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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품을, 김수자

15.02.23 0

 

- <To Breathe: Bottari, Solo Exhibition at The Korean Pavilion, Venice, 2013>

 

 

 

 

 

“김 여사”. 김 씨가 아니더라도 운전을 잘 못하는 여성(넓은 의미로는 운전을 하는 여성)에게 붙는 이름이다. 사실 나도 운전을 할 때 운전 스타일을 보면서 ‘저 차는 분명 아줌마일거야.’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런 나를 보며 흠칫 놀라기도 하고, 앞 차를 가로지르며 확인해보면 정말 아줌마일 때가 많아 속상하기도 했다. 물론 전화를 받으며 유유자적하는 아저씨, 차선 변경을 하며 기선제압 하는 외제차 속 젊은 남자, 40km 너무나 안정적인 속도로 운전하는 백발의 중후한 할아버님 차 등, 남자라고 항상 좋은 운전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의 고정관념에 규정된 것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아닐까. 여차하면 나도 ‘아줌마’가 되는데 너무 ‘여자’를 방관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줌마’라는 단어로 함축되는 여성의 인생에는 붙여진 이름이 참 많다. ‘김치녀’, ‘된장녀’ 등이 주(主)를 이룬다. 여성이 엄마가 되면 ‘슈퍼맘’, ‘워킹맘’ 등 또 여성을 지칭하는 용어가 많다. 예전에 어느 기사에서 제약이 많을수록 더 많은 단어로 집단을 규정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남성도 ‘초식남’같은 단어로 규정되곤 한다. 하지만 ‘남성’ 자체의 특징을 놓고 회자되는 용어는 거의 없다. 누구에 의해서, 누구를 위해서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제약을 당하는 걸까.

 

이름을 지을 때, 아이가 앞으로 계속 불릴 이름이기에 좋은 의미로 지으려 한다. 때문에 불리는 이름이 우리의 생각을 규정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줌마’, ‘아저씨’, ‘학생’, ‘여자’, ‘남자’ 등, 우리는 '존재의 나눔'에 익숙해지고 있다.

 

-<Bottari> Kewenig, 2008

 

- <Bottari, used Korean bedcover and used clothing, 54 (H) x 57 x 53 inches, 2011>

 

 

 

 

 

 

여대 졸업 후, 취업을 했고 지지 않기 위해 소위 ‘남자문화’라고 불리는 것에 ‘적응’하려 했다. 하지만 적응하려 하면 할수록, 더 많이 위축됐고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노동의 의미조차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여자’만 있는 공간에서는 ‘더 대단한 것을 해야 하는데... 남자들은 다른 일을 할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여자만 있는 공간이 나의 입지를 좁게 만든다는 조바심이 들었었다. 아마도 나에게 어떤 ‘여성임을 거슬러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여성임을 거스르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의 뿌리를 잊은 채, 여성의 의미를 잊은 채 살려고 하니 욕심만 늘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여성’으로 규정된 인생을 생각해 봤다. ‘자궁(子宮: 아이를낳을수있는궁전)’을 가지고 태초의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는, 초기의 ‘여성’ 말이다. 남자와 여자는 절대적으로 같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성질이다른것을이기려고하니쉽지않고,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해 온 것은 아닐까 싶다. 누군가와 싸우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니 더 이상 ‘남자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남자들이 이룬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 목표의식을 잡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도전할 수 있을 만큼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으로 사는 것을 남자의 ‘반대’ 개념으로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않아야겠다. 대신, 긍정적인 ‘여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힘으로 만들 수 있는 세상을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여성의 일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씩 생겨난다. <벼랑 위의 포뇨>의 어머니처럼, 큰마음으로 세상을 ‘맞이’하는 여성의 일생 말이다.

 

- <벼랑 위의 포뇨, 2008, 미야자키 하야오>

 

 

 

 

 

 

 

작가 김수자의 작품을 보면 끝없이 보듬어주는 누군가가 생각난다. 그건 자연일수도, 엄마일수도, 할머니 일수도 있다. 작가의 작품은 할머니의 전화 같다. “우리 이쁜이 잘 지냈어? 일 끝나고 터벅터벅 집에 가고 있을까봐 전화했지~”라며 안부를 묻는 나의 할머니. 어른이 되려면 나를 보듬어주던 모든 것을 등지고 떠나야 한다. 그래서 가끔 잊고 있지만 심신이 지칠 때는 이렇게 ‘품어줄 존재‘를 그리곤 한다. 가장 힘들 때 먹고 싶은 것이 ‘엄마 밥’인건 그런 이유일까?

 

-<To Breathe: Bottari, Solo Exhibition at The Korean Pavilion, Venice, 2013>

 

 

 

 

 
역시 사람이 관심이다. 김수자의 작품마다 지탱하고 있는 공통된 큰 줄기가 바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방법으로 그는 ‘꿰매고 싸는 행위’를 택했다. 보따리를 늘어 놓는 설치, 보따리를 트럭 가득 싣고 떠나는 퍼포먼스 등으로 처음 유명해졌기에 해외에서 그를 '보따리(Bottari) 작가'라 부르기도 한다. 김수자 덕분에 서양 미술계에 ‘보따리’ 라는 말이 알려졌을 정도다.

보자기를 꿰매는 행위는 바늘을 통해 이뤄진다. 그래서 그의 작품세계 한 축엔 ‘바늘’이 있다. 그는 1999년부터 일본 도쿄에서 시작해 상하이, 델리, 뉴욕, 카이로, 라고스, 런던, 파리 등에서 ‘바늘 여인’을 찍어 왔다. 이 영상에서 작가는 군중 사이에 서서 등을 돌리고 가만히 서 있다.
 
 
 
 
 
 
으로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그의 몸은 인파 사이를 꿰뚫고 지나가는 바늘의 역할을 한다. 작가 자신의 몸을 ‘바늘’로 제공하고 이 세상 사람들 사이를 엮어주는 철학적인 행위가 해외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인도에 가서 작업할 때, 제 이름 ‘수자’가 인도어로 ‘바늘’이라는 뜻이라고 들었어요. 충격적이었죠. 너무 신기하죠?” 그는 바늘과 자신이 처음부터 운명이었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 김수자, 네이버캐스트

 

 

 

- <A Needle Woman: Galaxy was a Memory, Earth is a Souvenir I, Cornell University, New York, 2014>

 

 

 

 

 

 

그녀의 ‘바늘’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조형물로도 표현됐다. 그녀는 우주의 연결고리인 것이다.

 


김수자의 작품을 보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보편적인 문장이 생각난다. 그대로, “가장 나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고 치환할 수 있다. ‘나’에서 가감 없이, ‘나’의 온전한 모든 것이 뻗어나가도록 사는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끊임없는 만남, 소통, 그리고 순환. 개개인의 삶에 빠져 사는 우리는 우리가 하늘과 땅을 이어줄 수 있는 ‘바늘’이라는 것을 잊고 지낸다. 소통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존재부터 인정하고 아는 것이 중요한 법.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더 소중할 우리 자신을 토닥거려줘야 할 때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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