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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법칙, 피트 몬드리안 (Piet Mondrian)

14.04.23 2

<구성10 (바다와 부두), Composition No. 10 (Pier and Ocean)>, 1915, 캔버스에 유채, 85x108cm

'관계’라는 단어는 많이 쓰이는 말이다. 예를 들면 ‘친구관계, 애인관계, 부모자식관계,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 등 아무데나 들어가는 소금처럼 아무데나 갖다 붙일 수 있는 말이다. 우리는 이 단어를 사용할 때 대개 ‘관계가 있다.’ 라는 말보다 ‘관계를 맺는다.’는 말을 더 많이 쓴다. ‘열매나 꽃망울 따위가 생겨나거나 그것을 이룬다.’는 뜻을 가진 ‘맺다’라는 말을 관계에 쓴다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와의 인연을 맺는 것이 우연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큰 노력과 시간을 들여 필연이 될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관계는 맺는다고 끝까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서로의 감정노동이 필요하다. 어색한 첫 만남부터, 장점을 알고 단점을 못 본 척 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 등의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서로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가족보다 새로 만난 친구와의 약속이 더 소중했던 청소년기 시절을 보내고, 폭발적으로 인간관계가 넓어지던 20대 초반에는 더 정신 없이 사람을 만나고 다닌 것 같다. ‘깊고 좁은’ 것보다는 ‘넓고 얇은’ 관계가 좋다고 생각했던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생활의 주가 되어 살았다. 대학교 1학년 때 나는 ‘학생 수의 반과 친구가 되기와 학교의 모든 축제에 참여하기’라는 목표를 세웠었고, 그것을 이루려고 학생회와 동아리들을 정말 열심히 했었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고, 그들과의 시간을 즐기면서 나는 그들에게 ‘밝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으로 평가 받았다. 나는 대부분의 모임에서 분위기메이커를 자청하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받았던 에너지가 나에게 돌아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제와 돌아보면 주변 사람들의 고민과 해결점은 잘 알면서 정작 나의 문제와 나의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점이다.

너무 많은 가지들이 큰 가지들을 에워싸며 중심이 무엇인지를 모르게 만든 것 같다. 소중하다고 생각해왔던 시간들이, 어쩌면 잔가지를 치지 않아 큰 가지가 더 크지 못하게 만든 시간은 아니었나 싶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부모님과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한 것, 친한 사람들과의 시간을 많이 이어가지 못한 것 등등 아쉬운 점들이 많은데, 주변 사람들이 나만을 이해해주기를 바란 이기심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관계의 법칙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 우리는 피트 몬드리안의 나무 그림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몬드리안은 나무의 기본 구조와 형태를 그림에 표현하려고 했다. 1909년 그는 ‘신지학협회’에 가입을 했는데, ‘신지학’은 일반적인 현상들 속에서 보편적인 특성을 끌어냄으로써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신지학의 영향으로 몬드리안은 우리가 보는 사물 속에는 모든 것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본질이 내재해 있으며, 그 본질은 궁극적으로 조화로운 상태를 이루고 있다고 파악하게 된다.
(출처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50&contents_id=907)

 

몬드리안은 신지학의 영향에 따라, 세상의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겉에 드러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는 나무의 겉모습을 제거하고 기본적인 구조와 형태만을 표현하기 위해서 나무 연작을 통해 자신의 독창적인 그림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그가 행한 노력들은 다년간에 보이는 ‘본질을 찾는 작업’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는데, <붉은 나무>에서 확연하게 단순화 된 <회색나무>와 <꽃피는 사과나무>를 보여주고, 그 이후 1915년 정도의 그림을 보면 구성요소를 더욱 단순화하기 위해서 곡선과 대각선을 피하고, 수직선과 수평을 사용한다. 나무 연작 다음에는 타원 구성작품으로 그의 그림은 이어지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1930년의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으로 연결된다. 결국 주변의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본질만이 남는다.

 

<붉은 나무 (The Red Tree)>, 1908, 캔버스에 유채, 70x99cm

 

<회색 나무 (The Gray Tree)>, 1911, 캔버스에 유채, 79.7x109.1cm

 

<꽃피는 사과나무 (The Flowering Apple Tree)>, 1912, 캔버스에 유채, 78×106cm

 

<타원의 구성(나무들), Oval Composition (Trees)>, 1913, 캔버스에 유채, 98x77cm

 

<색상 면들이 있는 타원형의 구성 (Composition in Oval with Color Planes 1)>, 캔버스에 유채, 1913-14, 107.6 x 78.8cm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Composition II in Red, Blue, and Yellow)>, 1930, 캔버스에 유채, 51x51cm
(이미지 출처 : http://www.piet-mondrian.org)

스무 살부터 만든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했던 -어쩌면 전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관계망은 빗자루로 툭툭 건드리면 없어지는 거미줄처럼 산산이 부서지곤 했다. 나를 둘러싼 가장 가까운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견고하다고 생각된 ‘사회적인 관계’가 너무 쉽게 부서질 때였다. 힘이 들 때 옆을 보면 나의 기본이 되어주는 가장 가까운 주변사람들이 단단하게 있어주었다. 새로운 충격과 새로운 위로를 받기 위해서 내가 너무 멀리까지 돌아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반성하게 된다.  

넓은 관계와 인맥은 정말 중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관계가 끝이 보이는 관계라면 애써 나를 태우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는 조금씩 생각이 든다. 내가 멀리 돌아간 사이 가까운 사람들과 벌어진 틈을 사이사이 메울 수 있는 시멘트가 있다면 좋겠다. 여전히 이기적일지 모르지만, 나의 본질이 되는 주변 사람들의 귀중한 시간에 오늘도 내가 포함되어 있기를 아주 조금 바란다. 그리고 그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이기적인 제게 당신들의 귀한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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