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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화 속 댕댕이

20.10.19 0

 

반려가구 천 만 가구의 시대란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국민이자 반려인으로서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반려문화와 그 행태를 자각할 때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모순은 개식용문화가 잔존하면서도 반려인구수가 점차 늘고 있다는 점이고, 토종의 개보다 외래의 품종을 선호하는 현상이다. 산책 시 흔히 마주치는 품종은 말티즈나 비숑, 치와와, 포메라니아와 같은 ‘소형견’ 범주에 속하는 개체가 많다. 이와 같은 현상은 ‘주거 문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는데, ‘부동산의 나라’답게 대다수의 국민들이 거주와 투자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거주형태로 아파트를 선호해서다.


사실 너른 마당이 있는 주택이 전통가옥이었던 시절, 우리의 선조와 함께했던 ‘개’는 지금처럼 작은 형태의 외래종은 아니었다. 하지만 닭장처럼 오밀조밀하고 성냥갑처럼 공간의 최대효율을 지향하는 아파트가 프로토 타입이 되면서, 이에 걸맞은 작은 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조금 슬픈 지점은 시대에 따라 ‘선호종’이 생겨난다는 사실이고, 그래서 개체의 나이에 따라 시대별 선호 상을 유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개> 필자 미상, 조선, 33.9x29.4cm,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어미개와 강아지> 이암, 조선, 163 x 55.5cm,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과거 선조들의 개와 함께 한 그림을 보면, 인간은 참 옛날부터 ‘개와 함께 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개가 등장하는 그림(혹은 사진)을 보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데, 인간 역시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일상을 무언가로 기록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 것 같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개들은 자신의 몸을 긁고 있기도 하고,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일상을 즐기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지금은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중형견 크기의 토종견이다. 물론 과거 선조들이 ‘개’를 그린 그림은 많지는 않지만 이렇듯 남아있는 전통화 속 개들을 마주하면 자연스레 한국의 토종견인 진도와 풍산, 삽살, 불개, 동경개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도시에서 쉬이 볼 수 없는 이 토종견들은 어디서 그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개> 필자미상, 조선, 30.9 x 29.4cm,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투견> 김홍도, 조선, 44.2 x 98.2cm,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견도> 사도세자 추정, 서로 어울려 뛰어노는 두 마리의 작은 강아지와 이를 바라보고 있는 큰 개의 모습을 수묵으로 묘사하였다. 영조의 아들이자 정조의 부친으로서 후일 장조(莊祖)로 추존된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작품으로 전하고 있으나 그림 자체에서는 화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 현재 액자로 표장되어다.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그런 맥락에서 최근 방영되었던 EBS의 <토종견문록>이 매우 흥미로웠다. 다큐를 이끌어 가는 곽수연 작가는 ‘개’를 주제로 작업을 하는 전통화가인데, 전통화 방식으로 ‘개’를 재해석 하여 작업을 수행한다. 그녀의 작품 전반적인 분위기는 과거 선조들의 그림방식을 띄고 있지만, 등장하는 개들의 모습은 현대적 시류를 반영하여 기존의 전통화와는 조금 다른 양상이다. 때문에 그녀의 그림에는 흐름에 맞게 변화한 ‘개’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과거 선조들의 전통화에서 토종견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접할 수 있었다면, 그녀의 작품에는 의인화된 인간 같은 모습의 ‘현대견’들의 세련된 모습이 등장한다. 동시에 색감이 넘치는 색채는 ‘현대식 전통화’ 느낌을 더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녀가 토종견을 따라 떠난 <토종견문록>은 현대적 전통화에 토종견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면서 더 그 의미를 발한다.

 

<토종견문록> 출처: <EBS> 

 

<토종견문록> 속 토종견으로 소개되었던 진돗개 ‘진명’이는 곽수연 작가 못지 않은 그림실력을 뽐낸다. 입에 붓을 들고 물감을 찍어 발라 우연찮은 선들의 집함을 그림으로 꾸리는 것이다. 작가는 이처럼 각자 특별함이 있는 토종견들을 삽살개를 시작으로 진돗개, 동경개, 풍산개, 불개를 차례대로 만나며 그림을 그린다. 이처럼 작가와 개의 만남을 토대로 도시에서 접하기 힘든 토종견에 대해 생각해보면, 일본의 토종견이라는 시바견에게 관대한 모순적인 현상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물론 현대인이 반려견으로 선택하는 개체가 주거공간의 변화뿐만 아니라 일제감정기라는 어두운 역사적 시기를 보내며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외래종에 더 관대한 기형적인 문화를 재차 곱씹게 되어서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곽수연, 출처: <ART Road77>

 

<독서삼도> 곽수연, 2011, 출처: <ART Raod77> 

 

<도원을 찾아서> 곽수연, 2010, 출처: <ART Road77> 

<몽유> 곽수연, 2010, 출처<ART Road77>

 

반 고흐는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면마다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습작들이 너무나 많아서 언제 그렸는지 시기를 알 수가 없어 그림의 주체로 등장하는 꽃의 종류와 시든 정도를 보고 그림의 정보를 유추했다고 한다. 전통화 속 개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사진과 영상이 없었던 선조들의 개를 유추할 수 있는 건, 전통화에 등장하는 개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흘러 문득 지금의 개들을 유추할 때, 우리는 어디서 토종견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을까. 시의를 반영하는 현대적 전통화에도 토종견의 모습을 많이 보고 싶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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