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Column  /  십사

새로워진다는 것, 금혜원

14.05.13 0

<Blue Territory 5, 2007, digital pigment print, 70x220cm>
(이미지 출처 : http://www.keumhw.com)


4살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살던 집은 마당이 있는 30년 된 단독주택이었다. 이웃집과 우리 집을 가르던 담벼락에는 언제든 분필로 낙서를 하며 친구들과 놀 수 있었고, 김치 항아리는 마당의 바닥에 묻어 항아리 뚜껑만 보였다. 앞에는 큰 모과나무, 대추나무, 철쭉과 개나리 등이 있었고, 이웃집 아주머니가 자기 집 옥상에 올라오시면 문이 열려있는 우리 집을 향해서 할머니와 시장에 언제 갈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날씨가 좋으면 마당 대각선으로 두툼한 솜이불이 걸렸다. 팡팡! 이불을 때리며 소독을 하는 할머니 옆에서 그저 신기해서 나도 같이 때렸던 기억이 난다

새끼를 두둑하게 밴 어미 고양이 세 마리가 담을 타고 쪼르르 걸어가면서 TV를 보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치면, 고양이가 나를 비웃는 것 같아서 창문을 닫아버리곤 했다. 우리 집 지하실은 고양이들의 새끼를 낳는 장소였고, 천장에는 고양이가 쥐를 잡으려고 뛰어다니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마당이 있기에 동네 할머니들이 우리 집으로 모두 모이셔서 낮에는 집이 시끌벅적 했고, 엄마가 회사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항상 음식과 화투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특별한 날이 되면 마당에서 얼기설기 엮어진 철망 위에 조개와 고기를 구워먹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던 집의 모습은 낡은 대문을 휘감으면서 피던 5월의 새빨간 장미와 툭툭 떨어지던 모과, 그리고 봄이 되면 집을 알록달록하게 만들던 철쭉이었다. 빨간 장미와 낡은 남색 대문과 그 앞에 서있던 자전거와 햇빛이 어우러진 어떤 오후의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을 마당 있는 집에서 보낸 것은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사한지 10년이 넘었지만 그 집의 주소는 잊히지 않고, 아직 열쇠도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5-6학년쯤, 동네가 재개발이 된다는 소리가 들렸다. 재개발이 뭔지도 모를 때였고, 그냥 동네가 좋아지는 건가 싶었다. 시간이 지나고 이사할 집이 생기자 우리 집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빌라가 세워진다고 했다. 집이 허물어지는 동안, 일하는 아저씨한테 “저 모과나무는 자르면 안돼요!”라고 했다. 아저씨는 “그럼~ 저 나무는 안 잘라! 걱정하지 마!” 라고 대답해주었지만, 1년 뒤 그 동네를 다시 찾았을 때 모과나무는 없고 성냥갑 같은 네모반듯한 빌라가 서있었다. 더 이상 그 골목 끝에는 모과나무, 대추나무, 철쭉과 지하실, 마당은 없었다. 그 이후, 나는 ‘재개발’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재개발이란 무엇일까? ‘도시 인구의 증가나 산업 기술의 발달로 이미 만들어진 도시 환경이 그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어 가는 것을 막고, 변화에 계속 적응할 수 있도록 계획적으로 개선하는 사업. 건축물이 전반적으로 낡은 지역이나 배치 상태가 아주 좋지 못한 지역의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시가지를 정리하여 토지 효용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 도시재개발의 객관적인 뜻이지만, ‘객관적’이라는 것은 동의를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모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개발 계약이 잘 되어 우리 가족은 다른 곳 아파트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콘도에 온 것 같아서 쉽게 잠을 이루지도 못했었다. 이렇게 따뜻하고, 벌레도 없고, 물도 얼지 않고! 대단하다. 그렇지만 마당은 없었고, 상추를 심을 수도 없었으며,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에 놀라 커튼을 치곤했다. 그리고 지금은 창문이 많이 커진 아파트로 이사를 왔지만, 마음이 허한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Blue Afternoon, 2007, digital pigment print, 70x262cm>

 

<Blue Territory 20, 2009, digital pigment print, 70x210cm>

금혜원 작가는 자신이 살던 주변 지역의 재개발의 과정을 보며, 재개발지역을 중심으로 철거현장에 덮인 ‘푸른 타포린’을 소재로 작품활동을 하고있다.

바다인지 땅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푸른 천은, 그 자리에 살던 사람들의 기억과 삶과 하루를 짓누르며 덮고 있는 것 같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Floating islands, 2007, digital pigment print, 70x210cm>

 

<The green pond 2, 2009, digital pigment print, 70x160cm>

 

<The pond, 2010, digital pigment print, 70x160cm>

‘갖고 있는 것을 새롭게 하고, 이전보다 더 낫게 하는’ 재개발은, 반성 없이 지금 순간을 넘기면 된다는 우리의 모습인 것 같다.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TV, 새로운 아파트, 새로운 것들. 우리는 온통 새로운 것만을 바라고, 새로운 것이 되기 위해서 노력한다. 원래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 원래 그 자리가 가진 의미를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나 역시 너무, 맥락이 없게 사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새로운 것,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으로 ‘원래 있던 것, 원래 있던 사람, 원래 있던 환경의 의미와 맥락’은 버리고 사는 것이 아닌지 질문하게 된다.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것은 ‘미안하다’는 말과 같은 의미가 있으려나?

사람들은 재개발을 통해 ‘인생의 근본’을 바꾸려고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뀌어도 ‘생각처럼 쉽게’ 원래 가졌던 기본과 근본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재개발로 인한 정말 무서운 점은, 우리 인생의 근본을 다져주었던 ‘시간, 경험, 추억’들이 흐릿해 진다는 점이다. 어쩌면 재개발은 ‘도시의 경관을 흐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을 흐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매일 새로운 이곳에서, 나는 나를 조금 지키고 싶다. 안 될 것이라고 쉽게 덮어버리지 않고, 가능성이 없다고 바로 포기해버리지 않으면서, 어렵지만 차근히 나를 지켜나가려고 한다. 더 이상 맥락 없이 살지 않도록 ‘내가 누구인지’를 두들겨 보면서, 그리고 공간과 시간에 씻겨 흐릿해질 나의 추억들과 자신감을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

 

<Blue Territory 13, 2009, digital pigment print, 70x160cm>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