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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수학이야. <매트릭스 : 수학, 순수에의 동경과 심연>展

14.09.23 0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와 국군서울지구병원이 있었던 자리여서 그랬을까. 예전의 건축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입구에 들어서자 어딘가 숨이 턱 막힌다. 열 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수학을 포기한 데다 하필 전시 타이틀이 <매트릭스 : 수학_순수에의 동경과 심연>이라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현대미술의 장르와 소재가 갈수록 자유로워진다지만 수학이라니. 수학을 예술에 접목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베르나르 브네, <큰 곡선을 지닌 포화>, 2008

전시장 입구의 대형 벽화는 베르나르 브네의 <포화> 시리즈 중 하나다. 수학 공식과 기호로 가득 찬 드로잉은 처음에 미술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베르나르 브네가 현대미술의 거장 마르셀 뒤샹에게 격려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아무도 사용하지 않던 '수학기호'를 그저 조형 그 자체로 바라봐주길 원한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브네의 작품은 관람객에게 스스로 '?-!'의 과정을 체험토록 한다. 또한, 수학기호와 공식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도입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199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리영역> 슬기와 민, 2014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슬기와 민(최성민, 최슬기)의 <199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리영역> 시리즈를 만나게 된다. 97년도 수능 수리영역은 역대 최고의 불수능으로 악명이 높다. 작가들은 나름의 추상법을 통해 30개 문제의 해답을 제시하는데, 수능 당일 수리영역 시간에 “잘자요~”를 외쳤던 나의 공감을 샀다. 수학, 하면 알 수 없는 추상의 선들이 복잡하게 뒤엉키는 뇌 속 회로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아서다. 여기서 전시의 목적이 드러난다. '창작활동에 단순히 수학을 대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학문이 변화시킨 우리 사회의 현재를 바라보는 각자 나름의 성찰적 태도에 주목하고자 한다-' 따로 수학문제를 풀 필요 없이 그저 수학 자체를 깊게 생각해본다는 행위에서 전시 타이틀에 '심연' 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는지 이해되는 순간이다.

'슬기와 민' 해답지 맞은편에는 예카테리나 에레멘코의 <컬러 오브 매쓰>가 있다. 모스크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이 여성은 사람들이 수학을 좀처럼 친해질 수 없는 학문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수학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언어라고 말한다. 실제로 스크린 속 주인공은 책상 앞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풍경을 돌아다니며 이것도, 저것도 모두 수학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캔버스에 담긴 회화가 아닌 그래픽 디자인, 영상, 일러스트레이션, 조형물 등 다양한 장르가 모두 수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 전시처럼 말이다.

 

 

<진리의 성> 최희진, 종이에 과슈, 2014

작은 통로에는 수학자 최재경의 방이 있다. 벽에는 최재경 교수가 30년동안 기록하고 보관한 기록이 도배지처럼 붙어 있다. 단순히 수학공식을 풀고 또 증명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노래를 나열한다 던지(철없는 아내, 미워도 다시 한번..) 순간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나 단어를 휘갈겨 쓴 것들이 그대로 나타난다. 이는 마치 수학자 최재경의 뇌를 살펴보고 더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탐험하는, 하나의 아카이브를 들여다보는 듯 하다.

 <파트 투 홀> 국형걸, 목재, 2014

건너편 전시실에는 건축가 국형걸의 조형물이 있다. 개별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반복적인 흐름은 시각화되어 공간 그 자체가 된다. 어딘지 안정적인 느낌의 공간은 국형걸이 의도한 구축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어떻게 보여주냐고? 사람들이 인증샷을 찍는 장소라는 것 그 자체다! 불안정하고 시각적으로 미운 작품이라면 사진을 찍겠는가? 단정한 아치의 공간에서 예쁘장한 아가씨가 웃으며 셀카를 찍는 순간, 공간과 사람은 순수 그 자체로 합일 되는 것이다. 

이제껏 우리가 교육받은 서구식 수학이 아닌 동아시아의 수학은 우리의 삶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9개의 페이지로 구성된 이 공간은 동양의 악보(음계), 도형, 공간, 배열 등 모든 순간과 모든 것에 수학이 배어들어 있고 동양의 관념 그 자체에 수학이 항상 존재하고 있음을 재차 보여준다. 

전시장 출구 앞에는 따스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맞아. 수학을 그렇게 어렵게는 볼 필요가 없어.’ 하며 좀 더 읽어보니 아이슈타인의 말이다. 이건 마치 호날두가 챔스리그에 나가며 '축구는 누구에게나 어렵죠'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약이 오른다. 아이슈타인은 너무 순수해서 사람 속을 터지게 하는 부류에 가까운 것 같다. 

어쨌거나 평소에 수학의 ‘ㅅ’만 봐도 겁내고 꺼리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수학이 어딘가를 투영하는 존재임을 알리는 전시였다. 언어처럼 장황하게 꾸미지 않아도, 미술처럼 색이나 스킬 없어도 수학은 사람이 스스로 사고하고 결론을 도출해내는 행위 자체에 주목한다. <매트릭스 : 수학, 순수에의 동경과 심연>展을 통해 일상 속에 스며든 수학의 이면을 제대로 확인하길 바란다.

 

 


전시기간  2014년 8월 12일 ~ 2015년 1월 11일
관람시간  화, 목, 금, 일요일 : 오전 10시 ~ 오후 6시
                  수, 토요일 : 오전 10시 ~ 오후 9시(야간개장 오후 6시~ 9시 기획전시 무료관람)
전시 하이라이트 해설 화 ~ 일 11:00 / 14:00 / 16:00
입장료 4000원 ( * 24세 이하 및 대학생은 무료관람 / 서울관 전체 관람 가능)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3, 4 전시실, 멀티프로젝트홀 중층, 복도
문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김월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예술과 친근한 세상을 만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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