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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든 ‘철수’와 ‘영희’를 위해서, 작가 오석근

14.09.04 0


학교에서 잘 지내는 것이 곧 인생의 성공이라 믿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 생각 이전에 친한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교무실에 심부름 가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질문 많고 귀찮은 아이’ 였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모두 관심의 표현이었다고 하면 진심을 믿어 주시려나.

하지만 그런 이유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기 쉬웠다. “다른 것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라고 말해주는 엄마와, 사실 다른 곳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았던 나와, 그저 “착하게 사는 것”이 법이라고 생각하던 할머니. 가족과의 대화에서 나는 세상의 큰 존재를 잘 알지 못했다. 우물 밖을 살피거나 탐색해볼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고, 방법을 몰랐던 것도 같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 활동하던 RCY나 여러 동아리들, 그리고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요즘 아이들은 휴대폰으로 세상을 검색하고, 여행도 다니며 일찍부터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치고 박고 배우는 경험을 하도록 놔두는 부모들이 많지 않다. 이 시대는 “이렇게 하면 검색을 빠르게 할 수 있어. 위험한 세상엔 가면 안 돼.”라며 부모가 세상을 검색해주는 것이 아닌, “너는 작은 세상에 살고 있어. 더 큰 세상을 봐! 밖으로 뻗어 나가야 해.” 라고 직접 말해주는 부모가 필요하다. 엄마와 아빠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이들이 그저 청정한 공간에서만 자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험한 시대라고 안으로만 꽁꽁 아이를 감쌀 것이 아니라, 밖으로 경험 하게 하면서 ‘위험한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스스로 차단할 수 있게 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는 변했다. 예측할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이 변했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이 그저 ‘아이’이기를 바란다. 이는 숱한 오해와 갈등을 만든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환상을 심는다. ‘너희는 아직 순수해야 하며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그럴 수 있는 환경은 아니라는 걸, 아이들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애써 모른척하면서 말이다.

 

 

 

교과서는 바로 이런 어른들을 위한 책이다. ‘아이들이 이렇게 컸으면’하고 바라는 내용이다. 물론 아이들이 집필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방식이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는 자꾸 변하는데 교과서에 게재되는 노래 몇 곡이 요즘 노래로 바뀐다고 해서 시대와 발맞춘 것일까? 교과서에는 여전히 상식적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만 나온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아이들의 메마른 감성을 채워주는 사실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교과서는 라푼젤이 성에서 나와 왕과 왕비를 만나러 갈 때, 마음속에 일던 내적 갈등을 푸는 방법을 말해주지 않는다. 조선시대 왕들의 위대함과 어쩔 수 없던 신분관계의 정당성만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세상과 연관되거나 어른과 연관된 이야기 –부동산이나 성(性), 돈 등-를 궁금해하면 “크면 알게 돼.”라며 세상의 실질적인 이야기를 체에서 거르듯 걸러버린다. 교과서에서만큼은 바른 생활인 ‘철수’와 ‘영희’를 바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종이컵 전화기의 위태로운 한 가닥 실로 아이들에게 세상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오석근 작가는 교과서(Text book)시리즈를 통해 바르기만 했던 ‘철수’와 ‘영희’의 일탈을 보여준다. 교과서의 손 잡고 즐겁게만 살아가는 철수와 영희가 아니라, 진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두운 철수와 영희를 보여준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의 ‘착하고 새싹 같은’ 철수와 영희가 아니라, 항상 착하지만은 않으며 세상과 연결된 철수와 영희인 것이다. 그들이 가진 얼굴은 아이다운 순수하고 맑은 얼굴이지만, 부모와 어른들을 혼동케 하는 표면적인 얼굴이기도 하다. 사실 ‘순수하고 맑은 얼굴’을 가진 철수와 영희는 어두운 공간에서 서로의 몸을 탐닉하기도 하고, 우울한 정체성을 고민하기도 하며, 음침한 부두나 공사장에 있기도 하다.

 

 

 

작가는 기존의 인형 탈에서 ‘철수’와 ‘영희’와 일치하는 캐릭터가 없어서 디자인과 제작을 했다고 한다. 20~30명정도의 모델과 표준 사이즈의 사람들, 그리고 인형 탈을 썼을 때 여러 가지 느낌을 주는 대상들과 작업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모델들이 탈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다.

 

 



철수와 영희의 모습은 어른들이 보고 싶지 않은 아이들의 모습이며, ‘바르기도 하고 바르지도 않았던’ 우리들의 어린시절이다. 교과서는 우리들의 감성과 세월, 시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만약, 아이들이 교과서에서 배우는 내용대로 삶을 더욱 풍요롭게 살게 하려면 지금과 같은 교과서로는 안 된다. 인간관계 정립하는 방법, 화가 났을 때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국어와 영어와 수학과 도덕과 제2외국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 세계사와 우리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과 표현해야 하는 이유, 자살의 의미, 사회의 역할, 나를 사랑하는 방법, 성(性), 담배와 마약 등을 더욱 심도 있게 다뤄야 한다. 그러나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교과서가 사회와 동떨어지지 않고 선생님들과 학교를 위한 것이 아닌 ‘삶’을 사는 데 실질적으로 필요한 텍스트가 되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오석근 작가의 ‘철수와 영희’가 살아가는, 위험하지만 사실적이며 철저히 현실적인 작업을 응원한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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