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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인 알약, 피모지

21.01.18 0

스스로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팔팔하던 체력이 어느 순간 맥을 못추릴 때다. 20대 중반에는 각종 영양제를 챙겨 먹는 직장 상사를 보면서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당시 상사가 내게 ’한 번 먹어보라‘며 건넸던 영양제의 크기와 양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번에 다 삼키기 어렵던 그 영양제를 보면서 기함을 금치 못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누구보다도 많은 영양제를 먹고 있는 나를 보면 실소가 터진다.

 

이미지 출처: pixabay

 

나이가 들며 생긴 또 다른 변화는 습관적인 ’깜빡‘이다. 이러한 증세는 직장 생활과 루틴이 반복될수록 심화되었다. 시간 단위로 끊어지는 바쁜 일상을 보내며, 나름 까먹지 않으려고 매번 같은 시간에 동일한 행위를 하는데, 그래서 더 잘 까먹더라. 같은 루틴이 반복되니 ’했는지 안 했는지‘ 헷갈리는 것이다. 가끔 핸드폰을 냉장고에 넣었다든가, 눈앞에 물건을 두고서도 못 찾는 엄마를 놀렸을 때 ’너도 나이 들어봐라. 넌 안 그러나 보자!‘ 했던 말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Pimoji, 이미지 출처: <ASIA DESIGN PRIZE>

 

이러한 맥락에서 2020년 이탈리에서 개최한 <A 디자인 어워드>와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에서 수상을 한 ’피모지(Pimoji)‘가 인상깊다. ’피모지‘는 알약의 ’Pills’와 문자로 감정과 정서를 나타내는 ‘이모지(emoji)’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알약의 형태로 복용과 그 기능을 직관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약을 복용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러한 직관적인 시도는 편리함을 안겨준다. 그도 그럴 게 ‘피모지’를 보자마자 ‘오! 아이디어 좋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피모지’는 인체 내 장기를 모티브로 해서 약효를 발휘하는 기관을 약의 모양으로 나타냈다. 때문에 자신이 복용하는 약이 인체의 어느 부분에서 기능을 하며, 자신이 어떤 약을 복용하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직관적인 디자인은 한글 습득에 어려움이 있거나 복용을 자주 잊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Pimoji, 이미지 출처: <ASIA DESIGN PRIZE>

 

해당 디자인을 선보인 건, 놀랍게도 국내 대학에 재학 중인 최종훈 디자이너다. 그는 평소 약을 많이 드시는 할아버지께 영감을 받아 해당 디자인을 떠올렸다고 한다. 가히 일상에 밀접한 디자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흥미로운 건, ‘피모지’를 두고 갑론을박 하는 관련 업계 사람들과 사람들의 반응이다. 논란(?)이 일은 건 해당 디자인이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Pimoji는 인간의 장기에서 영감을 얻어 알약의 형태를 직관적으로 알기 쉽게 끔 바꾼 새로운 형태의 알약입니다. 한국의 노인들은 많은 만성질병을 앓고 있으며 그만큼 많은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들은 시력도 나쁘고 기억력도 좋지 않아 증상에 맞지 않는 약을 잘못 먹기도 하고 너무 많은 약을 과다복용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습니다. 반면에 기존의 알약들은 생김새도 대부분 비슷하고 각 약들마다 구분하기도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그래서 Pimoji를 제안합니다.

Pimoji는 병의 원인이 되는 장기들의 모티브를 따와서 해당 약이 어떤 장기나 증상에 도움이 되는지 한눈에 보기 쉽게 디자인됐습니다. 심장관련 질병약은 심장모양으로, 진통제가 필요한 경우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사람의 모양이라든지, 대장 등 각각의 병이 일어나는 장기들과 신체부위들을 모양으로 잡아서 자신이 현재 어떤 병에 도움이 되는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Pimoji는 노인들 뿐만이 아니라 시각장애를 앓아 약을 구분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출처: <ASIA DESIGN PRIZE>

 

실효성 측면에서 살펴봤을 때, 그가 설정한 약의 형태가 하나의 장기에만 작용하지 않을 수 있고 현실적으로 그러한 형태를 제약사에서 생산할 수 없다는 이유다. (시중에 출시된 약이 모두 ‘원형’인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또한, 어린이와 노년층같은 약자의 편의를 위해 개발되었다는 측면에서 되레 ‘시각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명칭’에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모지’라는 표현이 일본식 표현이기에 이를 지양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다.

 


Pimoji, 이미지 출처: <ASIA DESIGN PRIZE>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가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이를 디자인으로 소화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디자이너 스스로 ‘피모지’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위대한 발명품, 세상을 뒤흔든 ‘발견’은 이처럼 ‘불가능하다. 비현실적이다’는 발상에서 시작됐다. 언젠가 그의 ‘피모지’도 실제로 실현되어 각광받을 날을 기대한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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