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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존재, 파울라 모더존-베커 (Paula Modersohn-Becker)

15.04.03 0

 

 

 

며칠 전, 치과에 다녀온 엄마는 잇몸에서 피가 난다고 했다. 매일 잘 씻고 밥도 잘 먹는 엄마인데 왜 안 좋은 거냐고 물어봤더니 “원래 엄마 나이 되면 그냥 다 아파.”라고 한다. ‘하고 싶다’라는 단순한 명제 아래 ‘엄마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은’ 나는 무언가를 찾아서 살고 있지만, 왠지 저 말이 속상하고 가슴이 아프다. 아니, 이건 아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마음이 ‘저리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엄마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엄마가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아이를 낳은 여자는 ‘엄마가 된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엄마는 왜 ‘하는’ 것이 아니고 ‘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영화 <WILD(와일드)>의 여주인공은 엄마의 죽음을 맞이한 후, 26살에 마약과 이혼을 경험하며 되는대로 살아간다. 자신의 모든 것과 같았던, 혹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죽음이 주인공에게는 자신의 뼈마디가 없어지는 느낌이었던 걸까.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마주한 <PCT>책을 보면서 PCT하이킹을 간다. 그렇게 누구의 도움도 없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자신의 상처를 마주한다. 그녀가 하이킹을 통해 이루고 싶었던 것은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 위한 목적이다. 이는 우리 모두의 목적이자 ‘엄마처럼 사는 삶’에서 꼭 벗어나고 싶은 굴레기도 하다. 그러나 벗어나고 싶다고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 태초의 공간인 ‘엄마의 뱃속’에서 말이다.


-영화 <WILD(와일드)> 출처 : 네이버 뮤비 http://movie.naver.com

 

 

 

 

엄마의 뼈가 녹아 만들어진 나의 공간에는 부정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엄마의 흔적이 존재한다. 가족이라는 원초적인 공간에서의 인정과 사랑은 그래서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이킹을 하면서 셰릴은 자신의 경험을 하나씩 되뇐다. 하이킹을 하는 사람과 셰릴이 나누는 대화에서 그녀는 엄마가 해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일출과 일몰은 매일 있는 거란다. 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 아름다움 속으로 언제든 들어갈 수 있단다.”

 


모든 딸들이 그렇듯 셰릴은 엄마의 말들을 제대로 듣지 않지만, 결국 하이킹 동안 가장 그녀의 기억을 지배한 인물은 ‘엄마’였다. 이토록 아름다운 엄마와의 기억이라니, 하지만 매일 싸우고 매일 상처받는 사이다. ‘엄마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은 것’은 또한 엄마의 딸이기 때문이겠지. 이것은 아마 ‘딸’이라는 사람이 ‘엄마’라는 존재에게 전할 수 있는 특권의식적 생각이 아닐까 싶다.

 

 

 



파울라 모더존 베커 (Paula Modersohn-Becker)는 서른 한 살에 삶을 마감한 독일 여성 작가다. 스물 다섯에 시작했던 결혼 생활은 5년만에 끝이 났고, 파리에서 감각적이고 역동적인 미술 세계를 경험한다. 그러곤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하여 아름다운 여성의 그림을 그리게 된다. 거의 자화상적인 그림이 많은데, 이 화가는 ‘여성’ 과 ‘임신’이라는 주제에서 아름다움을 찾은 듯 하다. 이후 남편이었던 오토 모더존은 아내가 있는 파리로 돌아왔고, 둘은 재회했다. 드디어 파울라는 그토록 원하던 임신을 했고 예쁜 딸을 낳았다. 그러나 그녀는 출산한지 18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아쉽고 속상한, 너무 따뜻한 그림을 그렸던 여성의 이야기다.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그림은 따뜻하다. 담백한 엄마의 사랑, 모든 허례의식에서 벗어난 순수한 엄마의 모습과 그 엄마의 아이, 혹은 그런 여성을 볼 수 있다. 감격스러운 엄마의 인생이란! 태어난 아이를 지키기 위해 강해진 엄마의 모습이란!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은 세상과의 맞짱에서 얼마나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하는지 아직 가늠하지 못한다.








이제 곧, 이제 곧 서른 살이다. ‘9’에서 끝이 나는 나이의 종말론적 고민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진심으로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삼월이 지났다. 죽은 듯 자고 마주한 아침에는 새로운 기운이 몸으로 들어온다. 나는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내가 미우면서도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나를 인정한다. 새롭고 고단한 날들이다. 이렇게 힘들 때는 엄마의 손을 잡고 싶다. 그래서 엄마가 자고 있을 때 손을 잠깐 만져봤다. 엄마의 손을 잡는 순간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 나도 같이 잠 들었다.

 

 


하이킹을 시작하고 몇 미터 안 가서 셰릴은 생각한다. ‘그만 둘까’라고. 그러나 그녀는 완주한다.

 

“슬픔의 황야에 빠져 자신을 잃어버린 후에야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었다.”



라고 셰릴은 이야기한다. ‘슬픔의 황야에 빠져 자신을 잃어버리는 과정’이 있어야 우리는 우리로서 인생을 살 수 있다. 흔들리는 마리오네트 인형으로 살지 않기 위해, 엄마라는 초자연적인 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평생 자신의 인생을 준비한다.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그림과 셰릴의 엄마는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주의 먼지 같은 우리를 받아주는 엄마에게 너무나도 큰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는 부인할 수 없는 나와 닮은 사람인 엄마, 그리고 나를 이끌어주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감사하는 하루를 보내야겠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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