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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을 잃지 말자!, 작가 유승호

14.08.06 0

<어흥~ 옛날 옛적에 eoheung~ once upon a time> acrylic on aluminum, 672x98cm, 2003

 

 

“초심을 잃지 말자”

용두사미(龍頭蛇尾)를 방지하기 위해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을 잊지 말자는 말이다. 우리는 무언가 다짐할 때 ‘초심’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실, 시작할 때의 마음은 곧잘 잊게 돼 정의가 어렵다. 그렇다면 초심이란 ‘자만하기 바로 직전의 마음’이 아닐까?  초심은 즐겁다. 무언가 새롭게 내 인생에 더해진다는 것은 에너지가 넘치는 일이다. 정확한 의미는 모르지만 왠지 21세기형 인간이 되는 것 같다. 남보다 부지런히 산다는 느낌은 물론이다. 하지만 초심이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는, 새로움이 가득 찬 에너지가 너무 빨리 휘발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초심을 지키면서 처음과 중간, 그리고 끝까지 가는 일은 어렵다.  즉, 초심을 지켜 일을 마무리할 수 있느냐와 없느냐는 프로와 아마추어와의 차이다.




<눈깔사탕 ball-shaped candy> pen & styrofoam & house paint & awl, 13.2(h)x2(w)x2(d)cm, 2002

 

무슨 일이든, 처음엔 프로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10년, 20년 후의 목표를 세우다 보니 너무 먼 미래였다. 누군가는 목표 리스트를 떠벌리고 다니면 그만큼 노력을 기할 것이라 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하지만 정작 하루 만에 마음이 흔들리고 이틀 만에 마음이 흔들렸다. 때문에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비로소 새로운 일에 착수하자마자 큰 목표를 세우는 일이 과욕임을 알았다. 이제는 마음속의 파도가 한 차례 지나간 후, 그때 세우는 소박한 목표가 진짜가 됐다.

 

 

<앵- echowords> flyswatter & window & fly & pen, 2002

 

이번 일을 시작하면서도 거창한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하지만 시작한 일을 되돌릴 수 없었다. 그래서 시작할 때의 간절한 마음으로 매일 돌아가야만 했다. 지하철역에 내려 매일 성호를 그었다. “지치지 않게 도와주소서.” 다른 소원도 많겠지만 ‘내 소원은 들어주기 힘들지 않을 것 같은데’ 하는 마음으로.

때문에 ‘초심을 지키는 것’은 ‘지치지 않는 것’과 동의어다.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마음, 나를 북돋아 주던 응원 그리고 나만의 모습을 지켜나가려는 마음이 곧 ‘초심’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지만, 흔들리다 그대로 꺾여버린 꽃은 생명력을 잃는다. 나의 마음을 제대로 붙들지 않으면 누구도 나의 마음에 받침을 세워주지 않기에 초심을 잃지 않고 붙들어 놓아야 한다.

 

<bzzz… > ink on wall, 2004

 

<야~호 yodeleheeyoo!> ink on paper, 79x108cm, 1999

 

작가 유승호의 작품은 글자 하나하나가 모여 만들어진다. 그는 점을 콕콕 찍는 ‘점묘화’로 작업을 시작한다. 그 후, 단어들을 나열해 큰 그림을 만든다. ‘야호’나 ‘shooo’같은 단어들이 오밀조밀, 미칠 듯한 밀도다.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 학창시절 장난이 생각났다. 사람들이 한 번쯤 해봤던 장난의 완전체로 보이는 작품들은 작가의 초심이 끝까지 지켜졌음을 보여준다.
작가의 그림이 산수화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야~호>라는 작품 (바로 위의 그림)이다. 명화를 베껴 그린 것은 글씨 그림인 <슈->가 제일 처음이다. <슈->는 북송시기의 걸작인 범관의 <계산행려도>가 겹쳐 보인다. 작가는 한 그림을 모두 베껴 그리지 않고 여기저기 부분을 따온다.

 


<슈- shooo> ink on paper,129,6x72.3cm,1999-2000
(우측) <범관, 계산행려도> 북송시대



<어흥 옛날 옛적에 eoheung-once upon a time> ink on paper, 300x122cm, 2005
(아래) <안 견, 몽유도원도> (조선시대)

 

이렇듯 인내심 있는 작품을 접하니 ‘나라면 끝까지 그려낼 수 있었을까?’는 의문이 든다. 그런데 주어를 ‘나’로 바꾸는 순간, 자신이 없다. 끝내야겠다는 마음과 책임감을 뒤로 한 채 자진해 아마추어를 선택할 것 같다.
가정과 선택을 통해 단발적으로 이어진 인생을 진지하게 바라봤다. 비로소 기간이 길지 않은, 짧은 경험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반성했다.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명목하에 (단맛을 본 후) 너무 쉽게 흥미를 잃어버리며 깊이 알기 위해 인내하지 않음을.

“마지막까지 스스로 끝을 내본 적이 있는가?”, “시작할 때의 자극만을 즐기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많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이제, 그간 뒤로 미뤄놨던 ‘인내’를 해보려 한다. 앞으로 ‘Level-up’을 할 수 있는 바로 그 지점에서 멈추지 말자. 노력 없이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모른척하지도 말자. 초심과 마무리의 중간 과정인 ‘인내’의 시간을 버티고 지치는 마음 때문에 ‘나’를 잃지 않고 싶다.




사진출처 & 유승호 작가 홈페이지 www.yooseungho.kr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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