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기, 오이뮤

19.10.24 0

유엔팔각성냥 
 

어릴 적 할머니댁에 놀러 가면 볼 수 있던 팔각성냥은 묵직한 그립감과 불을 붙였을 때의 탄내가 매력적이었다. 줄곧 ‘불은 위험하다’고 배웠음에도 어른들이 없을 때 한번쯤 몰래 긁어보고 싶었던 그 성냥은 현대에 이르러 생일축하를 하는 일 외에는 거의 쓰일 일이 없어졌다. 글씨를 쓰다 잘못된 부분을 세게 긁어대던 지우개도 마찬가지다. 왠지 고무가 많이 들어간 것 같았던 다소 팽팽하면서도 쫀득한 촉감의 겉이 매끄러웠던 지우개. 그 표면에는 색감이 강한 페인트질 같은 문양이 들어가 있었고, 나름 다양한 디자인이 존재했다.

 

Project 4. Eraser project

 

시간이 흘러 성냥과 지우개가 우리의 일상과 기억에서 퇴색될 때쯤, 디자인 스튜디오 <오이뮤>는 사라져가는 성냥과 지우개에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었다. 신기하게도 우리의 눈은 과거의 물건을 보는 것만으로도 과거의 기억들을 쉽게 리콜하곤 한다. 때문인지 매년 프로젝트로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을 하는 오이뮤는 많은 사람들의 흥미와 공감을 샀다. 아마도 이들의 작업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건, 영영 잃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의 저편에서 사용자가 쉽게 자신의 추억을 마주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Project 1. Match project

오이뮤의 첫 번째 프로젝트, 성냥 프로젝트입니다. 1950년대부터 2010년도까지, 반세기 가량 판매됐던 유엔팔각성냥을 생산한 유엔상사와 협업합니다. 사라져가고 있는 물건에 새로운 디자인을 입힘으로써 수명과 가치를 연장 시켰으며, 기존의 성냥을 '디자인이 잘 되어있는 실용적인 생활용품'으로 변모시켜 세련된 브랜드 이미지를 창출했습니다. 이를 통해 기성세대에게는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젊은 세대에게는 생소한 성냥의 매력을 선사합니다.

 

 

Project 4. Eraser project

오이뮤 네 번째 프로젝트, 지우개 프로젝트입니다. 약 70년 간 국산 지우개를 생산해 왔고 ‘점보’ 지우개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화랑고무와 협업합니다. ‘ERASER 453’ 책을 엮어, 1950년부터 화랑고무에서 만들어 온 453개의 지우개들을 톺아보고 국산 지우개의 발자취를 따라가 봄으로써 필통 속 작은 지우개의 가치를 재조명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Project 4. Eraser project

해당 프로젝트는 사람들에게 큰 찬사를 받았다. 과거에는 필수품으로 사용되던 매체를 기호품으로 탈바꿈시킨 시도가 그러했고, ‘디자인’이라는 감각적인 요소도 크게 작용했다. 오이뮤는 첫 프로젝트인 성냥을 기반으로 1년 마다 한 개씩 주제를 정해 옛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성냥과 전통향, 민화, 지우개를 다뤘고 올해에는 ‘색 이름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색 이름 프로젝트’는 우리말로 표현되는 다양한 색채어를 다룬 작업이다. 해당 작업은 1991년에 초판 발행한 <우리말색이름사전>을 재해석하고 한국산업표준(KSA0011, 관용색이름)을 병용하여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자연물 이름과 구체적인 색깔을 우리말로 정의한 프로젝트다.

 

Project 5. Color project, 모든 이미지 출처: 오이뮤

 

이렇듯 오이뮤는 기억 저편에서 사라져가는 우리의 것을 리콜한다. 동시에 이러한 작업은 단순히 디자인 이상의 가치를 지니기에 흥미와 재미를 제시한다. 오이뮤의 풀네임은 ‘Oneday I Met You’. 과거의 경험이나 쓰임, 만남 등을 소중히 여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이뮤의 이름처럼, 앞으로 또 어떤 과거의 것들이 이들을 만나 재해석될지 궁금하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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