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Column  /  김물길

[365 ART ROAD] 그리며 하는 세계일주: 제적이냐, 복학이냐

14.07.18 3

 

[ Spicheren, France ]

 

‘모리스와의 만남’
-여행 343일차, 모리스네

 

“7개월 만이야!”

기차역으로 나를 데리러 온 모리스를 와락 안았다.
모리스는 내가 아프리카 트럭투어를 할 때 단짝처럼 함께 했던 독일친구다. 서로 대화도 잘 통하고 즐거운 추억이 많은 소중한 친구다.내가 아프리카 여행을 마치고 독일에 도착하면 우리는 꼭 다시 만나기로 했었다. 그리고 정말 재회했다.

모리스네 가족은 독일인이지만 독일 국경에 가까운 프랑스 도시에 살고 있다. 모리스네 집에 도착해서 모리스의 부모님과 남동생을 만났다. 어머니는 정말 유쾌하고 따뜻한 분이셨다. 아버지는 분위기 있는 외모와 자상한 미소를 가지신 분이셨다. 모리스가 끔찍이도 아낀다는 동생은 그가 늘 말했듯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모리스 동생 방을 쓰게 됐다. 모리스의 가족들은 나를 특별하게 대해주셨다. 모리가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나는 그런 모리스가 데려온 유일한 친구였기에, 가족들에게 더 특별하게 와 닿았던 것 같다.모리스는 방학기간이었지만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때문에 평일에는 아버지와 함께 출근을 했고, 나는 모리스의 어머니와 평일 낮 시간을 함께 보냈다. 어머니와 나는 함께 장을 보거나 드라이브를 했고, 거실에 앉아 수다를 떨기도 했다. 영어를 잘못하시는 어머니와 독일어를 전혀 못 하는 나였지만, 단순한 영어 몇 개만으로도 재미있는 대화가 가능했다.

 

- 사랑스러운 모리스의 가족들과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면 항상 모리스의 쪽지가 놓여져 있었다.
‘나는 너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너무 기뻐.’
‘좋은 아침이야. 이따가 봐.’
모리스는 로맨티스트 친구였다.편지를 기분 좋게 읽고 잘 접어 가방에 차곡차곡 넣어두었다. 그리고 아침을 먹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 모리스의 어머니는 요리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소녀 같은 분이셨다.

예쁜 접시 위의 빵과시리얼, 싱싱한 과일이 보기 좋게 놓여있었다. 반숙이 된 계란은 계란 전용 접시에 올려져 있었다. 먹는 방법은 간단하다. 계란 위를 톡톡 깨서 작은 구멍을 낸 후, 작은 숟가락으로 속을 퍼서 먹으면 된다.계란 반숙을 이렇게 먹어 본 적은 처음이라 너무 신기했다. 이렇듯 매번 정성스럽게 아침을 차려주시는 어머니께 너무 감사했다.

나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연필꽂이에 꽂혀 있던 분홍색 형광펜으로 다 먹은 계란 위에 ‘Thanks’라고 적었다. 진심을 담은 짧은 표현이었다. (그 계란은 1년이 한참 지난 지금도 모리스네 부엌에 자리 잡고 있다. 이번 22개월 여행을 모두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생일을 맞이했을 때, 모리스네 가족은 머나먼 유럽 프랑스에서 생일상을 차리고 케이크와 함께 Thanks계란을 보이며 생일축하노래를 부르는 동영상을 보내 줬다. 이런 상황이라면 눈물이 나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정말 고마워 많이 울었다. )

 


- 2013년 12월, 생일에 모리스가 보내준 생일선물 영상

 

No.229
나무가 자라는 모자, France

주말, 모리스와 함께 시내구경에 나섰다.

크리스마스가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시내 곳곳에서 성탄절 분위기가 풍긴다. 색색으로 치장한 거리, 유난히 눈에 띄는 장면을 마주했다. 강아지와 함께 구걸하는 거지였다. 그는 쓰고 있던 검은 모자를 앞에 두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에 비해 너무 부족해 보이는 옷차림과 옆에 웅크려 자는 개를 보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거리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그에게 크리스마스는 어떠한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를 위해 검은 모자 위에 푸릇한 나무 한 그루를 심어주었다.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 겨울에는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고, 여름에는 그늘이 되어 주는 상상을 하며.

밤이 되면 나는 모리스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항상 꼭 한 번씩 하는 말은, “정말 신기해. 우리가 다시 이렇게 만나다니. 너무 좋다.”였다. 사랑이라도 싹틀 법한 로맨틱한 대화였다. 하지만 그것은 우정을 기반으로 한 진심 어린 대화였다. 나는 모리스의 집에서 5일을 보냈다. 그리고 프랑스를 거쳐 영국을 여행한 후 다시 모리스네로 돌아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나는 다시 모리스네로 돌아가지 못했다. 프랑스와 영국여행을 마치고 일정을 계산해보니, 서둘러야만 했다. 여행자로서의 여정을 선택한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랬듯, 모리스네 집에서 파리로 이동할 때도 히치하이킹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모리스는, “수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를 고속도로에 두고 올 수 없어.”라며 파리행 기차표를 쥐어 주었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했던 것이다.

 아름다운 모리스 가족의 집을 떠나는 날, 출근하는 아버지와 모리스는 이른 아침에 작별인사를 나눴다. 어머니는 기차 시간에 맞춰 나를 태우고 역으로 향하셨다. 혹시 이동 중, 배가 고플까 봐 따끈한 빵도 사서 챙겨주셨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아주머니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셨다. 케이크 모양의 작은 양초와 작은 상자였다.

“수로, 곧 있으면 생일이지? 혹시 그때 혼자라면, 이 케이크로 꼭 생일을 축하하렴. 그리고 상자는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기차 타면 열어봐.” 나는 아주머니를 꼭 안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기차가 승강장에 들어섰다. 헤어질 시간이었다. 나는 연신 창문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멀어지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끝까지 눈으로 좇으며 이별했다. 이윽고 나는 작은 상자를 열어보았다. 약간의 돈과 편지가 있었다.

‘수로야. 행운을 빌어. 많은 키스를 보내며.’ 편지의 글씨가 흐려진다. 뜨겁게 차오른 눈물이 편지 위로 떨어질까 고개를 더 푹 숙였다. 파리로 향하는 기차는 어느 때보다 따뜻했다.


초상화 No.35
모리스네 가족

 

 

제적이냐, 복학이냐
- London, England

No.234
london, England

2012년 11월 영국 런던. 부모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학교에서 우편 한 통이 왔는데, 복학신청을 하지 않으면 제적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여행은 대학교 3학년을 마친 2011년 12월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내가 여행을 시작했던 때는 이미 휴학한지 2년째 되는 해였다. 내가 다니는 대학교(경희대학교)의 최대 휴학기간은 3년이었다.나는 휴학 2년 동안 여행자금을 위해 일을 했고, 처음 여행 계획은 딱 1년이었다. 그래서 여행 컨셉이 <365아트로드> 였다. 그런데 여행을 시작 한 지 1년 동안 계획한 루트 중 반밖에 여행하지 못했다, 더불어 악착같이 돈을 아낀 덕에 예산 중 절반이 남았다. 이는 시간만 있다면 여행을 더 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하지만 대학교에 복학하지 않으면 제적을 당할 것이다.  부모님은 다른 말 없이 안내문이 왔다는 사실만을 알려주셨다. 내 생각을 먼저 듣고 싶으셨던 것이다. 

물론 제적을 당한다고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제적 후 1년이 지나면 서류심사와 면담을 통해 입학금을 내고 이수한 학년을 이어서 재입학해야 한다.하지만 학부 기록에 ‘제적’이 남는 것도 좋지 않을뿐더러,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여행에 빠져 학업을 미룬다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나는 이 고민을 통해 지금까지 해온 여행을 다시 되짚어 봐야 했고, 이후의 모습 또한 상상해 봐야 했다. 가장 큰 고민은 내가 계획한 목표대로 여행이 잘 되고 있는지, 또 앞으로 계속 진행해도 괜찮은지 였다. 365 아트로드는 큰 도전이다. 때문에 이대로 시간만 질질 끈, 구멍이 많은 여행으로 끝내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면 “끝까지 확신 있게 잘 할 수 있나.”가 중요한 문제였다. 이 부분에 대해 확신만 있다면, 제적과 복학의 고민은 쉽게 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많은 생각 끝에 나는 ‘도전’을 택했다. 여행하는 동안 나에 대한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확신’이라 함은 나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여행을 하고 싶은 만큼 해야 내가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선택의 또 다른 이유는 ‘행복’때문이었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여행을 통해 ‘인생은 행복을 즐기기에도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라는 고민 역시 많이 했다. 그리고 지금의 결론은 ‘아트로드를 계속해야 행복하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선택한 이 길은 ‘여유’를 가지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많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하지 않나. 학교는 조금 늦더라도 1년 후 다시 복학할 수 있지만, 아트로드는 지금 이때, 이 마음이 아니면 다신 느낄 수 없을 테니까. 결정을 내리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만 사실 반대하실 것 같았다. 하지만 부모님의 메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네가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일 테니 네 의견에 반대하지 않겠다. 우리는 너를 믿고, 네 선택을 존중한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부디 건강하게 네 목표를, 꿈을 잘 완성하길 바란다.”

그 순간, 부모님의 나에 대한 믿음과 그동안 만났던 아름다운 사람들이 주마등처럼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어찌나 눈물이 펑펑 흘러내던지, 그 날은 여행하면서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에 꼽힌다. 시간이 흘러 지금 이 결정이 옳았든 아니었든지 간에 지금 이 순간만큼은 씩씩하게 스스로를 믿어볼 생각이다.

 잘해보자, 김물길. 그리고 계속될 아트로드도 파이팅이다!

 

 

런던 빈티지 마켓
London, England

No.230
Brick Lane Vintage Market, london, England

주말마다 열리는 빈티지 마켓.

빈티지 의류뿐 아니라, 갖가지 소품까지 구경거리가 참 많다.
따뜻한 겨울코트를 10파운드 주고 샀다.

 

김물길

스물넷에 떠난 컬러풀한 세계일주 '아트로드' 저자

이름처럼 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2개월간 그림을 그리며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계속 이번 여행에서처럼 드라마, 코미디 그리고 로드무비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다.

3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