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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하면 '달력'이지! <베리공의 호화로운 기도서(Les trè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

15.01.13 0

 

 

모든 일터가 그렇지만, 연말연시가 다가오면 더 바빠지는 곳이 있다. 바로 달력업체다. 10월부터 시작하는 인쇄업체의 야근 덕에 우리는 여러 곳에서 나눠주는 새해 달력을 받아볼 수 있다. 이렇게 대량으로 제작되는 달력 외에도 최근에는 특별제작 달력이 대세다. 매 해 없어서 못 판다는 <무한도전> 달력과 원래는 지인들에게만 선물할 예정이었으나 시청자들의 엄청난 요청으로 판매된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삼둥이 달력이 그 예다. 은행에서 받아온 달력이든, 나만의 특별한 달력이든, 내년도 달력을 걸어놓는 순간은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통과의례다. 더군다나 순간의 벅찬 기대감이나 새로운 결심(물론 1월 3일이 되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은 또 얼마나 설레는가.

- 5500원에 판매된 <삼둥이 달력>은 11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했다, 출처 : http://starin.edaily.co.kr

 

 

 

 

 

 

달력은 고대 사회를 기원으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인간들이 제대로 된 문명사회를 이루면서 달력은 계절과 함께 중요한 절기, 더 세밀하게는 ‘언제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해야 할지’ 등의 ‘세월의 흐름’을 담당하며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그러니까,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달력과 함께 살았다는 얘기다. 게다가, 요즘 같은 특별 제작 달력도 존재했다! 15세기, 프랑스의 한 왕자가 주문한 <베리 공의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 (Les trè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 <베리 공의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 (Trè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 랭부르 형제, 1410-1416

 

 

 

 

 

1410년, 프랑스 장 2세의 셋째 아들이었던 베리 공작(1340-1416)은 자신의 궁정화가들이었던 랭부르 형제들 (The Limbourg brothers) 폴, 엘망, 장에게 기도서를 주문한다. 여기서 기도서란 중세 카톨릭 신자들이 사용하던 기도를 위한 교본으로, 하루 8번씩 행해지는 종교의례를 행하기 위한 책이었다. 예술품 수집에 특히나 광적 -아주 오래 전부터 예술품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으로 열을 올렸던 베리 공작이 네덜란드 출신의 세 형제에게 주문한 이 기도서는 ‘호화로운’ 이라는 이름까지 얻으며 유명해졌다. 달력의 화려함도 한몫 했지만 무엇보다 1년 열두 달의 삽화가 있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삽화는 사계절의 변화와 자연스럽게 바뀌어가는 그림 속 인물들의 생활상을 아주 사실적으로 담았다. 가로세로 각각 30x40cm의 크기에 412페이지에 이르는 꽤나 큰 사이즈의 책이었으니 겉모습만으로도 호화롭다. 게다가 그림의 상단에는 매 월마다 다른 별자리 이미지를 배치했는데, 이를 통해 당대 사람들이 천체의 움직임과 사람들의 삶, 우주와 인간이 더불어 흘러가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월 신년 연회 장면

 

 

 

 

1월 삽화를 보자. 사람이 사는 건 모두 똑같은지 그림 속의 신년맞이 연회가 마치 지난 주말 친구들과 함께했던 신년회와 비슷하다. 심지어 푸른 옷을 입은 베리 공 앞에 서 있는 인물의 머리 위에 새겨진 글씨는 ‘오세요, 오세요!’ 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얼른 와서 한잔 받아’ 정도가 아닐까 싶다. 먹고 마시는 장면이 이토록 세밀하게 표현된 것은 랭부르 형제가 플랑드르 출신이라는 데 이유가 있다. 소박하면서도 사실적인 플랑드르의 화풍은 프랑스 왕자의 그림에도 그대로 배어난 것이다.

 

- 2월 설경 속의 농민들

 

 

 

 

 

2월의 삽화는 지난 달처럼 화려한 연회는 없지만 눈이 온 풍경과 함께 겨울을 나는 농민들의 삶을 닮았다. 이 <호화로운 기도서> 속의 2월 설경은 서양미술사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것이라 전해진다. 살짝 어둑한 하늘과 발자국이 무수히 찍힌 눈길은 랭부르 형제의 세밀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불 앞에 앉아 속옷까지 보이도록 치마를 들어올린 여인은 눈에 젖은 신발을 말리는 듯 하다. 옆에 앉은 여인들의 불 쬐는 포즈는 어쩜 지금의 모습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지!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기도서는 분명히 귀족들이 보는 것인데 왜 농민의 생활상이 이토록 정확하게 그려졌는가 하는 것이다. 귀족들에게 언 손을 불에 녹이는 여인들의 모습, 눈길에 당나귀를 끌고 언덕을 오르는 모습은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는 다른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후대 서양인들이 오리엔탈리즘에 탐닉했듯 농민의 생활상은 그저 이국적이며 특이한 흥미거리였다는 얘기다. 5월 1일의 봄 날, 축제를 즐기러 가는 귀족 아가씨들 그림과 비교해본다면 상당히 불손하고 오만한 의도로 차용된 소재라고 볼 수 있다.

 

- 5월 1일 봄축제의 주인공을 뽑으러 가는 길

 

-10월 밭 경작, 모든 사진 출처 : http://en.wikipedia.org

 

 

 

 

 

랭부르 형제의 관찰력은 건축 표현에서도 드러난다. 10월의 배경으로 쓰인 루브르 궁은 15세기 당시의 모습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또한 밭을 일구는 농민들의 모습 역시 중세의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호화로운 기도서>는 오늘날까지 명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림의 주인인 베리 공작은 달력을 받아보지 못했다. 1416년에 전염병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오래 살아있다 하더라도 완성본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베리 공작이 사망한 이후 랭부르 형제도 차례로 전염병을 앓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결국, 달력은 미완(未完)으로 남았다. 그리고 30년 후, 장 콜롱베가 달력을 완성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부와 명예를 뽐낼 의도로 만든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는 명작으로 후세까지 전해졌지만 정작 기도서의 주인은 병에 걸려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니 말이다. 달력 속 하루하루가 개인의 삶과 관계 없이 그저 흘러감을 보여주는 예시가 아닐까 싶다.

 

2015년 새 달력을 걸어놓고 모두가 하나쯤은 목표를 결심했을 것이다. 다이어트, 금주, 금연.. 새해의 보름이 지나가는 이 시점에서 나에게 한 약속은 잘 지키고들 계시는지? 지금도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으니 더 늦기 전에 각자 목표한 일들 꼭 이루시기 바란다.

 

 

김월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예술과 친근한 세상을 만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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