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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 함께 걸어요

20.05.21 0

 

글씨, 출처: 아탁시아 탱고 클럽

 

어린아이가 쓴 문자인지 어딘가 서툴러보이는 글씨체는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들추어봤을 때 감동을 일으킨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시골 할머니댁에서 할머니의 글씨와 그림을 발견했을 때 엄청 울었던 적이 있다. 삐뚤빼뚤한 글씨가 슬퍼보여서, 할머니가 글자를 안다는 사실이 놀라서 울음이 터졌던 것 같다. 우연찮게 모니터에서 마주한 한 어머님의 글씨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불현듯 떠올리게 했다. 사실 처음에는 글자쓰기가 서툰 아이의 글씨쯤이라 생각했기에 글씨의 사연을 알고서는 어릴적 내가 봤던 할머니의 글씨와 오버랩이 된 것 같다. 그리고 2019년 10월, <네이버>는 한글날을 맞이하여 희귀병을 앓고 있는 환우의 손글씨를 글꼴로 제작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름하여 <꽃길, 함께 걸어요>다.


우리나라에는 약 50만 명의 희귀난치병 환우들이 계시고, 이들을 위한 연구나 지원이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관심과 응원이 많아진다면 환우분들께도 큰 의미와 희망이 될 수 있을 텐데요, 네이버 클로바는 어머님의 손글씨로 제작한 글꼴을 제작, 무료로 배포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관련 글꼴을 사용하며 희귀난치병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 주신다면, 그리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들을 응원하여 주신다면 얼마나 더 행복한 사회가 될까요? 더불어 함께 걷는 아름다운 사회를 꿈꾸어 봅니다.

 

<함께 걸어요> 손글씨의 주인공은 '소뇌위축증'이라는 뇌병변을 앓고 있는 정애영 어머님이다. 그녀는 발병 후, 관공서나 병원에 가면 가족들에게 대신 수기를 작성하게 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게 몸의 균형을 맞추는 소뇌에 이상이 생기면서, 글자를 작성하고 걸음을 걷는 일에 건강한 일반인 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설령 시간을 들였다한들 그 글자와 걸음이 정확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몸을 흔드는 것처럼 글씨가 삐뚤빼둘하고 걸음이 온전치가 않아서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클로바 공식 블로그>

 

이에 동감한 <네이버>는 클로바의 AI기술을 활용해 어머님의 손글씨를 글꼴로 제작했다. 어머님이 작성하신 글자로는 온전한 형태의 폰트를 재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는 OCR(Optical Character Recognition, 문자인식)이란 기술이 필요했다. 어머님이 쓰신 손글씨를 바탕으로 그 특징을 분석하여 1만개가 넘는 글자조합을 완성한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글꼴은 디지털 환경에서 꽤나 그럴듯한 손글씨의 느낌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러한 엄마와 딸의 도전에 영감받아 "함께 걸어요"라 이름 붙여졌다.

 

지우개가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출처: 아탁시아 탱고 클럽

 

캠페인 참여를 독려한 딸은 엄마가 캠페인에 참여하는 동안 발병이래 처음으로 오랫동안 글씨를 썼다고 했다. 이벤트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에 어머님은 눈물을 흘렸고, 1년 뒤의 자신에게 "지금과 같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번 이벤트를 통해 새로운 글자를 얻은 어머님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평범히 할 수 있는 가계부 작성과 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지수진 씨는 “점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줄면서 상실감에 빠져 있던 엄마가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의 힘으로 계속 써 나갈 수 있다는 의지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며, “국내에서는 아직 희귀난치병에 대한 연구나 지원이 아직 미비한데, 어머니의 손글씨 글꼴로 희귀난치병에 대한 관심과 대화가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클로바 공식 블로그>

 

이처럼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특히 그게 사람의 손을 거치면 말이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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