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는 맛, 북 디자인> Lolita, 문학동네 vs 민음사

14.12.10 0

 책장 한 구석을 가득 채운 소년소녀세계 문학전집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책’이라면 내용과 질에 상관 없이 무조건 사주고 보는 부모님 덕에 아쉬움 없이 책을 왕창 보며 자랐는데, 그 땐 왠지 모르게 <피터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리스 로마 신화>같은 (영어가 들어간) 해외 문학이 굉장히 세련됐다고 생각했다. 당시, 꼬꼬마에 불과했던 나의 책 선택 기준은 ‘왠지 멋지다!’ → 집는다 → 읽는다는 간단한 프로세스로 진행됐다. 그 때는 책의 디자인이고 문체고 나발이고 일단 집고 “아빠! 사주세요!” 하면 끝났다. 그런데 사리분별 할 나이가 되고 보니 책들은 “뭔가 어색하다”. 책 표지는 나름 통일감을 주기 위해 통일 했는데 “뭔가 촌스럽다”. 하지만 삽화 속 언니오빠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잘생겨서 그 화려함에 대리만족 했던 기억이 난다. 반대로 폰트는 진지함을 조장하는 ‘명조체’ 였고 영어이름을 가진 언니오빠들이 언급될 때면 어느새 ‘고딕체’로 바뀌어 있었다.

 

금성출판에서 출판한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출처 : http://www.younglock.com/shop

 

 

- 왜 항상 등장하는 외국 언니 오빠들의 이름은 고딕체였을까, 출처 : http://blog.naver.com/zizizi0407/220080378008

 

아직도 방 한 켠엔 그 때 그 시절의 책들이 빼곡히 쌓여있다. 정갈하게 정리된 책들은 출판사별로 화려함을 자랑한다. 중구난방, 알록달록. 누가 더 멋진 놈인지 뽐내기 위해 금박테두리와 무지개 빛 그라데이션도 놓치지 않았다.

 

출처 :  http://www.e824.com/auction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 빨간색 표지와 무지개 빛 책등이 눈에 띈다. 출처 : http://blog.naver.com/zizizi0407

 

금성출판사 <칼라명작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총 30권, 1979 발행, 출처 : http://blog.naver.com/ministar14

 

외판원이 방문하던 시절이다. 부모들은 자녀교육을 위해 세계문학전집을 구매했고, 책장에 꽂힌 책은 ‘지식의 상징’이자 ‘인테리어 기능’을 수행했다. 때문에 너도나도 화려함을 필두로 금박을 내둘렀고 색채를 끼 얹었다. 눈에 띄고 고급스레 보이는 것이 북 디자인 요소였던 것이다. 더불어 당시 출판사는 해외 라이선스 없이 해적판(일본어 판을 우리말로 해석한 라이선스 없는 글)으로 판매돼 문체의 정확성도 떨어졌다. 하지만, 당시 세계문학전집을 다루는 출판사가 그리 많지 않았고 외판원의 방문으로 판매가 이뤄졌기에 책 선택 요소에 북 디자인과 문체가 큰 고려요소가 아니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정확히 1998년 8월 5일), 민음사가 세계 문학전집을 출간하면서 국내 고전시장에 한 획을 긋기 시작한다. 민음사는 이윤기의 <변신이야기> 1,2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327권의 세계문학 집을 펴냈다. (2014년 11월 기준) 2000년대에 들어서자 펭귄 클래식, 을유문화사, 문학동네, 창비가 각 회사별 특징을 살린 세계문학을 번역, 출간하기 시작한다. 확실히 과거보다 소비자들의 책 선택 폭은 넓어졌고 ‘같은 책’을 번역하는 출판사들의 마케팅 경쟁도 시작됐다. 과거, 해적판으로 출판됐던 서적들이 전문 번역가와 해당 문학을 전공한 이들의 작업으로 이뤄졌고 촌스럽던 책 표지는 한결 심플해졌다.

 

 

민음사 vs 문학동네

 

1.민음사

출처 : 민음사 홈페이지,  http://minumsa.com

 

민음사는 1998년 8월 5일, 이윤기의 <변신이야기1,2>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327권의 세계문학집을 출간했다. 국내시장에서는 독점적으로 많은 작품을 소유해 독자들의 선택 폭이 넓다. 특이한 점은 세로로 길쭉한 판형(=책의 모양) 이라는 것. 여자들의 핸드백에도 들어갈 수 있게 디자인했다는데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민음사 판형에 대한 논란은 다양한데 그 중 일부는 “손에 쥐고 읽기에 밥 맛없다”, “책을 꾸겨야 핸드백에 겨우 들어간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얇은 서적의 경우에 들고 다니기 용이하지만 페이지 수가 많으면 휴대성이 떨어진다. 물론, 콤팩트 한 디자인에 긍정적인 반응도 많다.   

 

- 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 현재는 <야성의 부름>으로 대체되었다. 

 

민음사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로로긴 판형은 1/3을 이미지로, 2/3는 제목과 원제, 저자와 역자의 정보로 채운다. 제목의 상·하단에는 바(bar)형태의 도형이 자리잡고 있다. 전체적으로 ‘사각도형’의 변형과 배치가 북 디자인 요소로 사용됐다. 바(bar)의 색상은 책등(spine of the book)의 색상과 일치하며 컬러에 따라 전체적인 책 이미지가 결정된다. 1/3 상단에 들어가는 이미지는 사진, 일러스트, 명화로 다양하다.

민음사 표지는 다소 클래식하다. 15년 동안 꾸준히 출간했기 때문인데 유행을 타지 않는다는 점에서 ‘320권디자인’을 가능케 했다. 다소 고루한 이미지를 주기도 하지만 이를 탈피하기 위한 민음사의 노력이 눈에 띈다. 과거에는 상단 이미지와 컬러가 채도가 낮은, 튀지 않는 디자인이었다면 최근에 출간되는 서적들은 강렬한 이미지와 컬러를 사용하기도 한다.

대표로 사용한 북 디자인은 <롤리타>. 지금은 절판되어 더 이상 출간되지 않는다. (해외 라이선스가 끝났다) 어린 시절 케이트 모스의 이미지와 분홍색 컬러는 <롤리타>가 주는 이미지, 그리고 나보코프의 몽환적 문체가 일치해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끌었다. 문체는 마치 ‘어떤 미친놈이 중얼거리는 말을 훔쳐보는 느낌’ 이라고.

 

# 민음사 <롤리타>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 끝. 롤. 리. 타.

그녀는 로, 아침에는 한쪽 양말을 신고 서 있는 사 피트 십 인치의 평범한 로. 그녀는 바지를 입으면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 상으로는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 안에서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거기, 어른들로부터 몇 피트 떨어져 부드러운 모래 위에서 우리는 솟구치는 욕망을 억누르면서 오전 내내 뒹굴었다. 서로를 만지기 위해 세상의 행복한 말들을 모두 동원하면서 모래 속에 반쯤 감추어진 손이 내게로 슬슬 기어오고 그녀의 가느다란 갈색 손가락들이 꿈속에서처럼 가까이 다가온다. 그러고 나면 그녀의 젖빛 무릎이 조심스레 옮겨오기 시작한다. 때로는 우연히 어린아이들이 지은 방벽이 서로의 소금기 어린 입술을 스치는 데 충분한 가리개가 된다. 이 아쉬운 접촉은 우리들의 건강하고 미숙한 육체를 너무나 화나게 해서 서로서로를 더듬는 우리 위의 차갑고 파란 물조차 아무런 위안이 될 수 없었다.

 

 

2. 문학동네

 

 

문학동네는 2009년 12월 15일, <안나 카레리나>를 필두로 뒤늦게 세계문학전집 출간 기류에 합류했다. 이들에게 민음사라는 막강한 경쟁사가 있었지만 문학동네만의 막강한 자본력과 입지는 해볼만한 시도였다. 2014년 11월 기준, 현재까지 124권의 책을 출간했다. 문학동네가 특히 주력한 부분은 ‘번역’인데 현재 활동하고 있는 소설가가 번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김영하의 <위대한 개츠비>와 최수철의 <황금 물고기>가 있다. 현직 소설가가 해외 작품의 번역을 맡는 파격적인 행보는 독자들의 호불호를 샀다. 실제로 “고전이 마치 현대소설처럼 느껴진다.”는 긍정적 반응도 있지만 “원문의 느낌을 해친다.”는 부정적 반응도 존재한다.

 

<롤리타>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http://www.munhak.com

 

판형은 기본 140*210의 크기로 안정적인 느낌이다. 민음사와 마찬가지로 상단 1/3은 이미지 삽입 2/3는 제목이 돋보인다. 전체적으로 톤 다운된 ‘흑백사진’의 느낌인데 표지 하단인 검정색 부분에는 원제가 타이포그라피로 처리 돼 있다. 타이포 처리된 부분은 시트지를 덧댄 것처럼 약간 볼록하다(일명, 엠보싱). 책의 시그니처 컬러는 원작자와 역자, 책등(spine of the book)의 색으로 결정된다. 색채는 다양한 편인데 책장에 가지런히 꽂아두면 풍기는 문학동네만의 ‘현대적 느낌’에 (이를 위해) 책을 구매하는 이들도 있다.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흑백사진’ 느낌의 차분한 분위기였다면 최근에는 선명한 ‘컬러사진’ 느낌의 디자인이다.

 

문학동네의 <롤리타>는 출간 전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도 그럴게 민음사의 <롤리타>가 라이선스 문제로 절판된 상태였고 (중고<롤리타>는 새 책 가격보다 더 비싸게 팔리고 있다.) 언어의 마술사라 불리는 나보코프만의 언어유희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과거 <롤리타>는 ‘늙은 남자의 소녀에 대한 사랑’이라는 소재가 선정적이고, 관능적 표현들이 한국정서와 맞지 않다는 고루한 이유로 롤리타의 나이가 수정되기도 했다.

 

<Lolita> 원서 북 디자인 

 

이러한 대중들의 폭발적 관심 위에 “롤리타의 표지가 어떻게 될 것이냐”는 데도 논란이 일었다. 이는 문체뿐만 아니라 커버 디자인도 원작의 느낌을 살려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함을 증명한다. 어쨌거나 문학동네는 이러한 독자들의 관심에 부응하기 위해 표지응모를 제안했다. 결국에는 기존표지(해외에서 출판된 <롤리타>의 표지를 사왔다.)가 낙점돼 또 논란이 일었지만 이제 더 이상 독자들은 ‘책이라면 무조건 사고 보는’ 시대를 지난 것이 분명하다. 문체는 ‘어떤 미친놈이 나를 다정하게 쳐다보면서 진짜 미친놈처럼 다정하게 설명해주는 느낌’이라고.

 

 

# 문학동네 <롤리타>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 리. 타.

 

아침에 양말 한 짝만 신고 서 있을 때 키가 4피트 10인치인 그녀는 로, 그냥 로였다. 슬랙스 차림일 때는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의 이름은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에 안길 때는 언제나 롤리타 였다.

 

그곳에서, 부모로부터 겨우 몇 걸음 떨어진 보드라운 모래밭에서, 우리는 격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돌처럼 굳은 채 오전 내내 널브러졌다가 이따금 고맙게도 시간과 공간에 틈이 생길 때마다 서로를 만지곤 했다. 모래 속에 반쯤 파묻힌 그녀의 손이 나를 향해 살금살금 다가오고, 가냘픈 갈색 손가락들이 몽유병자처럼 흐느적거리며 더 가까이 더 가까이, 그 다음에는 그녀의 오팔빛 무릎이 조심스레 먼 여행을 시작하고, 간혹 우리보다 어린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모래성 덕분에 몸이 충분히 가려지면 서로의 짭짤한 입술에 스치듯 입맞춤을 하기도 하고. 그러나 이렇게 아쉬운 접촉은 건강하고 경험 없는 어린 육체들을 오히려 더 격양시킬 뿐, 푸르고 차가운 물속에서 서로를 아무리 더듬어도 흥분은 전혀 식을 줄 몰랐다.

 

이제 책은 ‘읽는 것’ 그 이상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책이 있어서’ 구매하는 시대를 지나 책의 문체와 디자인, 심지어 판형까지 고려한다. ‘읽는 즐거움’을 지나 ‘보는 즐거움’까지 감안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의 책장에 놓여 당신의 눈과 머릿속을 디자인할 ‘책’을 찾아보자. 비록 민음사와 문학동네만 다뤘지만 펭귄 클래식, 을유문화사, 창비 등 출판사는 많고, 눈으로 보는 맛도 다양해졌으니 말이다. 

 

 

# Loita 
 

Lolita, light of my life, fire of my loins. My sin, my soul. Lo-lee-ta : the tip of the tongue taking a trip of three steps down the palate to tap, at three, on the teeth. Lo. Lee. Ta.

 

She was Lo, plain Lo, in the morning, standing four feet ten in one sock. She was Lola in slacks. She was Dolly at school. She was Dolores on the dotted line. But in my arms she was always Lolita.

 

There, on the soft sand, a few feet away from our elders, we would sprawl all morning, in a petrified paroxysm of desire, and take advantage of every blessed quirk in space and time to touch each other : her hand, half-hidden in the sand, would creep toward me, its slender brown fingers sleepwalking nearer and nearer; then, her opalescent knee would start on a long cautious journey; sometimes a chance rampart built by younger children granted us sufficient concealment to graze each other’s salty lips; theses incomplete contacts drove our healthy and inexperienced young bodies to such a state of exasperation that not even the cold blue water, under which we still clawed at each other, could bring relief.

 - 발췌 : http://bluevalentine.tistory.com/326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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