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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리뷰] 한글 타자기 전성시대

19.09.28 0

 

'타자기'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상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와 아날로그적 감상일 것이다. 문자 하나하나를 직접 조합하고, 문단의 줄을 직접 바꾸며 한 단어가 완성되어 갈때마다 들리는 키보드 소리는 그 어떤 백색소음 보다 정갈한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 종이에 찍힌 문자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언젠가 빈티지 소품을 모으는 게 취미었던 친구가 좋아하는 시를 아날로그 타자기로 쳐주었을 때, 가슴 한 켠이 따듯해지는 느낌이 받았었다. 그리고 학창시절, 테이프처럼 생긴 수동타자기를 이용해 반 친구들이 번갈아가며 제 이름을 찍어내던 추억도 문득 떠오른다. 이처럼, 어쩌면 우리의 생활에 밀접하게 스며든 타자기 문화에 대해 국립한글박물관은 그 역사를 반추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1970-80년대는 타자기가 널리 보급되고 여러분야에서 활용되었다. 1969년 타자기 자판이 4벌식으로 표준화 된 후, 정부에서는 한글 타자 경기대회를 개최하고 공문서를 타자기로 작성하게 하는 듯 타자기 사용을 적극 권장하였다. 타자기가 확산되면서 타자수는 인기 직종으로 떠올랐다. 1973년에는 전국의 타자수가 7만 여명, 타자 학원이 서울 시내에 51개곳에 이르렀으며 타자 검정시험에 2만 5천여명의 응시생이 몰렸다.

한글 타자 배우기 열풍속에서 1978년 무렵 크로바 타자기, 마라톤 타자기 등 국산 표준 타자기가 개발되었다. 국내에 나타지 공장이 설립된 이후 타자기 가격이 낮아지고, 작은 사무실에서나 학생들이 실습용으로 타자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공공기관에서는 4벌씩 표준 타자기를 주로 사용했으나 민간에서는 3벌식 타자기 등 벌식이 다른 타자기도 일부 사용하였다.

 

 

작은 큐브처럼 구성된 이 공간에는 타자기를 사용하는 프로세스에 대해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이미지나 신문기사, 활용법이 레트로한 인상을 주어 관람객의 흥미를 자극한다. 또 전시장 한 켠에는 해당 타자기로 작업하였던 과거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레퍼런스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흔히 쓰는 컴퓨터의 한글 표준 자판은 1969년 과학기술처에서 제정한 <한글 기계화 표준 자판안>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판의 통일'은 타자기의 확산 기반을 만들고 정보화 시대로 가는 길을 열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작가에게 영향을 준 아버지인 한승원이 사용한 '공병우 3벌식 문장용타자기'와 그것으로 작성한 소설 <누이와 늑대> 원고를 최초로 공개한다. 이 타자기는 개발자 공병우가 작가 정을병의 제안으로 제작한 것으로 겹받침 ‘ㄶ, ㄳ, ㅄ’ 과 「 」 〈 〉 같은 인용 부호, 가운뎃점(·) 같은 기호들이 있어 문장 쓰기에 편리했다고 한다. 지금의 시대에선 당연한 타자기의 기능들이 주목을 받던 시대도 있었던 것이다. 부디 이번 전시를 통해 기성세대들은 타자기를 통한 과거로의 회귀를, 젊은 세대들은 과거의 타자기들이 안겨주는 아날로그적 감상을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전시기간 2019년 7월 25일 – 2020년 2월 2일 
전시시간 매일 AM 10:30 - PM 6:00 
관람료 무료
장소 국립한글박물관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139)
문의 국립한글박물관 / 02-2124-6200

김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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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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