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복의 젠더리스

20.06.29 1

일전에 국/내외 항공사 유니폼에 과한 글을 게재하였다가 댓글란에 불이 붙었던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해당 글의 골자는 ‘국내 항공사의 유니폼이 업무와 기능에 맞는 편한 복장으로의 개선이 필요하다’였는데, 글의 논지에서 벗어난 맥락의 싸움이 일어난 것이다. 실제로 몇 년 전, 국내 항공사 <아시아나>의 사고 수습장면을 보며 승무원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연달아 들었던 감상은 ‘저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치마를 입어야 한다니, 얼마나 불편할까’였다. 사고 현장에서도 딱 달라붙는 상의와 치마를 입은 승무원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유니폼, 출처: <대한항공> 페이스북 

 

사실 생각해보면, 여성승무원에게 딱 달라붙는 복장은 업무상의 어떤 기능을 발휘하는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만약 실제로 그 ‘딱 달라붙는 복장’이 어떠한 기능을 발휘했다면, 남성승무원의 복장 역시 라인이 드러난 매무새였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의 ‘승무원 유니폼’ 담론은 ‘성상품화’라는 전제를 벗어날 수 없고, 이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인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일부 항공사는 여성 승무원에게 치마를 강요할 뿐만 아니라, 머리 모양 및 립스틱 색깔, 옷의 길이마저 제한하여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 유니폼, 이미지 출처: <아시아나> 페이스북

 

설령 기존의 승무원복 디자인이 단순히 ‘심미적인 용도’로 라인을 살렸다고 해도 그 역시 문제다. 승무원은 기내 안전을 담당하는 사람이지, 승객들의 눈요깃거리가 되기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승무원의 복장 문제는 케케묵은 감정처럼 덮어두고 가는 이야기였다. 어느 정도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딱히 문제삼기는 어려운, 그런 시대의 구습이었기 때문이다.

 

티웨이 항공사 유니폼, 이미지 출처: <티웨이> 페이스북 

 

그러나 최근에서야 여성과 관련한 이슈들이 주요한 담론으로 떠오르면서, 국내 항공사의 여성 승무원 복장이 시의에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크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불필요한 감정싸움이 일어났고, 과거에 비해 복장 문제에 대한 성인지감수성이 커졌음을 실감하였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청주국제공항을 주 거점으로 하는 저가비용 항공사 <에어로케이>가 국내 최초로 ‘젠더리스 승무원복’을 선보여 주목을 받고 있다.

 

 

에어로케이 젠더리스 승무원복, 출처: <에어로케이> 페이스북

 

에어로케이는 지난 23일 보그 코리아 인스타그램 영상을 통해 객실승무원 유니폼을 공개했다. 봄·가을용 상의는 맨투맨 티셔츠에 자켓, 여름용 상의는 반팔 티셔츠에 조끼고 하의는 모두 바지다. 신발은 구두 대신 운동화로, 유니폼 디자인은 박소현 디자이너가 이끄는 브랜드 ‘포스트디셈버’가 맡았다. 치마 정장은 따로 없고 여성과 남성의 유니폼 디자인이 동일하다. 몸에 붙는 치마와 구두를 여성 승무원 유니폼으로 채택하고 있는 국내 대부분 항공사와 차별화된 새로운 시도다. 출처: <한겨레>

 

 

에어로케이 유니폼, 출처: <에어로케이> 인스타그램

 

<보그> 화보 속 <에어로케이>의 두 승무원은 성별에 따른 위계보다 기능에 더 집중한 유니폼을 선보여 더욱 편안한 인상을 준다. 실제로 해당 승무원복을 디자인 하는 과정에서 <에어로케이>의 담당자는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였는데, 앞서 언급하였듯이 딱 달라붙는 여성 승무원의 복장이 업무 시 불편할 뿐만 아니라 ‘성상품화’를 부추긴다는 점에 극히 공감했다고 한다. 때문에 이들의 복장은 실제적인 기내 안전을 담당하는 활동성에 적합한 디자인을 개발하였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흐름은 시대의 흐름을 좇는다는 점에서 더 유의미하고, 의류업계에서의 ‘여성스러운 디자인’의 의미는 무엇일지 반추하게 하는 시도이다.

‘훌륭한 디자인’은 단순히 심미적으로 아름다움을 지닌 것이 아니라, 사물이 가진 본래의 기능을 다할 때 성립하는 명제일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에어로케이>의 디자인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준다. <에어로케이>의 사례를 기반으로 보다 더 다양한 분야의 업계에서 ‘젠더리스 룩’을 선보이길 기대한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