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모순(矛盾) 속의 합리화 by. 공병훈

15.04.08 0

 


누구나 한번쯤 ‘자기 모순(矛盾) ’에 빠진 적이 있을 것이다. 꼭 필요한 걸 사러 나갔다가 1+1 상품을 쥐고 나오는 것처럼. 쉽게 생각하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이지만 가끔 이런 내 자신이 멍청한 것 같다. 이렇듯 상반되는 감정을 경험해봤다면, 공병훈 작가의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극> 캔버스 위 유화, 194 x 130cm, 2013

 

 

 

공병훈 작가는 모순됨 심리를 작품에 반영한다. 그의 작품은 기존의 고전 작품에 현대적인 이미지를 덧입힌다. 그래서 미술에 관심이 없는 관객은 현대적인 장치에 친숙함을 느낀다.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있는 캐릭터를 실물 모형으로 만들어 관객들에게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고전적인 작품은 14~19세기의 엄숙한 작품을 주로 한다.


- <최후의 만찬> 캔버스 위 유화, 162 x 80cm, 2011

 

 

 

관객들이 고전 작품을 마주할 때는 엄숙하면서도 조심스럽다. 작품이 당시의 시대상과 분위기로 관객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병훈 작가의 작품은 ‘고전을 품은 현대’로써 가볍게 접근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이용하는 캐릭터가 마냥 가벼운 것은 아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 역시 시대를 대변하고 사상을 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심슨>도 미국의 사고와 실상, 세계가 겪고 있는 사회 문제를 풍자하지 않는가.


-<유디트> 캔버스 위 유화, 84 x 42cm, 2013, 출처: http://blog.naver.com/dgu_fineart/220199509714

 

 

 


관객들은 익숙한 캐릭터로 재구성된 작품을 엄숙한 고전 작품과는 달리 편히 즐길 수 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편하게 두 시대를 향유하는 것이다. 작품은 같으면서도 다르며, 동시에 이중적이다.


-<피에타 상> 캔버스에 유채, 130×130cm, 2013


-<원반 던지는 사람 상> 캔버스에 유채, 91×61cm, 2013

 

 

 

작가 또한 자신이 지금 주장하는 바와 과거에 주장하는 바가 서로 상반된다고 말한다. 모순된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모두 모순(矛盾)을 경험한다.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면서도 디지털에 익숙해져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라노이 시청 풍요의 방 장식 : 예술,철학,풍요,향락 극> 캔버스에 유채, 116.7×28.5cm×4, 2014

 

 

 

우리는 자기 모순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 날 수 없다. 그래서 자기 합리화에빠진다. 공병훈 작가가 말하는 작품의 주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변할 수 없다면 합리화해서라도 그 자체를 받아들이자고. 작가는 자신의 기준이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자기보호를 위해 ‘합리’을 찾자고 말한다.


-<세례 요한 극> 캔버스에 유채, 53×40.3cm, 2014.jpg

 


-<죽은자에 대한 위대한 행위 극> 캔버스에 유채, 111.5×145.5cm, 2013, 출처: http://blog.naver.com/jojako/40205875204

 

 

 


하지만 무조건적인 자기 합리화와 자기보호가 답은 아닐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시대적으로 재구성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 때문에 서로의 정체성을 잃었지만 하나가 됨으로써 이중코드를 제공한다. 덕분에 어려울 수 있는 감정이 쉽게 풀이되어 친숙함을 전한다. 이렇듯 작품 속 모순(矛盾)역시 작가에게 원동력을 주는 큰 요소가 아닐까 싶다.

 

 

배앓이

꿈을 꿀 수 있다면,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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