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의 공간들, <1/10> 프로젝트

20.08.24 0

산책을 하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죽 늘어선 아파트를 보며 기하학적(혹은 기형적)이라는생각을 한다. 특히 서울 아파트의 매매가는 하늘이 높은 줄도 모르고 계속 상승한다는데, 우리나라 전통가옥은 마당을 낀 주택임에도 국민들이 왜 그리 ‘아파트’에 집착하는지 그 심리가 궁금하기도 하다. 아무래도 가용할 수 있는 땅덩어리가 좁은 나라에서 가장 쉬운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게 ‘부동산’이기도 하고, 자본주의의 상징인 ‘아파트’가 곧 ‘부를 가르는 척도’가 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된 것 같다. 사실 온전히 자신의 비용을 들여 서울의 아파트를 매매할 수 있는 능력자는 흔치 않음에도, 죽 늘어선 아파트를 보며 ‘어떤 능력자가 저곳에 사는 걸까’, ‘이 많고 많은 건물 중에 왜 내 것은 없을까’하며 자조 섞인 농담을 쉬이 하게 되는 것도 이런 기형적인 주거문화 탓일 것이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주택에 거주한 탓에 지인의 아파트에 방문하게 되면 곳곳이 신기하기만 하다. 주택과는 다르게 딱 맞아 떨어지는 미학이 있고 그만큼 깔끔해서다. 이런 때엔 주로 두 가지 양가감정이 드는데, 하나는 “똑같은 구조인 만큼 입주자 대부분이 비슷한 연출로 생활을 영위할 것이다”라는 게 (ex. 침실 위에 똑같은 공간의 침실이 있고, 주방 위에 똑같은 공간의 주방이 있어 입주자들이 같은 동선을 그리는 모양새) 내심 소름끼친다(?)는 것이고, 또 다른 감상은 그럼에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같은 공간을 연출하는 재미가 있을 거란 생각이다. 때문에 복도식의 늘어선 아파트에 가면, 본의 아니게 문틈 사이로 보이는 공간들이 더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사람은 남들과 똑같이 주어진 공간을 어떻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연출했을까, 하는 원초적인 궁금증이 생겨나서다.

 

10th floor, Apartment #52. Bogan Grbovan

9th floor, Apartment #47. Mrs. Bita, retired, living there since 1967, and by herself since 1996. Apartment owner.

 

8th floor, Apartment #42. The Ene's, retired, living here since 1967. Mr. Ene has been bedridden for several years. Apartment owners.

7th floor, Apartment #37. Ionut lives by himself and, according to Mr. Cojanu Ilie (president of the apartment block), “He's some philanderer and has a hearing problem; a good lad nonetheless and will certainly let you take his photo.” Apartment owner.

 

6th floor, Apartment #32. Public figure, refused to give a name or appear in the photograph. Temporary lodger, a tenant.

 

이러한 궁금증이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었는지 루마니아 출신 사진작가 Bogdan Girbovan은 자신이 실제로 거주하는 아파트의 1층부터 10층까지의 공간을 직접 촬영하여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름하여 <10/1> 프로젝트. 사진 속 그의 이웃들은 모두 같은 공간 속 다른 연출을 배경으로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역시나 신기한 지점은 모두 같은 구조물임에도 그 안에 자신만의 정체성이 녹아있는 공간으로 연출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똑같이 네모난 각진 공간을 누군가는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짓는 침실로, 누군가는 모두에게 열린 거실로 연출했다. 메인이 되는 컬러와 연출한 기능이 다른 것도 입주자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다. 그리고 1층부터 10층에 이르는 공간을 연출한 이 사진에는 입주민 개개인이 언제부터 이곳에 거주했는지, 그리고 그들의 신상을 간략하게 다뤘다. 더욱 흥미로운 건, 10층의 공간이 작가 본인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어쩐지 이 프로젝트에 대한 신뢰성이 더해지는 느낌이다. 마치 누군가의 인스타그램을 엿보는 것처럼, 그의 작업을 읽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똑같다’고, 따지고 보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이 사진이 평범하면서도 재미있다. ‘별다를 것 없는 특별함’ 때문이다.

 

5th floor, Apartment #27. Mrs. Suhariuc Ioana, retired. Living here since 1967, and living by herself since 1982. Together with the cat since 1989. Owner of the flat.

 

4th floor, Apartment #22. Don Lukas (did not give his name, preferring to appear under his alias), recently returned from Spain, lives together with his girlfriend.

 

3th floor, Apartment #17. Apartment for sale, owners living abroad. By courtesy of the apartment block president, Mr. Cojanu Ilie, who has the key to the apartment, I managed to photograph the apartment, and he agreed to appear in the frame under one condition: “I will not look into the camera… you know, I'm the president of the apartment block, after all.”

 

곰곰이 생각해보니 <10/1> 프로젝트의 본질은 우리의 인생과 참 닮아있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주어진 인생이나 시간은 모두 공평하게 똑같다. (물론, 타고나는 자산규모가 다르며 빈부격차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떤 시간으로 구성하는지, 수많은 시간 중 어떤 시간을 가장 가치 있는 시간으로 여길 것인지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어떻게 배정하는지에 따라 개인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은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2th floor, Apartment #12. Mother and daughter, two distinguished ladies (refused to make their names public). The daughter, former athlete, travelled a lot, visited museums, moved in with her mother after her husband passed away. Apartment owners.

 

1th floor, Apartment #7. A lady living by herself (refused to make her name public), retired, worked as a banknotes designer before 1989. She's been living here for 10 years. Apartment owner. *reference: https://girbovan.ro ,https://mymodernmet.com

 

 

이렇듯 현대사회에서 공간은 누군가에게 시세차익을 남겨 이익을 창출하는 요소로, 누군가에게는 복잡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나 역시 내가 사는 거주하는 공간이 지금 당장은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한 쉼터이자 안락한 공간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이 작은 공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연출할 수 있느냐가 주된 관심사다. 하지만 종종 시간이 흘러 내가 아닌 누군가가 이 공간을 영위할 때의 모습을 상상해보곤 한다. 사람은 언젠가 수명을 다해 세상을 떠나지만, 공간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득 작업 속의 인물들이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그 공간은 또 어떤 모습을 반영하고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Bogdan Girbovan – “10/1”at ICR Paris, 출처: https://squaremedia.ro

 

그렇다면 ‘공간’이야 말로 동시대를 반영하는 살아있는 예술작품이 아닐까. 때문에 현대의 인류가 각자에게 주어진 공간과 시간들을 어떻게 구성해나갈지, 앞으로 또 어떤 가치를 중시할지 미래의 주거 문화가 궁금해진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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