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격차

20.10.07 0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코로나 이후 건강관리와 환경보호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겨 제철음식으로 직접 만든 요리를 즐기게 됐다. 누군가 내 음식을 즐겨주면 그 기쁨은 더할 나위 없다. 개인적 차원에서든, 사회문화적으로든 변화가 큰 요즘이다. 4차 산업이나 AI같이 이름은 들어 봤어도 일상생활에 스며들 줄 몰랐던 새로운 나날이다. 주변에서 재택근무를 시작한 이들은 “집에서도 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라더니 어느새 그 체계에 적응해 ”그런데 자꾸 하다보니까 굳이 사무실이 있어야 하냐는 생각이 들더라“고 한다.

 

wokr at home, 출처: pixabay.com

그러고 보니 미국 부동산 시장은 점차 도심을 빠져나가는 사람들로 새로운 데이터를 구축하고 있다고 한다. 기존의 행태와 달리 주요 도시와 외곽 도시의 임대료가 비슷해지고 있는 기이한 현상이란다. 관련 전문가들은 전염병으로 인해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 대한 선호현상이 점차 저하되고있고, 재택근무 또한 확산되면서 ‘비싼 임대료’를 감수할 만큼 도시의 메리트가 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참 신기한 세상이다. 

 

‘Brooklyn Effect’ is driving rent prices down in cities, up in suburbs, https://poynter.org

 

이러한 변화는 비단 미국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전통적인 비대면 양식의 업무 환경을 고집하던 우리나라도 팬데믹 이후 IT분야를 비롯해 가능한 한 다양한 분야에서 재택근무를 시도 중이다. 그리고 재택근무가 가능한 이들은 ‘꼭 사무실’에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서 일자리가 많은 도시에 꼭 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알았고, 편안한 휴식의 공간이던 ‘집’이 곧 ‘사무실’로 변화할 수 있음을 자각했다. 그렇게 이들은 ‘공간’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이전보다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면서 과거 우리네 전통가옥처럼 기능과 목적에 따라 침실로, 서재로, 놀이터로도 ‘공간’은 다양한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전 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 그 공간을 자기만의 색과 취향으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구해줘 홈즈, 출처: MBC

바야흐로 공간에 대한 욕망이 짙어지는 시대다. 각종 공중파 방송의 TV프로그램은 연일 연예인들의 아름다운 집을, 누군가가 구해야할 집을 계속해서 소개한다. 인테리어와 관련한 아이템을 판매하는 전용 어플리케이션은 ‘누구나 예쁜 집에 살 수 있어’를 슬로건으로 한다. 이 어플리케이션은 단순히 제품만 판매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공간을 구성하는 구성원과 다양한 평수, 다양한 취향을 반영한 누군가의 공간을 소개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더이상 공간의 구성이 단순히 ‘크기’나 ‘매매의 형태’가 아닌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래서 다양한 삶의 모습과 취향을 가진 이들의 집을 구경하는 일이 흥미로워졌다. 

출처: 오늘의집

 

이처럼 ‘공간’이 새로운 의미를 찾고 있는 시대지만, 여전히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다. 되레 회사생활에만 전념하던 한 청년은 닭장 같은 고시텔에서 답답한 업무를 보고 있기도 하다. 그에게 유일한 돌파구는 ‘회사’라는 공간이었는데, 갑작스런 재택근무로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을 수도, 휴식조차 제대로 취할 수 없어졌단다. 감염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일 역시 물론이다. 일명 ‘쪽방촌’에 사는 취약계층 노인들의 사정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무더위와 추위를 이길 방안이 딱히 없는 이들에게 피부 표면만큼이나 가깝게 맞닿은 벽은 이미 '공간'의 개념을 상실한 듯하다. 어쩌면 이들에게 다양한 기능을 갖는 '공간'은 되레 자신의 건강을 위협하고 스스로를 위험으로 내모는 장치일지도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심규동의 <고시텔>이 떠오르기도 한다.

 

고시텔, 심규동, 출처: https://www.boredpanda.com

 

시류에 따라 공간은 다양한 의미를 갖지만, 자본주의와 결합하면서 생각지 못한 현상을 낳기도 한다. 누군가는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이 공간을 자신만의 취향이 반영된 공간으로, 누군에게는 스스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조차 되지 못하는 역설로 작용하고 있다.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게 앞으로 국가는 어떤 공간을 제공하며, 사회구성원의 삶 전반이 어떤 흐름으로 이어질지 궁금하다. 바야흐로 공간에도 격차가 커지는 시대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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