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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을 규정하는 ‘색 언어’

20.08.11 0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5년, 유년시절에 쉬이 접하는 크레파스와 색연필의 ‘살색’이 인종차별을 의미하기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이와 같은 단어 사용이 금지된 일이 있었다. 당시 학생이었던 나는 이러한 접근이 신기하기만 했는데, 기존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개념에 균열이 간다는 건 ‘평평한 줄만 알았던 지구가 둥글다’것을 깨닫는 것만큼 크나큰 변혁이었다. 그렇게 기존에 숨을 쉬듯 당연하게 ‘살색’으로 쓰이던 색상명이 ‘연주황’ 혹은 ‘살구색’으로 변화했고, 이는 시대의 여러 면모(=다문화 가정의 증가, 외국인 유입증가)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꽤나 진보적인 걸음이었다.

 

human skin color, 출처: pixabay

 

 

사회에 내재한 편견이나 혐오 담론은 이와 같이 사람들의 무의식에서 비롯한다. 누군가에게 ‘별 것’아닐지 몰라도 편견의 대상이 되는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 모든 사회의 갈등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사실 세상을 구성하는 빛, 그리고 그것을 간단명료한 색상어휘로 표기한 ‘색명’이 누군가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일이 당면하면서도 한편으로 낯설기만 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화장을 하는 여성이라면 이 ‘살색’이라는 말이 얼마나 다양성을 배제하는지 쉬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코스메틱 브랜드에서 피부에 바르는 BB크림이나 파운데이션은 호수가 극히 제한 적이다. (보통 숫자가 낮은 호수는 밝고 환한 피부, 숫자가 높을수록 어두운 피부를 의미한다) 적으면 13호, 21호, 23호의 세 가지 색상으로, 많으면 4가지 정도로 획일화 되는 피부색만 봐도 우리나라가 얼마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지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상위 세네 가지의 색상에 속하지 않는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해외 브랜드의 제품을 찾는 대안을 선택하기도 한다.

 

 

skin tone, 출처: mac

 

그러나 이러한 ‘피부색’에 관한 담론이 국내를 한정해서 ‘정체성을 규정하는 색’이라면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정체성을 규정하는 색’이 있었으니 바로 ‘여성의 색’과 ‘남성의 색’을 의미하는 파랑과 분홍의 대립이다. 90년대 성별로 생명의 가치를 결정 짓던 그릇된 행위를 막기 위해 산부인과에는 ‘분홍’과 ‘파랑’의 언어가 등장했다. (산부인과에서 직접적으로 성별을 고지할 수 없어 색상으로 성별을 대신해 알렸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사회/문화적으로 은연 중 성별을 대치했던 ‘분홍과 파랑의 색상’은 공고하게 그 위상을 꾸준히 이어나갔다. 그래서 분홍은 여자의 색으로, 파랑은 남자의 색으로 당연하게 자리매김 했다. 물론 지난 시간 동안 해당 색깔이 ‘성차별을 의미한다.’는 여성단체의 지적이 지속되어 왔지만 여전히 영유아 장난감을 비롯한 학용품 업계에서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윤정미 작가의 <핑크&블루 프로젝트>는 사회/문화적으로 규정된 성차별적 색상의 이야기를 직관적으로 다룬 대표적인 작품이다.

 

<The Pink Project - Yealin Ham and Her Pink Things> Light jet Print, 2005

 

<The Blue Project - Kihun and His Blue Things> Light jet Print, 2007
모든 사진 출처: JeongMee Yoon's official website

 

비슷한 맥락으로 아동의 정체성이 걱정되어 관련 기관을 찾는 보호자 중에는 “우리 아이가 남자(혹은 여자) 답지 않아요.”를 호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흔히 그 연유에 대해 들어보면, 이들 보호자는 활동성이 높고 운동량이 많은 축구나 태권도, 보통 남아들이 선호한다는 색상이나 활동을 자신의 딸이 좋아해서 ‘또래 여아 같지 않다’고 걱정을 한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아들이 여아들이 선호하는 <겨울왕국>의 엘사를 좋아한다거나 역할놀이에서 미용실, 내지는 화장놀이를 좋아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배경과 환경, 그리고 성격은 각 개인마다 다양하고 우리는 저마다 추구하는 가치관이 다르다. 그런데 어째서 자라나는 아이들에 대한 규정은 두 개의 색깔언어처럼 가히 제한적인 것일까.

 

<The Pink Project - SeoWoo and Her Pink Things> Light jet Print, 2006.

 

<The Blue Project - Yeachan and His Blue Things> Light jet Print, 2005
모든 사진 출처: JeongMee Yoon's official website 

 

어떻게 보면 이분법적인 색깔언어 때문인지 해외에서는 일찍이 완구용품에 대한 색깔논쟁이 유의미한 변화를 맞이한 듯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7월, 15년 전의 ‘살색’ 논쟁과 마찬가지로 ‘분홍은 여자, 파랑은 남자’를 의미하는 색깔이 성차별적이며 변화가 필요하다는 호소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전해졌다. 그리고 이와 같은 지적을 마주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번 달 중에 그간 꾸준히 지속되어온 색깔 논쟁에 대한 답변을 꾸릴 예정이라고 한다. 과연 15년 전의 당연하지만 어려운 한걸음처럼 색깔 논쟁은 끝을 맺을 수 있을까. 부디 진보하는 사회와 시류에 발 맞춰 다양성을 두 가지의 범주로 제한하는 시도들이 종식되기를 바란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들이 사회/문화적으로 요구되는 개체의 특성의 압박에 영향받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원한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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