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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ART ROAD] 그리며 하는 세계일주 : 상처의 에티오피아

14.04.24 2
[365 ART ROAD] 그리며 하는 세계일주:
상처의 에티오피아

 

 

 

No.169
Traditional dress, Ethiopia

 

에티오피아는 내가 절대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는 나라이다.

이 여행을 남녀의 ‘연애’에 비유한다면,
에티오피아는 남자친구와 밀당을 잘해 오다가
믿었던 남자친구에게 제대로 뒤통수 맞았던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결과적으로 나에게 상처를 가장 많이 남겼던 곳.

잊고 싶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곳
바로 그 이유이다.

 

 

 

‘인제라, 여행 중 처음으로 맞지 않는 음식을 발견하다.’
- Addis Ababa, Ethiopia

 

No.172
Injera, Ethiopia

여행을 하면서 살이 쪘다.
분명 힘들게 여행을 하는데 살이 쪘다.

그 이유는 물론 야채와 과일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고 항상 기름기 많은 저렴한 길거리 음식들로 배를 채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주어진 모든 음식들을 큰 거부감 없이 너무나 잘 소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통 여행자들이 음식으로 힘들어 하는 인도에서도 매일 현지 음식으로 4끼를 먹으며 단 2달 만에 5킬로를 찌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과연 이 세상에 나에게 맞지 않는 음식이 있을까 싶었다. 바로 그것과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두 달간의 파란만장했던 마다가스카르 여행의 온기가 채 식기도 전에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에서 출국 스탬프를 찍는 직원 놈이 내가 여권 커버에 깊숙이 꽃아 놓은 50달러가 넘는 현금을 빼간 것을 비행기에 탄 후에야 알게 되면서 마다가스카르와의 이별의 순간이 그리 유쾌하게 마무리 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 비행기는 케냐 나이로비에 아침 10시 반에 도착했고, 나이로비 공항에서 꼬박 17시간을 기다린 후 다음 날 새벽 3시 반에 에티오피아 행 비행기를 탔다.

에티오피아에 도착하기까지 겨우 한 시간 정도 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 그래서 정말 무거운 피곤함을 온 몸에 얹고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 비자를 받고 공항을 나왔다.

아디스아바바 카우치서핑 친구 ‘와코’가 쪽지로 미리 설명해 준대로 공항 앞에서 노란 색 택시를 타고 와코네 집으로 찾아갔다. 집에 도착한 후, 와코와 함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신다는 와코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밥을 먹었다.

그 메뉴는 ‘인제라’였다.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인제라'는 에티오피아의 전통음식이자 일반적으로 가장 흔히 먹는 음식이고 테프라는 곡물로 만든 반죽을 구워 팬케이크처럼 동그랗게 만든 것이다. 그 느낌은 공기구멍이 안에 가득한 마치 얇은 스펀지와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인제라를 넓은 접시에 펴서 올린 후, 그 위에 양념된 고기나 야채를 반찬으로 올린다. 먹는 방법은 손으로 그 인제라를 조금씩 뜯어서 그 반찬처럼 올려 진 음식들과 함께 먹는다.

처음에 그 음식을 받고 맛을 보았는데 시큼한 맛이 나는 인제라와 매콤한 반찬들의 조화가 그리 나쁘진 않았다. 늦은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에 배도 출출했기에 배불리 한 접시를 뚝딱해치웠다.

그날 저녁, 내 몸은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했다.

갑자기 열이 나고 몸에 오한이 오면서 속은 채 한 것 같은 느낌에 미식거림이 함께 왔고, 결국 그날 새벽, 화장실에서 먹은 것을 다 개어내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속이 너무 안 좋아서 혼자 바늘로 열손가락을 따야 할 정도였다. 정말 고통을 참고 바늘로 찌른 열손가락에서는 검붉은 피가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몸이 피곤해서 몸살에 걸리고, 음식을 급하게 먹어서 심하게 체를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덕에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며칠 간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뒤 아디스아바바에서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레이주에 있는 오래된 도시인 ‘악숨’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디스아바바에서도 거리가 꽤 멀었던 도시이긴 하지만 하루면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하루 만에 갈 방법은 없었고, 1박 2일이 걸린다고 했다. 그런데 이 버스가 밤에도 내내 달려서 1박2일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 6시에 중간도시에 도착하면 승객들이 그 주변에서 알아서 숙식을 해결하고 다음 날 다시 그 버스를 타고 출발하는 독특한 시스템이었다. 다행히 당시 몸살기운은 많이 좋아졌고, 체한 것 같았던 속도 거의 회복되었다. 점심시간과 저녁시간 모두 현지인들과 함께 식당에 가서 어김없이 인제라를 시켜 먹었다. 여기 에티오피아에서는 식당에 가면 너무나 당연시하게 인제라를 먹는다.

그리고 그 날 밤, 또 다시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속이 채 한 것 같으면서 미식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새벽에 못 참고 화장실에 가서 몇 번이나 토를 했다. 속이 다 뒤집어 진 상태에서 토는 계속 나왔고 그 상태가 너무 힘들어서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이것이 내가 무리해서 몸살이 난 것도, 음식을 급하게 먹어서 채 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인제라’때문이었다.

인제라를 먹은 날이면 어김없이 이 같은 증상을 보였다.

처음에 말했던 악숨까지의 1박 2일은, 무슨 이유인지 하루가 더 늘어 2박 3일이 걸렸다. 나는 악숨에 도착하는 그 2박 3일 동안 버스 안에서 고열에 시달리며 아픈 배를 붙잡고 고개조차 들 수가 없었다. 심지어 중간에 차를 세우게 해서 내려서 토를 했어야 할 정도였다. 눈물이 펑펑나고 같이 버스를 타고 이동했던 현지 사람들의 걱정과 위로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인제라만 보면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지금까지 7개월 동안 여행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지역음식 때문에 고생한 적이 없었는데,

‘도대체 왜 내 몸은 인제라를 거부하는가.’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이다.
그 뒤로는 나의 에티오피아 여행에서는 ‘인제라’는 없었다.

‘인제라. 넌 나와는 아닌가 보다.’

 

No.170
Ethiopia

 

 

 

‘에티오피아, 악마를 경험하다.’
- Bahar Dar, Ethiopia

 

No.176
악마의 위장
Bahar Dar, Ethiopia

 

아픔을 통해 배운다고 했던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던가.
만약 그 때 내가 겪었던 그 사건도 이에 속한다면 나는 차라리 배우지 않는 것을 택하고 싶다.

‘일어탁수’ 물고기 한 마리가 큰물을 흐리게 한다라는 말이 있다면, 나는
‘일악인탁국’ 악한 놈 한명이 나라 물을 흐르게 한다라는 말을 만들고 싶다.

나에게 여행국가 호불호를 나누는 기준이 있다면, 보통 그 나라의 문화유산과 자연경치보다,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이 좌우한다. 그렇기에 정말 안타깝지만, 이번 에티오피아 여행은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에티오피아의 북서부에 위치한 바하르다르라는 도시는 나의 에티오피아에서의 마지막 여행지였다.


나는 여행 할 때에 가능하다면 국제 네트워크인 카우치서핑을 이용하여 현지인의 집에서 묵어왔다. 지금까지 만났던 친구들은 모두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고, 그 친구들 덕분에 많은 추억을 만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카우치서핑에 대한 강한 신뢰감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버스를 타고 바하르다르에 도착해 숙소를 찾기 위해 동네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고 있을 때였다. 한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건다.

“묶을 숙소 찾아요?”
“네, 이제 찾아보려고요. 저렴한 곳 추천해 주실래요?”

그 사장이라는 사람은 뭔가를 생각하더니 한 마디 한다.

“혹시 카우치서핑이라는 거 알아요? 진짜 도움이 필요하다면 우리 집에서 지내도 돼요.”

그가 먼저 ‘카우치서핑’이라는 단어를 내 뱉는 순간, 나의 경계심은 사라져버렸다.

“카우치서핑이요? 당연히 알죠.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카우치서핑을 얼마나 많이 이용해왔는데요. 카우치서핑 멤버예요? 정말 반가워요.”

반가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오늘 처음 본 사람을 덜컥 믿고 집으로 따라 가는 것은 꺼려졌다. 그런데 마침 그가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걱정 말아요. 저 혼자 사는 거 아니고, 할머니, 부모님, 사촌동생들까지 다 같이 살고 있으니까.”

그 말을 들으니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의 집으로 가보았다.
집에 들어서니 정말 그의 말대로 할머니, 부모님, 사촌 여동생들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이었다.

이름은 ‘토마스’. 그와의 악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토마스는 나에게 빈 방을 내어주며 내 집처럼 편하게 지내라고 했다.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들 모두도 인상도 좋아 보였다. 토마스는 식사도 대접해 주었고, 그날 밤 동네 바에서 함께 맥주도 마셨다.

보트투어 사장이라는 그는, 다음 날 내가 보트투어로 가는 길까지 배웅해 주었고, 투어를 마치는 시간에 맞춰 나를 기다려주기도 했다. 너무 예의바르고 착한 토마스는 정말 좋은 친구였다. 그는 자신의 동네 친구들을 자주 소개시켜주었는데, 식사를 할 때마다 친구들을 불러서 함께 먹었다. 그럴 때면 그 친구들은 토마스를 대장처럼 모셨고, 내 앞에서 토마스의 칭찬을 끝임 없이 했다. 나는 생각했다. 토마스는 친구들에게도 이렇게 인정받는 친구이구나.

그렇게 나에게 무한신뢰를 잘 쌓아오던 그가 어느 날 나에게 부탁을 했다. 지금 일 때문에 급하게 70달러정도가 필요한데, 카드가 작동하지 않아 돈이 안 뽑힌다며 나에게 잠깐 빌려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내일 은행에 가서 바로 돈을 뽑아 갚겠다고 했다. 그를 의심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나는 알겠다며 내가 가지고 있던 현금을 그에게 빌려주었다.

그날 밤, 토마스는 나에게 일몰을 보러가자고 했다. 나는 알겠다며 일몰을 보러갔다. 그리고 가져간 아이폰으로 일몰사진을 찍었다. 원래는 핸드폰 같은 것은 아프리카여행을 하면서 절대로 밖에서 꺼내지 않는 편인데, 지금 바로 옆에 믿음직한 현지인 친구도 있기에 걱정없이 핸드폰을 꺼낸 것이었다. 일몰을 다 본 후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샤워를 했다. 그리고 나와서 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토마스가 갑자기 내 방을 노크한다.

“너 혹시 잃어버린 물건 없어?”
“잃어버린 물건? 없는데, 왜?”

“아니 아까 우리가 일몰 봤었던 그 곳에 내 친구도 있었는데, 우리가 떠나고 간 다음 어떤 사람이 그 자리에서 뭔가를 급하게 주어서 갔다고 연락이 와서, 혹시 네가 뭘 흘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 보는 거야.”

나는 토마스의 말을 듣고 내 보조가방을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아뿔싸. 내 가방에서 핸드폰이 사라졌다.

“이럴 수가, 내 아이폰이 사라졌어!”

토마스는 이럴 줄 알았다면서, 그 때 네가 거기다가 흘리고 온 것이 아이폰인가 보다며 난리를 쳤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나에게 화가 났고, 스스로를 원망했다.

눈물이 나왔다. 너무 짜증이 났다.

그러나 빨리 정신을 차려야 했다. 누군가가 내 핸드폰을 악용하기 전에 분실신고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전화로는 힘드니 인터넷 카페를 가야했다.

토마스는 나를 위로하며, 나를 데리고 근처 인터넷카페로 갔다. 나는 빨리 핸드폰 분실신고를 했고, 터덜터덜 인터넷 카페를 나왔다.

그 다음 날, 핸드폰을 잃어버린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토마스가 오늘 친구들과 근처에 당일치기로 소풍이나 가서 바람이나 쐬고 오려고 하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그의 친구들과 차를 타고 시내를 살짝 벗어나 소풍을 나왔다. 방갈로 같은 방을 잡았다며 친구들과 음식도 시켜먹고, 노래도 듣고 시간을 보냈다. 당일치기로 소풍을 나왔는데 방갈로를 잡아서 놀 때부터 나는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어야 했다. 그렇게 금방 해는 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 친구들이 뭘 두고 왔다면서 집에 갔다 오겠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들과 함께 집에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토마스가 이 친구들은 어차피 집에 갔다가 와서 한 두 시간 뒤에 다 같이 집에 갈 거라면서 여기서 기다리자고 한다. 그리고 나는 그걸 또 믿었다. 젠장.

우리 둘을 남기고 간 그 친구들은 결국 그 날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토마스에게 말했다.

“나 집으로 갈래.”

하필 밖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무슨 공포영화가 시작된 기분이었다.

“비가 너무 많이 오잖아, 그리고 친구가 차를 가져가서 우리가 돌아갈 방법이 없어. 아마 친구들도 돌아오려고 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못 오는 것 같아. 여기 있다가 내일 아침에 가자.”

정말 속으로 쌍욕이 흘러나왔다. ‘이놈이 작정을 하고 나를 여기로 데려 왔구나.’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이 닥친다는 상상을 하면, 그 놈에게 욕을 퍼부으며 그곳에서 나오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진짜 그런 상황이 되어보니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그 이유는 첫 째, 나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며, 이렇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여기서 나간다하더라도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이 없었다. 내가 여기 올 때 주변 환경을 봤을 때 이곳은 정말 구석에 박혀있는 곳이었고, 주변에 도로도 없었다. 정말 개인 차량이 없이는 움직이기 힘든 곳이었다.

그리고 둘 째, 내가 화났다는 것을 이놈에게 그대로 다 보여주며 욕을 하고 싸운다고 하며, 이놈이 정말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일이었다. 정말 남자가 작정을 하면 이겨낼 여자가 몇이나 있을까.

이러한 여러 상황을 생각해 볼 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은 이놈이 괴물이 되지 않게 잘 타일러서 아침까지 버티는 방법이었다.

그 놈은 침대에 있었고, 나는 오늘 밤 절대 잠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하지만 장소, 시간, 친구들까지 동원해서 이런 계획을 짠 놈이 자기 생각대로 일이 안 풀리자 제대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의 완강함에 그는 결국 포기를 해야 했지만, 밤새 의자에 앉아 밤을 지새워야 했던 그 시간이 정말 짜증났고 화가 났다.

시간은 흐르기에 아침이 되었고, 나는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놈은 나에게 빌려간 70달러를 아직 갚지 않은 상태였고, 나는 그에게 재촉했다.

그런데 그 날 밤 이 후, 그가 집에 돌아오질 않는다. 나는 집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의 사촌여동생이 조용히 나를 부른다.

“아.. 이런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서 불렀어요.”

그 뒤로 이어 나온 그녀의 말은 가히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토마스는 여행자들을 이런 식으로 불러들여 물건을 훔치고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 했단다. 이 전에는 몇 번 감옥에도 들어갔다 나온 전과까지 있었다. 가족들 사이에서도 인정한 악질 중에 악질이란다. 사촌 동생이 해주는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다리의 힘이 풀렸다. 그러면서 마치 흩어져 있던 퍼즐이 다 자기 자리를 찾아가 맞춰 지듯이 머리에서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는 카우치서핑 멤버도 아니었으며, 보트투어 사장도 아니었고, 사라진 내 아이폰도 그가 훔쳐 간 것이었으며, 토마스와 항상 어울려 놀던 그 친구들은 모두 내 앞에서 토마스를 신뢰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위한 연기자였던 것이다. 머리가 어지럽고 분노가 치솟았다.

얼굴이 뻘게지도록 치솟았던 분노 덩어리가 어느새 복수의 덩어리로 바꿔있었다.
그는 정말 악마였다. 내가 제대로 악마를 만났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일은 다 벌어졌다. 꼼꼼히 의심하지 못했던 나의 탓도 있을 테지만, 처음부터 악의를 품고 달려드는 놈을 당해 낼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그 날 밤, 하루 종일 집에 나타나지 않았던 그는, 내가 잠시 밖에 나간 틈을 타서 내 가방을 털었다.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은 여권과 신용카드는 찾아내지 못했는지, 현금만 사라졌다.

그러면 이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물을 것이다.

‘왜 이 모든 사실을 부모님과 할머니 외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았지?’

나도 그 생각은 당연히 했고, 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설상가상 그 때 그의 할머니가 생사를 왔다 갔다 하실 정도로 위독하셨고, 그 이유로 가족들 모두가 굉장히 슬픔에 빠져있었고 예민해 있었다. 며칠 간 그 모습을 봐왔던 나는 그 상황에서 당신 아들, 손자가 나에게 이런 짓을 했고, 이런 나쁜 놈입니다. 제가 손해 본 것 대신해서 라도 갚아주세요. 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방을 가지러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눈물이 멈추지가 않았다. 그런데 너무 서글프게도 집안에 들어가서 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문 밖에서 펑펑 눈물을 흘리며 한참을 울었다. 그냥 당장이라도 한국 집에 가고 싶었다.

눈물이 그친 후, 하지만 물론 눈이 퉁퉁 부어있는 상태로, 배낭을 가지러 집으로 들어갔다.

그 때였다. 내가 못 보던 한 아저씨가 들어오신다. 그 분은 토마스 그 놈의 삼촌이자, 아프신 할머니의 아들이었다.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현재 독일 좋은 회사에서 일을 하시고 계시다는 그 삼촌은 위독하신 할머니의 건강 상태를 듣고 독일에서 여기로 날아오신 것이었다. 자주 집에 오셔봤자 2년에 한 번 정도 오신다는데, 내가 그 집에 있을 때 마침 찾아 온 것이었다. 그 분의 이름은 ‘페레케’였고, 페레케 삼촌은 나의 수호천사였다.

나는 할머니를 뵈러 집에 온 페레케와 마주쳤고, 그 순간 페레케는 ‘많이 힘듭니다.’라고 쓰여 진 나의 퉁퉁 부은 얼굴을 보았다. 페레케도 토마스의 삼촌으로써 그의 전적을 다 알고 있었고, 가족들이 나를 토마스의 친구라고 소개하면서 페레케는 많은 것을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잠시 시내에 나가면서 나를 부른다. 그리고 나를 근처 카페로 데리고 갔다.

“토마스의 친구라고? 무슨 일 있는 거 맞죠? 다 말해 봐요.”

그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아오던 것들이 차분하게 물어오는 페레케의 질문에 모든 것이 눈물과 함께 터져버렸다. 나는 페레케에게 그 간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다 얘기했고, 페레케는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이야기에 굉장히 충격을 먹은 듯 했다.

페레케는 당장 짐을 싸서 그 집을 나오라고 했다. 나는 페레케 삼촌의 말 대로 짐을 싸서 그 집을 나왔다. 전에 예약해 두었던 버스는 내일 출발하는 것이었다. 페레케는 우선 호텔을 잡아주었고 나에게 이곳에서 지내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잃어버린 것을 모두 다 보상해 주긴 힘들겠지만, 토마스를 대신해서 정말 너무 미안하고 사과하고 싶다며 나에게 어느 정도의 돈을 주셨다. 그리고 여기서 아디스아바바까지 버스를 타고 가려고 했던 나에게 항공권을 사 주셨다. 그 비행기는 바로 그 다음 날 새벽 아침 비행기였는데, 그 시간에 맞춰 택시를 타고 내가 묵는 호텔로 오셔서 함께 공항까지 같이 가주셨다.

하지만 토마스에 대한 복수심은 여전했다. 처음에는 그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그놈의 방에 있는 모든 물건을 다 훔쳐서 다른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생각해봤고, 아니면 물건을 다 불태워 버릴까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계속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나도 결국 그 놈과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밤새 생각한 결과 나는 그에게 편지를 썼다.

‘토마스. 지금처럼 이렇게 사는 것은 너를 위해서도 좋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고 상처 줬던 것은 다 너에게 몇 배로 돌아 갈 테니, 지금이라도 이런 만행들을 멈췄으면 좋겠어. 부디 옳은 길로 살길 바란다. 그렇게 되길 기도할게.’

그리고 그 편지를 페레케에게 주며 꼭 토마스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나에게 진심으로 그를 위해 기도할 수 있길 먼저 기도해야 할 일이었다.

 

사실 그 때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심적 고통으로 아프리카 여행을 마치고 이동한 유럽에서도 언뜻언뜻 떠오르던 그 기억 때문에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그 아픈 경험을 통해서 정말 많이 성숙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를 너무 힘들게 했고 큰 상처를 줬던 사람을 아무런 복수 없이 이해하려 노력했고 그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려 노력했다. 사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성격 급하고 욱하는 성격이 컸던 내가 어떻게 그 일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나로써도 신기하다.

과장해서 말하면 이제 내가 용서 못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다. 처음의 용서는 그렇게 힘들었을지 몰라도 이제 내가 할 용서들은 조금 더 담담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페레케와 헤어질 때, 삼촌은 나에게 은 팔지를 하나 선물로 주셨다. 그리고 계속해서 토마스를 대신해 사과를 했다.
그 뒤로 나는 페레케가 나에게 준 그 팔찌를 빼 본 적이 없다.

그 사건 이후, 여행 중에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그 팔지를 본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그 때를 생각해봐, 지금 일은 아무것도 아니지?’

 

 

 

나에게 아프리카 여행은,

 

No.103
Zanzibar pizza cook
Zanzibar, Tanzania

아!프리카 여행은 나에게 힘든 기억, 좋은 추억, 사람들을 만나며 잊지 못할 이야기를 주었지만, 그와 함께 나에 대한 발견도 했던 여행이었다.

아프리카 여행 중에 나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색을 찾았다는 것이다. 나는 미술을 전공했고 정말 다양한 색을 알고 사용해 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는 색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무슨 색을 가장 좋아해요? 라고 물으면. 난 항상 좀 생각하다가 3개정도의 색을 둘러말하곤 했다. 사실 꼭 좋아하는 색이 꼭 한가지여야 하고 꼭 좋아하는 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말하면서도 항상 확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잘 모르겠다면 모르겠다고 하면 되는 건데, 내가 미술을 전공하는데 좋아하는 색 하나가 없다니, 그냥 없다고 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나 보다. 그런데 여행 6개월 만에 마다가스카르 버스 안에서 깨달았다. 유레카. 그리고 그 순간은 나에겐 정말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 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정말 별거 아니었지만 나에겐 중요한 발견이었다.

 

- 따뜻한 아프리카 사람들의 웃음

 

그림_No.97 sindy & sandile, zimbabwe

 

아프리카 여행을 마치며 나는 생각했다.

아프리카라는 막연한 두려움. 흑인에 대한 어려움.
왜 겪어보지도 않고 두려움만으로 벽을 치려하지? 두려움은 상대에 대한 선입견을 만든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발전을 막는 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프리카의 마지막 나라 에티오피아의 토마스를 제외하고, 내가 여행하면서 가장 따뜻했던 사람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이라고 바로 말할 수 있다. 이토록 서로에게 벽이 없던 친구들은 아프리카 친구들이었다. 그 사람이 외국이든 아니든 간에 길에서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인사가 오고가는 모습들. 같은 처지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한 도와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씨. 아픈 나를 위해 버스에서 처음 만났지만 내 손을 잡고 깊이 기도해 줬던 사람들. 그 어느 나라를 갔어도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아프리카에 좋은 사람만 있다는 것은 아니다. 나쁜 사람도 있고 사기꾼도 있고 범죄자도 있다.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은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너무나도 뻔 한 이야기이지만 이 사실을 내 피부가 심장이 인정한 것은 이번 아프리카 여행을 통해서였다.

한 아프리카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서양인들에게는 우리와 같은 공동체가 없고, 모두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고만 하지, 내가 유럽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유럽에 도착하는 순간 나는 자신들을 극도로 지키려는 서양인들 틈에서 오히려 내 공간을 뺏긴 기분이었고, 내 공동체를 잃은 기분이었어.”

아프리카. 그들은 따뜻했다.

 

 

No.109
Afro hair girl, moshi, Tanzania

 

김물길

스물넷에 떠난 컬러풀한 세계일주 '아트로드' 저자

이름처럼 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2개월간 그림을 그리며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계속 이번 여행에서처럼 드라마, 코미디 그리고 로드무비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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