 절대 잊을 수도. 잊기도 싫은 시간들이었다. 밤마다 불을 지피고 둥글게 둘러 앉아, 노래를 부르고 얘기를 하며 하루를 정리하던 그 밤들이 그립다. 빛이 없는 밤에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 계속 손전등을 들고 비춰주던 친구들.

“수로야 어제는 뭐 그렸어? 오늘은 뭐 그릴 거야?”

항상 큰 관심으로 지켜봐 주던 그런 사람들이었다.

나는 수영을 못하는 아이었는데, 이 여행 동안 나를 열심히 가르쳐준 친구들 덕분에 나는 지금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그냥 여행친구들이 아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 같은 편안한 동기 같았고, 인생을 가르치는 선생님 같았고, 아무 말 안하고 있어도 마음을 편하게 하는 가족 같았다. 짧고도 긴 약 3주라는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세계 각국에 가족 같은 친구들이 생겼다.

보고 싶다 친구들아!

 

- 트럭투어 가족같은 사람들과 함께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르다’
- Kilimanjaro, Tanzania

 

-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해발 5,895m 킬리만자로 트레킹, 탄자니아에 도착해서 가장 하고 싶었던 도전이었다. 내 생에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하지만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최고봉이다.

4박 5일간의 등산. 해발 4000m까지는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4500m에 도달하면서 부터 나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고산 증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 고산 증 약을 먹어도 내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우선 몸이 너무 무겁고 숨쉬기가 힘들었으며, 심한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마지막 정상에 오르는 날에는 새벽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등산을 시작한 초반부터 정상에 오르기까지 구토와, 계속되는 심한 두통과 미식거림, 호흡문제와 싸워야했다.

‘정말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정말 미치도록 힘들었다.

보통 성수기 때는 정상부근에 눈도 심하게 쌓이지 않고 날씨도 좋아 오르기에 이렇게 까지 힘들진 않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산에 오르는 사람이 별로 없는 비성수기로, 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눈은 종아리까지 덮어갔고, 휘몰아치는 눈발은 온통 주변을 다 하얗게 만들었다. 마지막 정상을 찍고 오는 Big day에는 숙소에서 새벽 1시에 출발. 정상에 오후 3시 도착, 다시 숙소로 하산하기까지 내리 20시간을 걸었다.

올라갈 때 베이스캠프에서 만났던 몇몇 여행자들이 중도에 포기하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끝까지 갈꺼야.라고 한 번 더 다짐했었지. 정말 미치도록 힘들고 지금생각해도 아찔하기까지 했던 산행이었다.

 

- 킬리만자로 트레킹 멤버들과


정말 내가 이 상황에서도 정상에 올라 웃으며 사진을 찍고 아픈 다리를 끌며 산을 내려와 다시 또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큰 힘이 되 주었던 동행과 가이드친구들 덕분이었다. 내가 너무 힘들어 쫒아가지 못할때면 가던 길을 다시 돌아와 나를 끌고 올라가주었고, 눈발에 꽁꽁 얼은 몸에 고산 증까지 더해져서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바로 침대에 쓰러져 누워버린 나에게 와서 손수 신발을 다 벗겨주고 차가운 발을 마사지 해주던 Shafii. 온통 눈뿐이던 정상에서 눈에 화상을 입어 빨개진 눈으로도 우리를 끝까지 가이드해 주며 챙겨줬던.. 자신들은 잘 못 먹어도 끼니때마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했던 요리사친구들.. 우리의 무거운 짐을 아무런 도구 없이 어깨에, 머리에 메고 말없이 산을 오르던 포터들.

이 어찌 나만의 의지만으로 됐을 일이었던가 싶다. 이건 정말 이 사람들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산에서 내려왔을 때 나는 5일전과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모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4박 5일간의 짧다면 짧은 길 다면 길수도 있는 시간이었지만, 조금 과장하자면 정말 인생을 한 번 더 경험한 느낌이었다. 진짜 우리가 사는 길이 이와 너무 같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힘든 일, 큰일을 할 때에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는 견뎌내기도 올라서기도 힘들다. 주변의 크고 작은 도움들을 발 돋음 삼아 우리는 나아가고 있는 것. 그래서 항상 모든 일을 무사히 마쳤을 때는 내 자신에만 만족하고 거만해 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의 길에서 나와 함께하고 도와주었던 감사한 사람들에게 먼저 감사할 일이었다.

5일을 겪고 내 삶에 대해 한 번 더 반성하고 깊이 감사할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 힘들었지만 그 5일은 정말 내 인생의 값진 경험이었다.

 

No. 110
<Red hot pocker>, Kilimajaro, Tanzania

 

No. 111
<Snacial Tree>, Kilimajaro, Tanzania

 

 

‘마음의 크기’
- Nairobi, Kenya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나에게 심어준 경험. 파란만장했던 킬리만자로 트레킹(trekking)의 추억을 남겨준 탄자니아 모시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아프리카의 뉴욕이라 불리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로 향했다.

이제는 버스가 정시에 출발하면 어색하다. 내가 시간에 늦은 날이라 할지라도 버스를 놓친 적이 한 번도 없다. 왜냐 하면 이곳의 버스들은 어김없이 늦게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아, 또 늦게 출발해.’라고 짜증내지 않고 기다리는 여유가 생겼다. 이번에도 역시나 버스는 40분 정도 늦게 출발했다. 달리고 달린 버스는 중간에 탄자니아 국경에서 스탬프(입국 허가 도장. 세 달 싱글비자가 50달러였음)를 받고, 국경을 넘어 저녁 9시쯤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이동하는 7시간 동안 버스에서 알게 된 옆자리 아저씨가 늦게 나이로비 도착하면 위험하니 숙소를 찾거나 길을 알려준다고 했는데 도착해서 짐을 찾고 나니 바람과 같이 사라지셨다. 그 아저씨만 믿고 있었는데, 혼자 남게 된 나이로비의 밤거리.

나이로비는 아프리카의 다른 도시에 비해 크고 발전한 대도시이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외국 여행자들은 어딜 가나 범죄의 표적이 되기 마련이고, 특히나 밤에는 혼자 다니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그런 나이로비에서 특히나 큰 배낭을 앞뒤로 메고, 어리둥절 헤매는 동양 여자아이가 얼마나 눈에 띄었을까. 하이에나처럼 다가와 주렁주렁 말을 걸어대는 사람들을 피해가며 불안감에 가득 차 허둥지둥 걸어가고 있을 때, 한 여자 분이 나의 팔을 잡으셨다. 한 곱슬머리 흑인 아줌마였다.

“혼자예요? 여기 위험한데, 여기서 혼자 뭐해요. 여기 내 옆으로 와서 서 있어요. 거기 그렇게 돌아다니면 이 사람들 계속 괴롭힐 거예요.”

그녀의 이름은 로즈메리. 그녀는 함께 있던 그 분의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흔쾌히 숙소 찾는 것을 도와주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시간이 너무 늦어 이미 마땅한 숙소가 없었다.

“오늘 밤 너무 늦었으니, 괜찮다면 우리 집에서 하루 밤 보내고 가도 돼요.”

그 진심이 묻어나는 말에 나는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함께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나이로비 시내에서 꽤 외곽에 위치한 허름하고 가난한, 일종의 ‘판자촌’에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철판으로 지어진 창고 같은 작은 집들 중에 로즈메리의 집이 있었다.

들어서니 보이는 것은 부엌 겸용의 작은 방 한 칸. 그 작은 방에 아이들 5명이 오글오글했다. 이제 나까지 7명. 로즈메리 아줌마는 늦게 온 손님을 위해 급히 저녁을 만들어 대접해 주셨다. 그리고 잠들기 전, 좁은 침대 위에서 내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셨다. 작은 침대에서 3명이 새우잠을 자고 나머지 식구들은 간이침대에서 역시 쪼그려 잤다. 공용 화장실이 하나 있지만 밤에는 밖이 너무 어두워 나가지 못하고 방에 들여놓은 플라스틱 통에 소변을 보았다. 그들에게 큰 불편을 끼치게 되었지만, 모든 게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었다.

원래는 날이 밝으면 시내에 있는 숙소를 찾아가려고 했으나, 아침에 내가 있고 싶은 만큼 지내도 된다는 따뜻한 그녀의 배려와 낯선 외국손님인 나를 너무나 반갑게 좋아해주던 5명의 꼬마 소녀들 덕분에 더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록 방 안에는 시도 때도 없이 바퀴벌레가 돌아다니고, 아침에 일어나면 좁았던 침대 탓에 허리가 뻐근하고, 대야에 물을 받아 샤워를 하고 푸세식 화장실을 써야했지만, 그것들을 무시할 수 있게 한 ‘좋은 가족들’이 있었다. 사랑스럽고 앙증맞은 아이들,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보여주는 귀여운 아이들이 내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로즈메리의 딸 ‘티나’. 그리고 그녀의 조카인 ‘로즈’와 ‘가트린’.

올해 6살이 된 티나는 호기심이 가득하고 끼가 넘치는 꼬마숙녀였다. 아이들 입장에선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방안에 처음 보는 외국인이 앉아있는 모습에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나는 나에 대한 거부감 없이 바로 옆으로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자기 물건을 가지고 와서 설명해주며 먼저 다가와 주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이쁜 옷을 입고 나와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 빨간 바지에 꽃무늬 코트, 예쁘게 땋은 머리, 그리고 구슬같이 커다란 두 눈은 그 어두운 집안을 밝히는 빛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내가 꺼내 든 카메라에 관심을 보이는 티나.

“티나, 내가 사진 찍어 줄게. 저 앞에 서봐.”

그 귀여운 꼬마소녀는 신나서 포즈를 잡았다. 부끄러움 하나 없이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고 재미있던지 나는 이 꼬마를 그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이 그림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당시 티나에게 선물 했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No. 117
<A girl 3>, Nairobi, Kenya

로즈메리 아줌마는 낮에는 나를 데리고 시내구경도 시켜 주고, 성당친구들도 소개해 주셨다. 하루는 아줌마의 한 부자 친구네 집을 방문했다. 로즈메리가 나에게 말하길,

“혹시 이 친구에게 네가 이 집에서 좀 지내도 되는지 물어볼게. 이 집이 너한테 더 편할 거야.”

그 친구네 집은 정말 좋은 ‘큰 집’이었다. 커다란 정문이 우뚝했고, 집 안에는 고급 가구와 좋은 텔레비전, 컴퓨터, 가정부까지 있었다. 친구 분은 나를 굉장히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그 분은 예전에 서울에 여행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고 금방 가까워 질 수 있었다. 오후 시간에는 그녀의 딸 ‘난시’와 아들 ‘캔’과 함께 마다가스카르로 가는 항공편을 알아보러 시내를 돌아 다녔다. ‘난시’와 ‘캔’은 나와 비슷한 또래로, 굉장히 친절하고 재미있는 친구들이었다.

캔은 시내에서 ‘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에게 먼저 말을 했다.

“수로. 로즈메리 아줌마네 집이 좁은 거 알아. 우리 집은 넓으니 우리 집에서 며칠이라도 머물다 가는 건 어때?”

오늘 처음 만났는데, 그렇게 생각해주는 그 친구의 마음이 고마웠다.

“신경 써줘서 너무 고마워 캔. 이따가 로즈메리와 너희 엄마랑 한번 얘기해 볼게.”

우리는 저녁 시간까지 시내에서 볼 일을 보고 ‘큰 집’으로 돌아왔다. 로즈메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도착하니 로즈메리는 그녀의 친구에게 나를 이곳에서 좀 머물게 해 줄 수 있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 부자 친구는 대답했다.

“오, 그건 좀 힘들겠는데. 나도 네가 우리 집에서 쉬면 좋겠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호스트할 공간이 마땅치가 않아. 미안해.”

그때 그녀 뒤에 서 있던 아들 ‘캔’과 눈이 마주쳤다. 그때 그 아들이 나한테 보냈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의 눈에는 어머니에 대한 실망과 부끄러움이 담겨 있었다.

돌아가는 길, 로즈메리가 나한테 말했다

“수로야 괜찮니? 좋게 생각하자. 나는 너와 더 같이 있을 수 있게 돼서 기뻐.”

나는 로즈메리와 팔짱을 끼고 기분 좋게 ‘우리의 판잣집’으로 향했다.

로즈메리가 자기의 집이 넓어서 나를 재워주는 것이 아니다. 로즈메리와 그 친구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것은 집의 크기 차이가, 가지고 있는 돈의 차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의 크기 차이였다.

 

- 로즈메리 가족들과

 

 

김물길

스물넷에 떠난 컬러풀한 세계일주 '아트로드' 저자

이름처럼 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2개월간 그림을 그리며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계속 이번 여행에서처럼 드라마, 코미디 그리고 로드무비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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