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TONE : Period Color

20.11.18 0

초등학생 시절, 선생님은 ‘성교육’을 명목으로 남학생들을 모두 운동장에 내보낸 뒤 교탁 위에 조심스레 무언가를 꺼내놓곤 했다. 나름 ‘성교육’이라는 타이틀 아래 ‘성(性)’은 분명 남녀 모두 해당하는 사안인데, 어째서 우리만 하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땐 그냥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몸짓은 피임도구라도 꺼냈을 법한 ‘조심스러움’이었는데, 항상 그 파우치 속에는 애꿎은 생리대가 자리했었다. 마치 생리는 여자들만 이야기할 수 있고, 여자들만 아는 이야기, 아니 그보다 ‘생리’가 무조건 들키지 않고 숨겨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출처: 픽사베이

여중, 여고를 가서도 이 흐름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 행정 직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자였던 그 공간에서조차 소수인 남성을 의식해서 갑작스레 터진 생리에 당혹감을 금치 못하고 귓속말로 생리대를 찾아야만 했다. 마치 홍길동처럼, 사회 분위기상 ‘생리’를 ‘생리’라 부르지 못하는 시류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생리를 ‘대자연’으로, 학술용어 같은 느낌을 주는 ‘맨스’로 대치해 부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왜 ‘생리’가 금기어가 된 것일까. 사실 그렇다고 해서 2020년인 지금도 생리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생리컵, 출처: 픽사베이 

 

각종 CF에는 생리대의 흡수력을 자랑하는 광고를 찍으며 빨간 색상대신 푸른 액체를 사용하고 있고, 과할 정도로 위생과 산뜻함을 강조한다. 그런 기능 좋은 생리대를 살 형편조차 못되어 고민을 하는 여성 청소년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여성노숙자들은 생리대를 구할 수 없어 키친타월을 물에 적셔 말려 사용한다고 한다) 이렇듯 여성이 한 달에 한 번 꼭 겪어야 하는 몸의 기질적인 현상이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숨겨야 할 것’으로 치부되면서, 음지에 가려진 여성들이 더욱더 음지에 가려지게 됐다. 어쩐지 조금 슬픈 이야기다.


Period color, 출처: CNN

이러한 맥락에서 세계적인 색채 연구소 팬톤(PANTONE)이 ‘정혈=생리(period)컬러를 출시한데서 반가움을 느낀다. 팬톤은 스웨덴의 여성용품 회사인 <인티미나>와 협업하여 해당 컬러를 출시했다. 출시 의도는 월경 인식 프로젝트의 일환, 말 그대로 여성들이 자신의 생리에 대해 보다 자유롭고 편히 공론화하기 바라는 데서 시작하였다. 이러한 출시 의도와 기획에 맞게 팬톤이 선보인 컬러 칩은 생리를 상징하는 강렬한 붉은 색과 자궁 선화가 가미되어 있다. 어쩐지 그간 CF에서 그토록 강조하였던 청량함을 의미하는 ’푸른 컬러‘와 대비되는 인상이다.

 

 

gucci dress, 출처: 구찌 

 

과거보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한 것들이 있다.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삶과 밀접한 색(色)을 다루는 연구소에서 이러한 상징을 출시했다는데 더 의미가 깊다. ‘생리’라는 일상에 밀접한 컬러를 출시함으로써 여성들이 해당 담론에 대해 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 서다. 더 이상 학교 성교육 시간에 ‘생리대 사용법’이나 이를 쉬쉬하게 만드는 문화가 ‘성교육’이라 일컬어지지 않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 ‘마법’, ‘그날’, ‘대자연’ 등의 대치어가 본디 언어를 찾길 바라면서 팬톤이 반영할 사회적 흐름 역시 기대된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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