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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을 향한 밑그림

21.10.27 0

언젠가 우연치 않게 접했던 글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다.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세금 고지서를 받았다는 건 당신이 직장이 있다는 사실이고, 날 화나게 하는 가족이 있다는 건 당신에게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다’라는 내용이었다. 부정적인 마음이 가득 찬 때라 그랬을까. ‘천하태평한 소리하고 앉아있네’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싶어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러한 논리는 그간 수 없이 접해왔던 ‘컵에 물이 반이나 있네(=반 밖에 없네)’의 예제와 같았다.

 

 

누리호 발사장면, 출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지난 주, 한창 과학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에게 자주 받았던 질문은 “누리호 발사 봤어요?”였다. 그러고 보니 몇 달 전부터 <누리호>로 시끄러웠는데, 역사적인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2021년 10월 21일 오후 5시. 그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우주를 향해 뻗어나갔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실패했대요”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했던 말은 “괜찮아”였다. 직접 누리호를 개발하지도, 그간 누리호에 딱히 관심이 있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한 국민으로서 가슴 한 편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제2 발사대에 기립되는 누리호1, 출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실제로 <누리호>는 지난 2010년부터 약 10여년 동안 자체 국내 기술로만 제작된 액체 로켓이다. 물론, 발사된 국내 로켓에는 <나로호>도 있었지만, <나로호>의 1단 로켓을 러시아가 개발했다는 점에서 <누리호>와는 변별되는 특성을 가졌다. 무엇보다 ‘빨리빨리’ 수식어를 가진 민족특성 때문인지 특히 이번 <누리호> 개발은 타 국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수준의 인력과 짧은 시간으로 기술 개발을 해냈다. 그래서일까. 이번 로켓발사의 성과를 부정적인 측면보다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특히 <누리호> 발사 관련 브리핑에서 권현준 연구정책관이 울먹이는 모습에 ‘실패’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개발해가는 과정을 성공 또는 실패라고 규정 짓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거의 끝까지 왔고 마지막 계단 하나가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년 5월에 성공시킬 수 있도록 격려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권현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거대공공연구정책관

 

<누리호>는 총 3단계에 걸쳐 성공을 가름했다. 비록 이번 발사의 결론은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그 안에는 단순히 ‘실패’라고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성과가 녹아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누리호>는 1, 2단계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다만, 3단계인 위성모사체가 궤도에 안착하기까지 46초 만을 남겨두고 엔진이 연소되어 버렸다. 그러나 최종단계에서의 아쉬움을 감히 누가 ‘실패’라 칭할 수 있을까. 희망적인 사실은 기술개발 자체는 성공적이기에 내년 5월 경 2차 발사 때는 보다 진전된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누리호에서 내려다 본 지구

 

사실 지난 10여년 간의 노력을 16분으로 평가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한국사회에서 바라보는 실패에 대한 단상을 자각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늘었다. 때문에 최근 개최되었던 올림픽에서도 2030의 젊은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지 못해 국민들께 죄송하다’ 대신 올림픽이 주는 의미에 대해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지 출처: 국제갤러리 부산 <사물의 뒷모습> 안규철 

 

같은 맥락에서 안규철 작가는 지난 여름 부산 국제갤러리에서 개최한 <사물의 뒷모습>展에서 <실패하는 방법>을 신작으로 선보였다. 작업은 2014년 세월호 참사에서 시작되었으며 당시 구글 검색을 통해 얻은 ‘성공 10계명’ 문구를 반대로 표현해 작업을 완성했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하면 실패하는지를 가르치는 데는 없어요. 대표적인 성공법 10가지를 뒤집어 실패하는 방법을 적었어요. 일종의 역설이죠. 당시는 포스터로 만들어 관객에게 배포했던 걸 캔버스로 옮긴 작품이죠. 왜 우리는 실패하는가, 실패에 대해서는 왜 준비하지 않았나 등의 질문들을 붙들고 있었어요.” 출처: <브릿지 경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실패’에 인색하다. 재미있는 지점은 그에 상응하는 ‘성공’에도 그다지 관대하지 않다는 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열광하는 한류 콘텐츠나 신기술, 자동차 기술조차도 해외에서는 인정하는 것들에 쉬이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되레 해외의 어떤 부분이 좋다며 쉽게 상향평가하고, 나를 보는 잣대에는 인색하기만 하다. 물론 예로부터 ‘겸손’이 미덕이라 칭하는 관습에 의해 발현된 집단적 사고겠지만, 이는 때때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건강하지 못한 정서로 이어지기가 쉽다.


<HOW TO FAIL IN LIFE>

10. DON’T PALN
9. TRY TO CLIMB A MOUNTAIN BEFORE YOU EVEN LEAVE THE HOUSE
8. BE PESSIMISTIC
7. BE SCARED
6. BE DISTRACTED BY A SINGLE BATTLE FROM THE WAR
5. BLAME ANYONE AND EVERYTHING BUT YOURSELF
4. BE IN THE WRONG PLACE
3. DON’T CARE
2. DON’T TAKE RESPONSIBILITY FOR WHAT HAPPENS IN YOUR LIFE
1. GIVE UP

 

 

그렇다면 이제라도 실패가 아닌 ‘성공’에 주목하는 것은 어떨까. ‘물이 반밖에 없네’와 ‘물이 반이나 있네’는 인생을 보는 관점을 전환한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보다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그게 곧 성공을 향한 밑그림임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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