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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사랑, 그리고 보나르(Pierre Bonnard)

15.04.24 0



벚꽃연금으로 버스커버스커가 행복한 계절, 밥을 먹고 앉아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조는 계절, 의무적으로 여의도에 가야 할 것 같은 계절이다. 라디오에서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봄 봄 봄 봄이 왔어요’, ‘봄 사랑 벚꽃 말고’가 연신 흘러나온다. 물론 겨우내 두꺼운 패딩 속으로 감춰둔 살과 눈물겨운 이별을 해야 하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역시 봄의 미덕은 우리의 시각을 나날이 다채롭게 만드는데 있다고 본다. 이렇게 봄만 되면 생각나는 작가의 그림이 있다.

 


-<계단이 있는 정원 L'escalier du jardin>, 1940, 출처 : http://www.wikiart.org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꽃놀이를 가면 파워풀 한 색감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기계들은 자연 그대로를 담지 못한다. 때문에 만족할만한 순간을 남기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데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 1867~1947)의 <계단이 있는 정원 (L'escalier du jardin)> 만큼은 정말이지 찬란한 봄의 정원 한 가운데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파리 근교의 오드센 지역에서 태어난 보나르는 ‘그림 같은’ 동네에서 자란 영향이었는지 법학 전공을 뒤로 하고 화가가 된다. 그는 곧 파리로 넘어가 여러 전시를 통해 당대 가장 유명한 화상 중 한 사람이었던 뒤랑 뤼엘(Paul Durand-Ruel, 1831~1922)의 눈에 띈다.

 

그리고 곧 나비파(Nabi, 히브리어로 선구자, 예언자를 뜻하는 단어에서 따 왔으며 내비게이션의 그 Navi와 어원이 같다)의 일원이 됐다.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의 자유롭고 강렬한 색채와 장식적인 미술을 지향하는 젊은 화가 무리들은 매주 함께 모여 교류했는데, 다른 화가들이 신비주의나 상징주의의 성향을 보였던 것과는 달리 보나르는 앵티미즘(Intimisme), 즉 일상적인 정경을 주로 그렸다. 그래서일까, 보나르의 작품은 ‘집 안에서’ 그린 것들이 많다.

 


-<정원이 보이는 식당 (Salle a Manger Sur le Jardin)>, 1934-5, 출처 : http://www.wikiart.org

 

 


-<창문 (La Fenetre)>, 1925, 출처 : http://www.wikiart.org

 


-<미모사가 피어있는 아틀리에(L'atelier au mimosa)>, 1935, 출처 : http://www.wikiart.org

 

 

 

1925년, 남프랑스의 카네를 방문한 보나르는 그곳에서 아주 멋진 분홍색 집을 발견했다. 그는 작은집에 ‘보스케(작은 숲)’라는 이름을 붙여준 뒤 그 곳에 눌러 앉았다. 보스케의 2층에 마련한 아틀리에는 사실 비좁은 편이라 보나르는 비스듬히 눕거나 앉은 채로 불편하게 그림을 그렸다. <미모사가 피어있는 아틀리에> 그림 하단에 그려진 난간의 모습에서 크기가 어느 정도 짐작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스케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창문을 통해 보이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 자연 그 자체였다. 남프랑스의 축복받은 날씨와 자연환경은 보나르에게 ‘색채의 마술사’ 라는 별명을 얻게 해 주었다. 그가 접한 자연은 그 정도로 즉흥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색을 가능케 했다. ‘집 안에서 창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은 이내 보나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됐다.

 

보나르의 작품을 설명하는 메인 키워드가 꼭 ‘창문’뿐만은 아니었다. ‘목욕하는 여자’ 역시 보나르를 대표하는 모티브라고 할 수 있는데, 특이한 것은 그림 속 모델이 모두 같다는 점이다. 그림 속 모델은 보나르가 일평생 사랑했던 여인 마르트 부르쟁(Marthe Boursin 1869~1942)이다. 20대 초반 파리에서 처음 마주친 둘은 하층민이었던 마르트의 배경 때문에 주변의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둘은 소울메이트였는지 보스케로 함께 옮겨 가 ‘나름대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욕조에 있는 누드 (Nude by the Bath Tub)>, 1931, 출처 : http://uploads1.wikiart.org

 


-<욕조에서 쪼그리고 있는 누드 (Femme penchee)>, 1914, 출처 : http://artboom.info/painting

 


-<욕조 누드 (Nu au Tub)>, 1912, 출처 : http://artboom.info/painting

 

 

왜 ‘나름대로’ 라는 수식어가 붙었냐 하면, 사실 마르트는 정신적으로 많이 약했던 여자였다. 강박증 혹은 결벽증이 있었는지 몇 시간이고 욕조에 들어가 자신의 몸을 스펀지로 수없이 문지르곤 했다. 하지만 뮤즈가 괜히 뮤즈겠는가. 보나르는 마르트의 이런 점까지 끌어안았고 목욕을 하는 마르트의 몸짓, 세밀한 손짓 하나하나 애정을 듬뿍 담아 약 400여 장의 작품으로 마르트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나타냈다.

 

한 여자를 400여 장의 그림으로 사랑할 줄 알았던 남자여서 그랬을까. 보나르가 바라보는 창 밖의 세상은 언제나 환상적이고 몽롱하다. 그러나 보스케의 정원에 ‘갇혀서’ 마르트와 단 둘이 영원히 지내고 싶은 보나르의 마음이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보스케가 둘만의 피난처같이 느껴진달까. 하지만 신은 참 야속해서 마르트를 먼저 데려가고 말았다. 보나르는 마르트가 떠난 이후, 마르트의 침실 문을 굳게 잠그고 다신 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남은 힘과 마르트를 향한 사랑을 다 쏟아내 그의 마지막 작품인 <꽃이 핀 아몬드 나무>를 완성했다. 특이하게도 이 그림은 이젤 없이 벽에 걸어둔 채 그려졌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보나르를 방문할 때 마다 그는 허리를 굽힌 채 집중해서 붓질을 하고 있었다. 온통 빛을 내뿜고 있는 듯한 아몬드 꽃잎과 나뭇가지는 마치 살아있는 듯 너울거린다. 보나르가 일평생 그려왔던 찬란한 빛의 파동 그 자체가 아몬드 나무로 표현된 것이다.

 


-<꽃이 핀 아몬드 나무 (L'amandier en fleurs)>, 1946~1947, 출처 : http://www.wikiart.org

 

 

 

‘사랑꾼’ 보나르에게 마르트 없는 봄은 겨울보다 더 차고 시려 웠을 것이다. 다시 위의 그림 <미모사가 피어있는 아틀리에>로 돌아가보자. 왼쪽 하단에 희미하게 보이는 한 여자의 얼굴이 보이는지? 아틀리에 밖의 미모사 꽃이 바람을 타고 살랑거리는 모습을 보나르는 도저히 혼자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마음속에만 있던 마르트를 다시 그림 속으로 꺼내놓은 걸 보면.

 


-<미모사가 피어있는 아틀리에(L'atelier au mimosa)>, 1935

 

 

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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