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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을 나타내는 욕망에 관하여, 에곤 실레 (Egon Schiele)

14.12.11 0

<Autumn Trees> Oil on canvas, 79.5 x 80 cm, 1911

 

 



며칠 전, 아침에 눈을 떠보니 중국남방항공이 실시간 검색어 1위다. 유럽 왕복이 33만원이라는 소리에 눈이 번쩍 떠져 휴대폰과 컴퓨터로 광클릭을 했다. 몇 십 번의 ‘새로 고침’끝에 33만원까지는 아니지만 왕복 70만원에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기쁨과 카드결제만 남겨놨다. 그런데 그 때부터 사이트는 ‘플러그인’에 걸리며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 후로도 몇 십 번, 새로 고침을 해봤지만 사이트가 멈춰버렸다. 나는 유럽에 가고 싶은 욕망이 ‘그 때부터’ 생겼다. 그리고 ‘욕망’은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닐까,는 생각했다.

 

자기 본성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실 아무 것도 탐할 것이 없다. 저절로, 자연적으로 실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자기 본성대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터무니없이 많은 것들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성실, 근면,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준비하는 자세, 금욕, 타인의 눈’같은 것들이 인간으로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본성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다.

 

급하긴 했지만 유럽 여행을 못하게 됐다는 사실이 갑자기 나를 유럽으로 가고 싶게 만든 것처럼, 우리는 ‘이루지 못한 것’을 평생 안고 살아간다. 그 욕망이 젊을 때 나오는 사람이 있고, 나이가 들어서 나오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욕망을 ‘꿈’이라는 이름으로 지닌 채 살아간다. 결국 꿈이란 자기 본성이 막힘이 없이 연결되며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무대로 도달하는 것이 아닐까?

 

<The Family> Oil on canvas, 152.5 x 162.5cm, 1918

 

 

 

욕망을 뜻하는 영어 ‘desire’의 어원인 라틴어 ‘desiderare’는 “별이 떨어진 것을 아쉬워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별이 떨어진 것, 그리고 이루지 못한 것에서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 같다.


<지킬 앤 하이드>에서 고뇌하는 ‘지킬’과 그의 또 다른 자아 ‘하이드’를 통해 욕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지킬은 의사이고 반듯한 삶을 살아가지만, 하이드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꿈꿔왔던 내적 욕망을 드러낸다. 검은 세계로 가서 ‘루시’를 탐하기도 하고, 평민들을 괴롭히는 귀족을 살인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결국 자아의 파탄과 죽음으로 끝이 나지만, 우리가 욕망대로 사는 사람들을 그저 미워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모습이 결국 우리와도 같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요동치는 파도와 같아서 지킬과 하이드가 끊임 없이 반복된다.

<Embrace, Oil on canvas> 100 x 170.2 cm, 1917

 

 

 

28살, 나와 같은 나이에 요절한 이 젊은 화가는 클림트의 제자인 ‘에곤 실레’다. 에곤 실레는 클림트와 나이차이가 나지만 스승과 제자로 많은 것을 배워간다. 그 후 에곤실레는 클림트의 장식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서, 자기만의 내면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린다. 그는 ‘살아있음’을 표현하는 것이 ‘성(性)과 사랑’이라 생각 했고 소녀들의 누드를 그려 감옥에 가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끝 무렵인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잃은 지 3일 뒤에 에곤 실레 역시 독감으로 사망한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꿈틀거린다’는 것이 어떤 표현인지 알게 된다. 마음이 굽이굽이 흐르고 자연스러운 본성과 내적 욕망들이 파도 치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아주 조금 느낄 수 있다. 에곤 실레의 작품이 주는 생명의 느낌은 ‘나는 지금 살아있으며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Reclining Woman with Green Stockings> Gouache(과슈) and black crayon on paper, 29.4 x 46 cm, 1917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살며 그 순간 순간 마다 많은 것을 느끼고, 원하고 또 실행하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욕망과 꿈은 살아가는 시간을 버티도록 도와주는 딱풀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상처 받고 넘어질 때, 꿈이라는 접착제를 붙여 다시 우리가 미래를 보고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 시간이라는 종이들이 욕망이라는 풀과 쭉 이어져 우리의 인생을 만드는 것이다.

<Fighter> Gouache and pencil on paper, 48.8 x 32.2 cm, 1913

 

<Seated Girl> Watercolor and pencil, 48 x 31.5 cm, 1911

 

 

가질 수 없는 것에 욕심 내는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 본성과 마음이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며,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그 길의 마지막에 우리의 욕망과 꿈이 항상 자리잡고 있기를. 세상이 인생을 너무 많이 속일지라도 욕망을 잃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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