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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타이포그래피의 힘

14.04.14 0

타이포그래피는 힘이 있다. 단순한 글자의 나열이 아닌 글자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무언가를 창출한다. 한글 타이포그래피 역시 그렇다. 타이포그래피로 한글을 접할 때, 한글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그 이상이 된다. 하나의 작품 그 자체가 되며 우리는 이에 반응하고 소통한다. 여기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힘을 보여주는 타이포그래퍼들이 있다.

 

1. 김기조

요즘 가장 인기있는 한글 타이포그래퍼 김기조, 그의 이름은 몰라도 그의 작품을 한번쯤 접해봤을 것이다. <장기하와 얼굴들> 앨범커버 디자인으로도 유명한 그는 투박하면서도 세련된 감각을 자랑한다. 그의 타이포그래피는 복고적이지만 이를 풀어내는 마인드와 슬로건은 사람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싫은데요’,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 등 그의 메시지는 우울하고 냉정하나 불쾌하지는 않다. 누구나 한번쯤 마음속에 품어봤을 법한 생각을 하나의 작품으로 접하니 왠지 속 시원하다. 실제로 그는 사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고 하니 어쩌면 우리가 그의 작품에 공감할 수 있는 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 김기조의 타이포그래피들 (출처 : http://kijet.egloos.com)

 

김기조의 메시지가 더 와 닿는 건 그의 타이포그래피 트레이드마크인 굵은 획의 장방형글꼴 때문일 것이다. 탈네모꼴이 주를 이루던 때, 그는 반대로 네모진 틀 안에 글자들을 우겨넣는데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단순히 네모를 채우는 것이 아닌 그 안에서 획을 구부리거나 글꼴을 기울이는 등 변형을 주어 그만의 독특한 타이포그래피를 탄생시켰다. 여기에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리듬감을 부여하고 작품 하나하나 개성을 넣어 레터링 자체만으로 작품이 되고 우리는 이에 반응하고 소통하게 된다. 타이포그래피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레터링이 디자인의 전부가 된 것이다.

 

 

2. 故 김진평 교수

여기 또 한명,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타이포그래퍼가 있다. 한글에 대한 애정으로 한글 타이포그래피 기틀 마련에 힘쓴 故 김진평교수가 바로 그이다. 7~80년대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는 리더스다이제스트, 테이스터스초이스, 서울여자대학교, 한국존슨즈 등 지금까지도 널리 쓰이는 로고타입을 만든 장본인이다. 단순히 촌스럽다는 이유로 작품을 만들 때 한글보다 영어를 사용하던 시절, 그는 ‘바람직한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발전을 위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과제는 한글 콤플렉스의 극복’이라고 말하며 주체의식을 가지고 한글조형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 故 김진평 교수의 타이포그래피들

 

한글의 조형성은 그가 작업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었다. 조형적 요소를 통해 그는 효과적인 시각전달을 하였다. 글자가 지닌 의미를 구체적으로 전달하면서도 형태에서 보여 주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통해 의미 전달을 강화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보는 사람을 집중시키며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한국적인 서정이 느껴지는데 이는 한글의 조형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적인 정서를 가미한 결과이다.


앞으로 소개할 작가들은 한글만 고집하는 아티스트들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삶 속에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타이포그래피를 전하며 자신만의 방식대로 한글을 표현하며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3. 이재민

혹시 지하철 플랫폼에서 아래 포스터를 본 적이 있는지.

- 이재민의 명동예술극장포스터들 (출처 : www.leejaemin.net)

 

바로 그래픽 디자이너 이재민의 작품이다. 그는 한글만 고집하는 타이포그래퍼는 아니지만 명동예술극장포스터, 메가박스 아이덴티티작업, 몽구스, 원펀치 앨범 커버 디자인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한글을 맛있게 표현하는 타이포그래퍼이기도 하다. 인상 깊은 작업으로는 국립민속 박물관의 전시였던 <소금 꽃이 핀다>포스터를 들 수 있다. 염전에서 나는 소금에서 모티브를 얻어 디자인한 이 포스터는 파란배경과 타이포가 실제 바다와 소금 같다는 평가를 받으며 CORE77어워드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소금 결정들이 모여 하나의 글자를 이루고 글자들은 마치 하나의 소금밭같이 조화를 보여준다.

 

<소금 꽃이 핀다> 포스터

 

그리고 명동예술극장의 포스터 역시 그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이다.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이나 활동의 포스터를 그가 디자인하기 시작하면서 극장만의 아이덴티티가 확실해 졌다. 그전의 포스터들은 극장, 연극들과 연계되지 않은 장식적인 디자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그의 포스터는 장식을 걷어내고 산세리프체를 이용한 간결하고 깔끔한 타이포그래피와 하나의 색, 장식을 배제한 이미지 등 작품의 중요요소에 초점을 맞춰 시각적인 집중도를 높였다. 그 결과 극장, 작품과 포스터의 연계성이 높아지고 통일성이 부여되면서 자연스럽게 명동예술극장의 디자인아이덴티티가 만들어졌으며 더 나아가 명동예술극장만의 브랜딩 구축에도 일조하였다.

 

 

4. 박우혁

다음으로 소개 할 디자이너 박우혁은 테이크아웃드로잉 소식지를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함께 작업하였고 그의 포트폴리오에서도 뗄레야 뗄 수 없는 작품들이다. 그는 텍스트를 디자이너가 옮겨주는 것이 타이포그래피라 생각하며 타이포그래퍼는 글의 맥락을 이해하고 각 해석의 절충안을 찾아 표현해야한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마음’을 담고 싶어한다.

 

- 박우혁의 <manifesto>

 

이러한 그의 작품관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보여 진다. <타이포잔치 2011> 출품하였던 manifesto에는 그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메시지에 울림이 있고 희망이 있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고민했던 문제들을 구체화시키고 작품으로 구현해냈다. manifesto는 그의 고민이 투영된 결과물이고 텍스트에 마음을 담았다. 좋은 작품에는 작가의 가치관과 신념이 반영된다. 더 좋은 작품은 반영된 작가의 가치관과 신념을 독자와 나눈다. 그의 고민은 희망으로 귀결되었고 독자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 박우혁의 작품들 (출처 : www.typepage.com)

 

한글 타이포그래피에는 힘이 있다. 이 힘의 원천에는 훌륭한 타이포그래퍼들에 있다. 네 명의 작가들을 살펴보았고 그들은 각자의 개성으로 각자 다른 매체를 통해 그들의 존재를 알렸다. 레터링, 로고타입, 포스터 등 타이포그래피는 어디에나 녹아있다.

혹자는 아직 한글 타이포그래피가 확립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 앞서 소개한 작가들이 그랬듯 지금도 누군가는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고 작품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앞으로의 한글 타이포그래피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해답이 있다,

 

김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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