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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美)를 탐하다, 하회마을

15.01.23 0

 

보통 ‘안동’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양반가문’이다. 때문에 흔히 ‘종가(宗家)기와집’을 많이 떠올린다. 그 이유 중 하나로 하회마을을 꼽을 수 있는데, 안동하회마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특히 하회마을의 고택(故宅)은 임진왜란 당시 피해가 적어 기존의 고려건축양식과 조선중기건축양식을 같이 볼 수 있어 더 의미 있다.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아 도는 ‘S’자 형태다. 때문에 지형 자체가 색다른 미(美)를 띈다. 마을 북쪽으로는 *부용대 가 병풍같이 둘러앉아 태극형(太極形)또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 부른다.

 

* 부용대 안동하회마을에 위치한 해발 64m 절벽

 

 

- 하회마을의 'S'자 지형, 태극형(太極形)또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 부른다, 출처 : http://hahoe.iwootec.co.kr


하회마을은 서애 류성룡, 수암 류진 등 많은 양반을 배출한 마을로써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 류씨 배판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최초의 마을 형성은 허씨가 이룩했으며 하회탈 제작자도 허도령이라 전해진다. 하회마을 하면 풍산 류(豊山 柳)씨만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배경이 있었다. 하천의 흐름에 따라 남북으로 큰 길이 나 있는데 이를 경계로 각각 북촌, 남촌 이라 부른다. 북촌의 양진당과 북촌댁, 남촌의 충효당과 남촌댁은 역사와 규모에서 쌍벽을 이루는 양반가옥이다. 큰 길 중심으로 마을의 중심부에서 류씨들이, 변두리에는 각  성(姓)들이 살고 있다.

 

 

 

 

 -북촌의 양진당, 출처: http://www.hahoe.or.kr

 

- 양진당의 전체적인 풍경, 출처 : http://www.hahoe.or.kr


양진당은 우뚝 솟은 솟과 대문에서부터 장엄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다. 이 곳은 ‘풍산 류씨’의 대종가인 곳으로 사랑채는 고려건축양식이며 안채는 조선시대건축양식이 공존하는 고택이다. 이 곳은 류종혜 공이 13세기에 입향 당시에 처음 자리 잡은 공간이며, 임진왜란 당시 일부 소실 한 것은 17세기에 중수(重修)하여 고려시대와 조선중기의 건축양식이 공존한다. 하회마을에서는 드물게 정남향이며 원래는 99칸이었지만 지금은 55칸만 남아있다.

 

내부는 문간채와 행랑채가 길게 이어져 있으며 ‘ㅁ’자형의 안채와 북쪽의 사랑채를 ‘ㅡ’자 형으로 배치했다. 오른쪽 북쪽에는 사당이 2개 있는데 그 곳은 큰 사당은 입암 류준영 선생의 사당이며, 작은 사당은 겸암 류운룡 선생의 사당이다. 이 두 곳 모두 *불천위 사당 으로 후손들이 대대로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불천위(不遷位) 사당 나라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으신 분의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장소

 

 

 

- 충효당의 전체적인 모습, 출처: http://www.hahoe.or.kr


충효당은 문춘공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宗宅)이다. 하지만 서애 류성룡 선생의 생존 동안 생활했던 곳은 아니며, 선생은 충효당이 지어지기 이전의 곳에서 소년기와 만년기를 보냈다. 지금의 충효당은 선생이 초가삼간에서 돌아가신 사후에 지은 집으로 문하생과 자손들이 지었다. 집은 조선 중엽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으로써
*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으로 52칸이 존재한다. 충효당 내에는 영모각 이 별도로 설립되어 선생의 유품과 귀중한 저서들이 전시되고 있으며 바깥마당에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방문기념식수가 있다.

 

* 대문간채 한옥의 대문 옆에 붙여 지은 집(채) 
* 영모각  류성의 유물을 보관·전시하는 곳

 

 

- 충효당, 출처 : http://blog.cha.go.kr

 

- 하동고택, 출처: http://www.hahoe.or.kr


하회마을에서 눈에 띄는 한 곳이 있는데 바로 하동고택이다. 하회마을의 동쪽에 위치해서 하동고택이라고 불리는 이 곳은 용궁현감을 지낸 류교목 공이 세웠으며, 1953년에 현 소유자의 부친이 인수했다. 전체 24칸의 활궁(弓)자 형의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한나로 이어진 미도리 집이다. 이 곳이 눈에 띄는 이유는 대문은 초가집인데 사랑채와 안채가 기와집이기 때문이다. 의미는 “세상의 모든 것은 한 차례 융성하면 한 차례 쇠락하므로 욕심을 내어 전부를 채우려 하지 말고, 부족한 가운데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라.”는 가르침을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서다.


안채 가운데서 사방을 살펴보면 모두 열린 구조 인데 이는 가사를 담당하는 부녀자들에게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즉각 대응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하동고택, 초가집으로 이루어진 대문, 출처: http://www.hahoe.or.kr

 

 

하회마을의 명소, 아름다운 절경의 절정을 이루는 곳은 바로 만송정 숲이 아닐까 싶다. 이 곳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가치 있는 모래퇴적층에 있는 소나무 숲이다. 조선 선조 때, 서애 류성룡선생의 형 겸암 류운용 공이 강 건너편 바위절벽 부용대의 거친 기운을 완화하고 북서쪽의 허한 기운을 메우기 위해 소나무 1만 그루를 심었다 하여 만송정(萬松亭) 이라고 부른다.

 

- 만송정 숲에 있는 만송정비, 그리고 수많은 나무들, 출처 : http://www.hahoe.or.kr


이 숲은 여름에 홍수피해를 막고 겨울에는 세찬 북서풍을 막으며, 마을사람들에게는 문화공간과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음력 7월 16일에는 숲 건너편 부용대 꼭대기까지 밧줄로 이어 불꽃을 피우는 선유줄불꽃놀이가 펼쳐진다. 불꽃은 부용대부터 밧줄을 타고 내려와 참나무 숲 하늘에서 터지는데, 빛이 강물에 비치는 모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의 뱃놀이와 함께 불꽃이 터졌다고 하니 풍류를 익히 짐작할 수 있다.

 

 

- 멀리서 본 만송정 숲, 출처: http://www.hahoe.or.kr

 

 

- 하회탈춤, 출처 : http://cultureline.org


하회마을은 건축물의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마을의 경관과 선비들의 풍류까지 어우러진, 그야말로 문화적 산실이다.

 

 

 

별이

고궁, 야구, 커피, 박물관, 역사, 드라마 등
내가 관심 갖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애정을 주고 싶은 몽실몽실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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