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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객관적인 자리에서 본 ‘남편’, 오인숙 <서울 염소>

14.09.18 0

#1 오인숙. 46cm x 31cm. inkjet print. 2009

 

주변에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대 후반의 가을에는 누군가의 결혼식을 위한 일정이 항상 있기 마련이다. 잘 알든, 잘 알지 못하든 그 누군가의 결혼식은 축하와 축복을 받아야 하는 곳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참 많은 사람들과 연결이 되고, 그 와중에 어떤 사람과 인연을 맺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 전까지 서로의 좋은 모습들을 보여주고, 가족이라는 이름이 맺어지기 전까지 서로 많은 노력을 하다가 결혼을 하고도 그 노력을 잘 이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은 편해지면 녹아 들기 마련이므로, 뼈를 깎는 느낌으로 항상 마음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결혼 후 나의 가족이 된 상대방과 힘을 빼는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이 힘든 세상에 나의 편이 있다’는 의미가 있다. 나의 아버지-어머니 세대를 보면서 나는 가족의 의미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나에게 ‘가족’이란 이름은 ‘상처를 주어도 된다’라는 의미와 비슷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질 때도 있었다. 서로에게 감사한 순간이 있어도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와 비슷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경험상 ‘나의 분신과 같아서 쉽게 대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의미로 다가올 때도 있다. 그 주체는 내가 될 때도 있고, 나의 가족이 될 때도 있었다. 쉽게 다루다간 깨지기 때문에 보석같이 다뤄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나는 이제 와서야 가족을 향한 무지함이 미안해진다.

드라마에서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님들, 추석 때 “공부는 잘 되어 가니?” 라고 시시콜콜 묻는 친척들, 자신의 길을 가겠다며 서울대를 가지 않겠다는 아들을 위해서 온 친척을 모아 가족회의를 여는 친구의 아버지 등은 가족을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어느 때가 되었을 때 놔주지 않고, 어느 때가 되었을 때 상대방에게 가려야 할 질문을 멈출 줄 아는, 그런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조건이 들어가면, 우리는 다들 이성이 아닌 감정적인 사람으로 변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누군가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지금은 머리로 알지만, 내가 부모가 된다면 자유로울 수 있을까? 순간 두려워진다.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마 저 즈음이어야 할 것 같다.

 

 

#2 오인숙. 46cm x 31cm. inkjet print. 2010

 

 

작가 오인숙은 쌍둥이 두 딸을 소재로 한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남편을 사진기 앵글 안에서 보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오인숙 작가가 남편을 조금은 무심하게, 조금은 객관적이게, 그리고 조금씩 남편을 남편이 아닌 ‘한 인간’으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사진기를 통한 아주 조금의 거리를 통해서, 그리고 사진기로 남편을 10년 동안 보게 되면서 작가는 남편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작가의 남편은 대기업의 회사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구조조정으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작가의 가족은 아이들과 청도로 여행을 떠났다.

 

#3 오인숙. 46cm x 31cm. inkjet print. 2010

 

 

‘…그는 어릴 적 큰집에 가다가 풀밭에서 본 염소신세라고 자신을 한탄했다. 풀밭 가운데서 자기 목에 매인 목줄 반경만큼의 회색 동그라미 안에 있던 한 마리 염소. 동그라미 밖 초록 풀밭을 바라보던 그 염소가 참 불쌍했었는데, 커서 보니 그 목줄 길이가 딱 자기가 회사를 오가는 반경이라고 한다.

…그가 원하든 원치 않던 세상은 돌아가고, 잘 나가던 회사는 사운이 기울어 결국 회사에 구조조정의 칼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마음의 준비해왔지만, 실직은 생각보다 충격이 컸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초라해 보였고,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그를 위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조조정 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시골로 내려가 빈집을 고치다가, 학교 다니던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난 일이다. 여행 뒤의 일은 아무 것도 기약하지 않기로 하고, 돈을 아끼기 위해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무작정 중국 청도로 향했다.’       -오인숙 작가 노트 中

 

#4 오인숙. 46cm x 31cm. inkjet print. 2009

 

아마 이 세상의 많은 아버지들이 작가의 남편과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아니, 많은 아버지들뿐만 아니라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목줄의 길이만큼 움직일 수 있는 염소와, 인생의 가능한 거리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우리와, 사실 많이 다를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남편, 아내, 딸, 아들’이라는 역할 때문에 우리의 본 모습을 많이 숨기고 살게 된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비극의 한 부분이다.

 

 

#5 오인숙. 46cm x 31cm. inkjet print.. 2010

 

 

‘청도’로 떠난 그들은, 여행을 마치며 더 이상 떠밀려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온다. 그리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오, 맙소사. 죽음에 임박해서야 한 번도 제대로 살아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다니!’ 라는 경고를 되새기며, 현재를 제대로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이 부부를 보며 여러 겉치레로 잔뜩 장식한 관계로 맺어진 부부가 아닌, 맑은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는 부부라는 생각을 했다.

 

<친구 사이의 만남에는 서로 영혼의 울림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너무 자주 만나게 되면 어느 쪽이나 그 무게를 축적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 진정한 만남은 상호간의 눈뜸이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한때의 마주침이다...>

-법정 스님, <친구> 中

 

 

부부는 서로에게 최고의 친구라는 생각이 들어 이 시를 함께 적는다. ‘너무 자주 만나게 되는’ 가족과 부부는 서로의 무게를 축적할 시간적인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 여유를 갖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원래 각자가 가지고 있던 보물 같은 성격과 특성과 장점들을 시간 속에 흘려 보내고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6 오인숙. 46cm x 31cm. inkjet print.. 2013

 

#7 오인숙. 46cm x 31cm. inkjet print. 2013



가족이란, 어느 누군가의 마음대로 상대방을 제어하는 모임이 아니라, 각자의 온 마음을 바쳐 상대방을 이해하는 연습을 하는 모임이다. 가족 구성원을 ‘나와 동일한 사람들’이나 ‘남편, 아내, 딸, 아들’의 역할이 있는 사람이 아닌, ‘각자의 인생을 사는 각각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면 지금보다는 많은 가족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훨씬 넓어지지 않을까?


‘맑은 향기가 나는 가족’을 위해서, 상호간의 눈뜸을 통해 서로를 객관적으로 보며 진정한 만남을 갖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리가 평생 해야 할 연습이다. 그리고 그 연습이 진정한 가족과 부부, 진정한 인간관계의 모습을 위한 첫 걸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인숙작가의 <서울염소> 전시는 오는 2014년 9월 23일부터 9월 28일까지 ‘류가헌’에서 이뤄진다.
사진출처 및 작가노트 출처 : <류가헌> 네이버 블로그
‘류가헌’ 홈페이지: www.ryugaheon.com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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