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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할머니들의 ‘감’

20.02.29 0

어릴 적 친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앉은 자리에서 밥 두 세 공기를 다 먹어버리곤 했다. 사실 반찬이라고는 제철 나물과 장아찌, 김치, 국, 생선, 겉절이가 다 인데도 왠지 모르게 맛있었다. 6살의 나는 그 비결이 너무 궁금해서 “할머니네 오면 왠지 모르게 밥이 너무 맛있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웃었고 할머니가 해주는 반찬은 특별할 게 없는데도 참 맛이 있어서,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싶었다.

 

 

외할머니 댁은 좀 달랐다. 할머니보다 할아버지가 요리를 잘 하셨던 것 같다. 무엇보다 직접 끓여주신 생선국이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 평소 비린내가 나서 매운탕을 싫어했는데, 외할아버지는 정말 기똥차게 끓이셨다. 생선이 들어가도 비릿하지 않고 약간 짭조름하면서도 매콤하고 맑은 국. 순댓국과 장터국밥과는 또 다른 매력의 국물이 어린 아이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위 두 분은 ‘전라도 음식’의 매력을 알려주신 분들이다. 안타깝게도 두 분은 지금 이 세상에 계시지 않다. 하지만 엄마는 가끔 그 매콤한 매운탕과 여러 음식을 하면서 두 분을 떠올리곤 한다. 물론, “할아버지 맛은 안 나네!”라거나 “이번에는 조금 비슷한 것 같아”라고 말할 때가 더 많지만 말이다.

 

세상에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음식이 하나의 매체가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했었다. 그리고 때때로 우리는 과거의 사람이 좋아했던(즐겨했던) 요리를 통해 그 사람을 추억하기도 한다. 내게 전라도식 반찬과 매콤한 매운탕은 돌아가신 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떠올리는 매개체다. 그리고 <요리는 감이여> 라는 책을 접했을 때, 왠지 두 분이 불현 듯 생각났다.

 

 

이 책의 레시피를 꾸린 분들은 충청도에 거주하는 51명의 7080대 어르신들이다. 그냥 보통의 요리책처럼 요리 방법만 나열했더라면 또 감흥이 없었을 텐데, 이 책에는 특별함이 녹아있다. 할머니들이 직접 한글학교에서 글을 배워 자신들의 언어로 각자의 요리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각자의 요리법을 설명하는 삐뚤빼뚤한 글씨와 엉성한 그림은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건드리는 구석이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은 단순히 요리책이 아니다. 각자의 기억 속 어딘가에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음식과 사람을 이어주는 글과 그림인 것이다.

 

51명의 충청도 할매들. 한글학교에 다니며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글자를 알게 되니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도 찾을 수 있고, 직접 담근 ‘엑기스’를 병에 넣고 이름과 날짜를 써 붙일 수도 있어 좋다. 감으로 익혀 한평생 밥상에 올린 음식들의 요리법을 또박또박 쓰며 인생을 돌이켜 봤다. 받아쓰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자서전도 남기고 싶고, 편지도 쓰고 싶고, 시도 짓고 싶다.



 

할머니들 한 분 한 분께서 직접 쓴 이름과 인생사가 담긴 요리에는 그녀들의 인생이 담겨있다. 읽다보면 어쩐지 마음이 따듯해져서, 돌아가신 두 분 생각이 절실해 진다. 우리 할머니도 글을 배워서, 이런 글과 그림을 그렸다면 좋았을 텐데. 우리 할아버지만의 특별한 매운탕 제조법을 할아버지만의 레시피로 남겨뒀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아무리 ‘감’으로 때려잡아도 그 때 그맛을 내는 게 영 어려워서다.


제목 <요리는 감이여>
저자 51명의 충청도 할매들
출판사
 창비교육
출간일 2019.8.19
가격 17,000원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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