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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노력과 자신과의 싸움을 보여준, 연필화가 원석연

14.10.02 0

<개미> 종이에 연필, 410x350cm, 1976

 

 

나는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지만 얕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수능영어를 공부하다 잘 안되자 영어를 놓았던 기억이 난다. 대학교 때도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들만 공부 하려 했다. 물론, 관심이 있는 것들이 내가 잘 하는 것이었지만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편은 아니었다. 단지 선택한 범주 내에서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공부 했고, 그래서 대학시절에 공부를 즐기지 못했다. 딱 한 번, 교환학생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3학년 1학기 때 열심히 공부했다. 그 때, 정말 한 만큼 나오는 게 공부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후로도 공부를 지속하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콤플렉스와 나의 발목을 잡는 일은 내가 건성으로 했거나 지레 겁먹고 포기한 것들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면, 전공이었던 불어와 이해부족으로 포기했던 경제학, 방학 때 교수님께 배우다가 놓은 스페인어, 주말에 잠시 배우던 탭 댄스, 그림 동아리, 재즈댄스 같은 것이다. ‘그 때 아주 조금만, 아주 조금씩만 노력 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자주 생각하곤 한다.

 

<굴비> 종이에 연필, 49x36cm, 1986

 

<시골 풍경> 종이에 연필, 44x27cm, 1972

 

 

생각해보니 나에겐 ‘진득함’이 모자랐다. 학습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하나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남을 위한 학습인 ‘수행목표’고, 다른 하나는 학습 그 자체에 흥미를 느끼며 공부하는 ‘학습목표’다. 나는 철저하게 ‘수행목표’를 위해 공부했던 것 같다. 부모님께서 좋아해주시고, 남들 보기에 별 탈 없을 만큼만 공부하면 ‘내 삶도 괜찮아지겠거니’ 했다. 그러니 내가 잘 하지 못하는 것은 애초에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노력하지 않았다. 어쩌면 청강생으로서 경제학원론 수업에 잠깐 나간 것도 그 필요성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해서 일 것이다. ‘잘할 수 있는 것’만 고르다 보니 굳이 진득함을 보여 줄 일이 없었고, 잘할 수 있는 만큼만 공부를 하면 됐다. 결국, 내가 느끼는 ‘무엇인가 끝까지 해내지 않았음’의 기분은 항상 ‘그 만큼만’하며 살아오며 느낀 반성이다.

 

세상을 살며 잘하는 일만 할 수 없음을, 주변 시선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위한 공부를 깊게 해야 했음을 이제야 알게 됐다. 깨달음이 너무 늦은 것은 아니길 바란다. 아마 무엇을 하고 살든, 처음에만 반짝거리는 즐거움과 짜릿함에 몸 둘 바 모를 것이다. 아마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일을 시작한다는 행복감과 긴장감에 많이 즐거울 것이다. 하지만 긴장감은 그 때뿐일 것이고, 수많은 것을 진득하게 이겨내며 해내야 하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외국어도 처음 배울 때야 재미있고 무슨 말이든 하고 싶지만, 문법을 깊게 공부하면 어려움에 포기를 하게 된다. 즉, ‘어려움을 뛰어넘느냐 혹은 포기하느냐’는 ‘내 것으로 만드느냐, 만들지 못하느냐’의 차이가 된다.

 

<벌집> 종이에 연필, 35x43cm, 1976

 

<도마 위 생선> 종이에 연필, 420x320cm, 1974

 

 

원석연 화가는 연필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사람이다. 2003년에 타계했고, 오로지 ‘연필과 종이’를 사용해 연필화 작품을 남겼다. 원석연 화가는 박정희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연필로 시작해 연필로 끝낸 하나하나의 선들을 보면, 마음이 정갈해진다. 작품을 봤을 때 작품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기에, 화가의 정직함과 고집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기에 그의 작품이 좋다. ‘개미화가’, ‘연필화가’로도 이름이 많이 알려진 원석연 화가는 신념과 고집이 있다. 그는 ‘사과를 그릴 때는 사과의 맛을, 모과를 그릴 때는 모과의 향을 그려야 한다’고 했다. 또한, 연필 선에도 음이 있고, 자연적인 색감이 내재해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그림은 꼿꼿하다. 시골의 풍경을 그렸는데 풍경이 참 정직하다. 요즘의 제주도로 비유를 하자면, 땅을 사러 오는 중국 투자 꾼이나 잠깐 오는 관광객의 눈이 아닌, 몇 십 년을 묵묵하고 꾸준하게 살아온 도민이 마을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시골이나 벌집, 생선이나 마늘, 개미 같은 것들을 정직하게 관찰하고 묘사했다는 생각이 든다.

 

<둥지> 종이에 연필, 485x34cm, 1978

 

<호미> 종이에 연필, 300x410cm, 1974

 

 

끈기와 신념, 그리고 자신이 옳다는 믿음이 원석연 화가의 작업을 만든 것이 아닐까. ‘초심을 잃지 않는 것’과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것이 자신의 인생을 바로 사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고비를 넘겨야 사람이 성숙해진다. 매번 잘 할 수 있는 곳에서 그치는 사람은, 더 이상의 발전이 없고 그 자리에 머무를 뿐이다. 반면 두려움과 무서움을 갖고 사는 사람은, ‘노력하지 않은 나’를 기억하며 후회만 하고 살 것이다. 나는 원석연 화가처럼, 원석연 화가의 집요한 끈기처럼, 나의 인생을 끈기 있게 붙잡으려 한다. 고비를 넘기고, 매번 도전하며, 시작한 일의 끝을 보기 위해 말이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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