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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가족

21.09.27 0

논문 프로포절을 앞두고 주제에 대해 고심을 하던 어느 날, 무작정 던진 교수님의 질문에 “비장애 형제의 심리를 추적하고 싶어요”라는 답변을 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접했던 대부분의 전공 서적들이 장애인의 자립에 대해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주양육자인 보호자에 대한 심리는 언급하고 있었으나 비장애 형제에 대한 시선은 다소 낯설었기 때문이다. 사실 장애아동의 사회적 자립을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 모두의 힘이 필요한데, 각 가족 구성원의 역할에 따른 심리/정서적 반응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My Sibling Has A Disability>

“초등학교 3학년 때 저와 싸운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야, 너네 오빠 장애인 등록 한다며? 이제 공식적으로 바보되는거냐?’. 그때 오빠가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저를 공격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그래도 저는 오빠의 병을 숨기지 않았어요. 엄마가 늘 말했거든요. 오빠가 남들과 다른 건 장애가 있어서 그런거고, 장애는 부끄러워하거나 숨길게 아니라고요.”


“어머니의 말씀을 계속 마음에 품고 사셨군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얘기지만, 어릴 적엔 오빠의 장애를 저를 높이고 방어하기 위해 썼어요. ‘나는 이런 역경과 고난을 잘 이겨내고 살아가는 훌륭한 사람이야'라는 거죠. 그렇게하면 사람들이 제 앞에서는 장애를 놀림거리로 삼지 않았고, 저를 장하게 봐줬거든요. 그런 제 자신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만 둘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대학에 왔어요. 그때 반수를 결심해서 학교 사람들과는 한 학기만 지내면 됐죠. 적응을 못 하더라도 그냥 떠날 수 있으니 처음으로 오빠 얘기를 안 꺼내 봤어요. 그래도 괜찮더라고요. 나 자체로 나가도 괜찮은 거였어요.” 

 

 

“엄마가 귀에 못박히도록 한 말이 ‘장애는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게 아니다'였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어요. 어느 날 친구랑 술을 먹다가 고민을 털어놨어요. ‘나는 사실 오빠를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려 했었는데, 그걸 이제서야 직시하게 됐어.’라고요. 그런데 친구가 ‘야, 너가 그러면 안 되지'라고 하더라고요. 장애인 형제를 둔 사람은 무조건 그 형제를 사랑하고 돌봐주고, 어려운 감정은 극복해내야 한다는 말이었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게 자연스러우니까요.

 

근데 그거 어려운 일이거든요. 이해하라고, 사랑으로 돌보라고 말하는데 그 안에는 수많은 과정과 어려움이 있어요. 장애가 없는 형제도 서로 죽일듯이 미워하기도 하고, 또 좋아하기도 하잖아요. 저희도 똑같아요. 어쩔 때는 부끄럽고 밉지만, 어쩔 때는 보고싶고 귀엽죠. 물론 저도 극복하고 싶지만, 고군분투하는 중이에요. 사실 그 친구도 제가 오빠 얘기를 하기 전까지 동생 욕을 엄청 했었거든요.”

 

 

“자폐성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한 가지에 집착하곤 해요. 저희 오빠는 돈을 되게 아끼거든요. 현금으로 모으는 것에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라서 누구한테도 주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데 제가 가끔 슬며시 ‘치킨 시켜줘’ 하면 몰래 서랍에서 꺼내서 돈을 줘요. 또 한번은 제가 옷장에서 뭘 꺼내다가 부딪혀서 ‘아!’하고 소리를 낸 적이 있었는데 저 멀리 있던 오빠가 막 뛰어와서 괜찮냐고 물어본 적도 있어요. 소소한 기억들이지만, 저에겐 소중해요. 오빠가 저를 많이 좋아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순간들이었으니까요.” 

 

<My Sibling Has A Disability>

“자폐성 장애를 가진 동생이 있어요. 모든 일의 중심에 동생이 있었죠. 글짓기 대회를 나갈 때도 동생에 대해 썼고, 진로를 정할 때도 동생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정신과 의사나 사회 복지사가 되겠다고 했어요. 부모님의 칭찬을 받는 것도 동생을 잘 돌봤을 때였어요. 선생님의 칭찬도 언제나 ‘아픈 동생을 뒀는데도 의젓하게 참 잘 하는구나'였고요. 성인이 돼서도 동생 생각밖에 없었어요. 뭔가를 즐길 때면, 또래 친구들은 다 누리는 것이었는데도 사치처럼 느껴졌어요.

‘동생하고 부모님은 힘든데, 나만 이러고 있어도 되나?’싶었죠. 몸은 밖에 있어도 생각은 언제나 가족에게 있었던 거예요. 그렇게 이십대 후반이 됐어요.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뚜렷한 이유없이 정말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갔어요. 그 자리에서 알게 됐죠. 그때까지 저는 ‘장애인의 언니'로만 살아왔다는 걸요. ‘제 자신’이 아니고요. 그 날 이후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됐다는 기분이 들어요. 장애인의 언니로서 해야할 일이 아니라 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고, 걷고 싶은 길을 걷기 시작했거든요.”


“심리 상담에서 어떤 말을 들었나요?”


“대단한 말을 들은 건 아니에요. 그저 동생이 아니라 온전히 ‘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였을 뿐이에요. 별 말도 안 했는데 눈물이 났어요. 처음이었거든요. 동생이 아닌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대한 건.”

 

 

“그간 못 나갔던 모임에도 나가고, 못했던 취미 활동도 하고 있어요. 저라는 한 명의 사람에게도 다양한 모습이 있더라고요. 여전히 저다운 제가 누군지 찾아가는 중이죠. 누구나 자기만의 삶을 살아야 해요. 그래야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거든요. 지금 저는 동생을 돌보는 것과 제 삶을 사는 것의 균형점을 찾고 있어요.”

 

한 전공 수업에서 다른 교수님은 최근 중국을 방문했다가 과거에 비해 장애인이 많이 줄어들어 놀랐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처음에는 중국의 의료기술이 그만큼 발전했다고 생각했는데, 곱씹어 보니 그러한 자신의 생각이 부끄러워졌다고 했다. 사실 ‘장애인이 줄었다’는 명제는 의료기술이 발달해서 그만큼 장애인의 수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시설물의 규준이 비장애인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장애인들은 나올 수 없어서’였던 것이다. 교수님은 자신의 편협한 시각을 부끄럽다 말하며 혐오의 속성에 관해 이야기를 했고, 당시에 접했던 ‘혐오의 끝은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라는 명제가 여전히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 경험담을 접하고 나서부터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며 내 눈에 띄지 않는 너머의 시선에 대해 항상 고심하게 되었다.

 

<My Sibling Has A Disability>

 

“아빠가 장애가 있는 동생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기관에 보내자’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가족이고 아들인데 그렇게 말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어요. 정말 미워했었죠.”


“지금은 달라졌나요?”


“제가 한글을 깨우칠 때 아빠가 동요를 전지에다가 써서 벽에 붙여 놓고 같이 읽어보고, 그 다음에 제가 혼자 읽어보고, 다 읽을 줄 알게 되면 전지를 뜯어내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갔었어요. 이런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버지는 참 다정한 분이셨어요. 지금도 그런 면이 분명히 있고요.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늘 그런 생각을 해요. 아빠도 아들에게 어려움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은 처음이었을 거잖아요. 분명히 쉽지 않았고 힘들었을 거예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저는 책가방에 그날 수업이 있는 과목 교과서만 넣어 가면 된다는 걸 몰랐어요. 그래서 매번 모든 책을 다 들고 다녔죠. 하루는 집에 와서 책을 다 책상위에 꺼내놨다가 깜빡해서 책 없이 학교에 간 적도 있어요. 8살 때 기억인데 그게 그렇게 선명해요. 아무도 안 알려줬거든요. 원래 그 나이 때는 부모님이 알림장과 시간표를 같이 봐 주고 책가방 싸는 걸 도와준다는 것도 한참 지나서야 알았어요. 부모님은 자폐성 장애가 있는 동생을 돌보느라 제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으셨거든요. 저는 그렇게 나이에 비해 무거운 책임감을 지고 커왔어요.“

“네 살 때 동생하고 커튼 뒤에 몰래 숨어서 앞머리를 서로 잘라줬어요. 우리는 잘 잘랐다고 생각했는데, 누가봐도 쥐 파먹은 것처럼 티가 나서 부모님한테 혼났죠. 웃음나는 기억이에요. 동생은 자폐성 장애가 있어서 의사소통 하기가 어려워요.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제가 네다섯살 때 의사소통이 더 잘 됐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저도 어려서 말을 잘 못 했거든요. 의사소통 능력의 차이가 적었던 거죠. 대화가 안 돼도 통하는 게 있었거든요.”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제가 아직 이런 부분은 소화가 잘 안 돼서. 괜찮아요. 원래 잘 울어요. 그리고 이렇게 한번 울고나면 괜찮아져요.”

 

<My Sibling Has A Disability>

“오빠는 저를 정말 좋아해줘요. 맛있는 걸 먹으면 항상 제 생각이 나나봐요. 제가 없을 때 제가 좋아하는 걸 음식을 먹으면 ‘이거 태량이가 좋아하는 거니까 남겨놓아야 해’ 하거든요. 또, 하루 이틀 정도 집을 비우면 항상 보고 싶다고 카톡이 오고요, 아주 어린 시절 말고는 오빠랑 싸운 적도 없어요. 가끔 친구들이 형제들이랑 싸운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오빠는 나 되게 좋아해주는데’ 하고 자부심이 들 때도 있어요.오빠는 제게 무거운 사람이지만, 없으면 안될 것 같아요. 가족이니까요. 그리고 오빠가 저를 너무 사랑해주니까요.”

 

임상에 있다 보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만나며 각자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사실 대부분의 시선은 장애를 가진 본인과 그 보호자에 향해있기에 그 너머의 가족들의 이야기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너머의 가족’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울 사람들>이 다룬 ‘비장애 형제의 삶’은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My Sibling Has A Disability>

“제 동생은 저와 두 살 터울이지만 발달장애인이라 수나 돈 계산 같은 것도 전혀 못 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해요. 그러다 보니 때로는 동생이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해요. 제가 어쨌든 평생을 책임져야 하니까요. 최근에 상담을 받았는데, 저의 가장 큰 두려움이 동생보다 먼저 죽게되는 것이더라고요. 근데 그것보다 더 큰 감정은, 동생이 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거예요. 동생이 제게 주는 정서적 충만함이 참 크거든요. 동생은 함부로 나를 판단하지 않아요. 덕분에 저도 동생 앞에선 매우 솔직해질 수 있죠.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도 동생은 나를 나로서 받아 들여주니까요. 그래서 바라보고 있으면 행복하고, 애틋하고, 편안해요. 전적으로 나를 수용하는 존재가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에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성격이 폐쇄적이었어요. 모두하고 잘 지내지만, 절친은 없는… 내 얘기는 절대 안 하고 그냥 들어주기만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나에 대해 하나둘씩 말하다 보면 동생 얘기까지 나올까 봐 그냥 개인적인 질문을 다 차단했어요. 그런 질문이 나오면 은근슬쩍 말을 돌리거나, 불편한 티를 내 거나 해서요. 근데 고1 때 끊임없이 저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정말 포기하지 않고. 어느 날은 반 애들 앞에서 ‘야 나 네 동생 봤다. 네 동생 태권도 다니지.’ 이러는 거예요. 친구들 앞에서 한 번도 내 동생을 공개한 적이 없는데 그러니까 미치겠더라고요. ‘내가 이런 이야기 싫어하는 거 알면서도 나를 곤란에 빠뜨리려고 일부러 저러는구나.’ 싶어서 걜 정말 싫어했어요.

근데 고3 때 또 같은 반이 된 거예요. 근데도 제가 계속 쌀쌀맞게 대하니까 어느 날은 걔가 저를 데리고 상담실에 가더라고요. ‘나 너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공부가 안돼.’ 라면서요. 그 친구가 상담 선생님께 제 얘길 하니까 저를 한번 데려와서 같이 이야길 나눠보자고 하신 거죠. 그 친구와 상담받으면서 처음으로 ‘사실 내 동생에게 장애가 있다.’고 털어놓았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저에게 ‘네 동생이 장애가 있다는 걸 친구들한테 말하면 친구들이 떠날 것 같아? 라고 물어보더라고요. 사실… 그게 정확했거든요. 흠을 보이면 애들이 저를 싫어할 것 같았어요. 장애인이 학교 내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그 장애인의 형제자매가 어떤 놀림을 받는지 초등학교 때 봤으니까... 근데 그냥 그 순간 느껴지더라고요. 걔가 저에게 그렇게 물어보는 순간, ‘아 안 떠나겠구나’라고.”

 

<My Sibling Has A Disability>

“어느 날 친구랑 다큐멘터리 같은 걸 보는데, 장애인 아들을 가진 엄마가 나왔어요. 되게 힘들어하고 지쳐서 포기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 나왔거든요. 근데 그 친구가 그걸 보더니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자식을 안 사랑하나? 모성애가 없는 거 같아.’ 이러는 거예요.


그 순간 ‘너는 장애인과 살아봤니?’라는 말이 바깥으로 나올 것 같더라고요. 사회적으로 장애인 가족은 오로지 장애인 가족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있어요. 모든 가족이 장애인을 정말 사랑해야 하고, 잘 보살피고 그런 ‘그려진 장애인 가족의 모습’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장애인 복지가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순간순간 ‘나 편하려고 이런 생각을 하나? 오빠를 위하는 척하지만 결국 나를 위해서 이런 생각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아무래도 복지가 잘 마련되면 오빠를 부양하는 제 부담이 줄어드니까요.”


“그런 생각이 나쁜 건가요?”


“아뇨. 안 나쁜 것 같아요. 근데… 그게 너무 나쁜 것처럼 느껴져요.”

 

 

어쩌면 비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까지 더해져 이중고통을 받을지도 모르는 ‘너머의 가족’들이 있다. 물론, 비교적 최근에는 과거와 달리 ‘비장애 형제’를 위한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자조모임이 운영되는 등의 발전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역시 진보해야 할 때이다. 앞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의 사회구성원에 익숙해지길 바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표용력 역시 커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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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 출처: <Humans of Seoul>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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