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 안에 책, <아르테> 작은 책 시리즈

20.09.18 0

아르테 작은책 시리즈, 출처: 텀블벅 

다시 종이책을 읽기 시작했다. 전염병 소식에 생업 외 외출과 만남에 제한이 생겨 본의 아니게 잉여 시간이 생긴 것이다. 이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방법은 '넷플릭스'와 '인스타그램'같은 각종 콘텐츠를 소비하는 일이다. 이와 같은 소셜 미디어는 개인이 처한 장소와 시간, 각자의 주머니 사정에 크게 영향 받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전에 없던 고민 한 가지가 생겼으니, 바로 ‘선택의 문제’다. 바로 ‘어떤 이야기’와 ‘어떤 콘텐츠’를 선택할까 하는 문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우스갯소리로 넷플릭스나 왓챠의 메인 화면을 띄어놓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보다 더 많다고 말한다. 그만큼 메인 화면에서 ‘무슨 영화를 볼까’고민만 하다 TV를 끄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출처: pixbay

사회학을 가르쳤던 학부 때 한 교수님은 “앞으로 메인 정보에서 파생되는 A', A'', A'''의 정보들을 어떻게 선별할 것이냐가 중요해질 것이다. 그만큼 범람하는 정보사회 속에서 정확하고 올바른 정보를 택하는 게 중요한 능력이 될 것이다. 미디어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하고, 학생들은 올바른 정보를 선별하는 능력을 길러야한다”고 했다. 당시에는 온전히 이해가지 않던 선생님의 말씀이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해가 되는 세상이 도래했다. 하지만 ‘정확한 정보를 선별하는 능력’과 더불어 수많은 콘텐츠 중에서 정보를 택하는 한 가지 중요한 기준점이 생겼으니, 바로 ‘개인의 취향’이다.

 

출처: pixbay

이러한 맥락에서 다시 종이책을 택했다. 모든 정보와 콘텐츠가 작은 기기 안에도 꽉 들어찰 수 있는 세상이어서 어떤 시기에는 콤팩트한 가방에 아이폰과 전자책을 드는 게 현대인의 멋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독서’라는 기능적 측면에서 전자책은 본연의 기능을 잘 수행했다. 하지만 종이책 특유의 물성과 아날로그적 감상은 디바이스가 온전히 발현하기 힘든 부분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책을 읽는(혹은 책을 택하는) 기준점 중 하나인 표지디자인을 놓친다는 맥락에서 아쉬움이 극화되었는데, 최근에는 이를 겨냥한 디자인 또한 많이 다양해져서 보는 즐거움을 놓칠 때가 종종 있다.

 

작은 책 시리즈 예상안, 출처: <텀블벅>

 

이러한 맥락에서 <아르테>에서 출간한 ‘작은 책 시리즈’는 독자의 시각적 욕구뿐만 아니라 한국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언뜻 보기에 현대미술 작품 같아 보이는 표지는 간략하고 미니멀하고 강렬하다. 단색의 컬러가 표지 전반의 분위기를 결정하고, 단조로운 도형역시 마찬가지의 분위기를 띄지만 촌스럽지는 않다. 대부분의 소설책 표지는 책의 내용이나 구성을 직관적으로 나타내곤 하는데, ‘작은 책 시리즈’는 그렇지 않다. 책표지만으로 내용을 짐작할 순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책 제목만으로 소설의 내용을 상상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안락, 은모든 소설  

 

인터내셔널의 밤, 박솔뫼 소설,
이미지 모든 출처: <텀블벅> 


한 가지 더 마음에 끌리는 지점은 국내 소설을 다뤘다는 점이다. 어쩌면 조금 익숙하지 않은 젊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신선하다. 젊은 작가들이 다루는 이야기는, 세간에 화제가 되는 혐오와 죽음, 권리 등 동시대의 키워드를 주제로 한다. 이와 같은 소설이 단조로운 디자인과 읽기 쉬운 형태의 물성을 가지면 ‘책 수집가’들의 소장욕구를 자극한다.

 

<작은 책> 시리즈는 ‘소설을 읽는 삶은 그렇지 않은 삶과 어떻게 다를까요?“이 물음에서 시작했습니다. 바쁜 일상 중에도 타인을 이해하고, 삶의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일. 그것이 소설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요? 한국 소설이 어렵나요? 한국 소설이 무겁나요? 이제 손 안 에, 마음 안에 부담없이 넣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소설 시리즈가 찾아옵니다. 작은 것이 EO로는 가장 충분하니까요. <아르테 공식 페이지>

 

 

코로나가 도래한 이후, 그간 ‘해외의 것이 더 우수하다’는 사대주의적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해외여행이 금지되면서 사람들은 국내의 여행지를 찾았고, K-방역이란 이름 아래 비로소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국내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다룬 ‘작은 책 시리즈’도 우리의 것을 반추한다는 점에서도 눈여겨 볼만하다. 또 한 가지, 주목을 끄는 건 단순히 ‘작은 책 시리즈’가 문자에 한하는 것이 아니라 청각 또한 즐거울 수 있는 콘텐츠로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작은 책 시리즈’의 첫 출간인 <안락>과 <인터내셔널의 밤>은 배우 한예리와 김새벽의 목소리로 제작되어 usb와 함께 출판되었다.

넷플리스와 인스타그램 같은 생동감 넘치는 콘텐츠로 만족을 얻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작은 책 시리즈’와 같은 서정적 콘텐츠로 서정적인 만족감을 얻는 건 어떨까.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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