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을 주고 사기엔 꿈이 너무 비싸요 – 패션업계 청년착취대상 시상식

15.04.27 0


새해가 되자마자 ‘열정페이’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끊이질 않았다. 영화계는 <국제시장>의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으로 ‘갑(甲)의 횡포’라는 비난의 화살을 비껴갔지만 디자인 업계는 큰 파장을 맞았다. 그 중에서도 패션 업계의 큰 손인 이상봉 디자이너는 새해벽두부터 대상을 거머쥐었다. 2015년 1월 7일, 패션노조와 청년 유니온이 공동으로 개최한 <2014 패션업계 청년착취대상 시상식>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았기 때문이다. 후보에 함께 오른 4명은 ‘비욘드 클로젯’의 고태용, ‘제너럴 아이디어’의 최범석, ‘르이’의 이승희와 ‘칼 이석태’의 이석태 로 대중의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인기 디자이너다. 수상 기념 화환까지 사무실로 도착하자 이상봉 디자이너는 자신의 ‘갑(甲)질’에 대한 사과를 공개 SNS에 게재했다. 경영자였던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반성과 자숙, 그리고 앞으로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 광화문에서 열린 2014 패션업계 청년 착취대상 시상식 장면, 출처 : http://www.newscham.net

 

- 이상봉 디자이너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사과문,  출처 : http://www.sobilife.com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디자이너들의 옷은 시즌을 맞아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디자이너 사무실에 있는 비정규직 인턴 또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올라온 채용공고에는 여전히 ‘회사 내규에 따름’, ‘협의 후 결정’이라는 급여 안내문구가 적혀있다. 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불평등한 대우에 화를 냈다. 그러나 아직도 디자이너를 꿈꾸는 젊은 ‘열정’들은 말도 안 되는 채용공고문을 연신 클릭하고 있다. 물론, 10만원에서 점점 오를 자신의 월급과 직급을 상상하며 지원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상봉에게 사과를 받은 지 ‘겨우’ 세 달이 지났지만, 결국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봉의 열정페이 논란을 둘러싼 여론에는 ‘몇몇의 유명 오너 디자이너들의 악행으로 다른 디자이너들을 몰아세워 비판하지 말라’는 의견도 적잖게 접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디자이너가 직접 품을 팔아 겨우 유지하는 브랜드도, 소수의 정규직만을 채용해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는 브랜드도 있었다. ‘한국 패션 디자이너 연합회’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열정 페이, 청년 착취’ 논란에 대한 입장은 이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 따라서 일군의 청년들이 제기한 패션디자이너업체의 비정규직 문제는
어느 특정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패션디자이너업체 전반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패션디자이너업체에만 맡겨둘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며,
본 연합회는 비정규직은 물론 정규직 채용 및 근로와 관련해 유관기관과 전문가의 협조 및 자문을 받아
패션디자이너업체들이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매뉴얼을 작성하고자 합니다.

(…중략…)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는 건설적인 문제제기는 얼마든지 경청하고, 개선을 위해 손을 맞잡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허위사실이 유포되거나 악의적으로 왜곡된다든지,
의혹제기라는 명목으로 온라인 등에서 명예 훼손적 발언들이 나온다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있는 대다수 패션디자이너들까지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본다는 점에서,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허나 디자이너들의 곡소리를 듣고 나니 뭔가 더 약이 올랐다. 원래 이쪽은 이렇게 일하는 게 ‘관례’인 것처럼, 그 디자이너처럼 성공하기 위해서는 12시간 넘도록 바느질 하는 게 ‘필수’인 것처럼. 이러한 과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현실도, 꿈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애송이로 취급받는다. 때문에 사회에 갓 발을 들여놓은 수습과 인턴들은 월급 30만원에 자신을 깎고 속이지 않으면 일을 배울 기회조차 얻을 수 없다.


-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시즌1에 출연했던 이승희의 의상과 프로필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runwaykorea

 



패션업계 착취대상 후보에 올랐던 또 한명의 디자이너 이승희. 한때는 그녀도 시간에 쫓겨 바느질을 하고 재단을 했다. 원단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녔고 밤새워 옷을 만들었다. 그렇게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녀는 런웨이에 자신의 옷을 수놓았다. 런던 쇼를 시작으로 유럽에 진출한지 4년째, 그녀는 ‘서울즈 텐서울’이라는 서울시 우수 디자이너 10명에 선정됐다. 또한, 그녀의 브랜드 ‘LEYII’는 중국 바이어에게서도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에서 옷을 만드는 이승희의 열정적인 모습을 본 디자인학도라면, 자신의 꿈을 한번쯤 그녀에게 투영해봤을 것이다.

 

그랬던 그녀는 간절히 디자이너를 꿈꾸는 어린 친구들의 시간을 한 달에 40만원으로 샀다. 인터뷰를 통해 접한 그들의 한 달은 처참했다. 그들은 한 달을 꼬박 일하고 받은 돈보다 더 많은 비용을 택시비로 지출했다. 또한 이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필수불가결한 과정이었다.

 

누군가의 고생과 노력에 ‘값’을 매겨보자는 게 아니다. 단지 이게 현실이라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가지 않는다.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꿈을 가진 청춘은 자신의 ‘삶’을 얼마나 희생해야 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 이승희 디자이너 브랜드 ‘LEYII’의 2013/14 서울 패션위크 FW 컬렉션 모습, 출처 : http://www.stylefish.co.kr

 

 

 

현재 이승희 디자이너 브랜드 ‘르이’의 코트는 59만 8000원, 최범석 디자이너 브랜드 ‘제너럴 아이디어’의 울코트는 85만 6000원이다. 식비와 교통비조차 감당할 수 없는 인턴들은 몇 달을 일해도 해당 브랜드의 옷을 사 입을 수 없다. 월급보다 비싼 원단을 나르고 세 달치 월급을 모아도 살 수 없는 옷을 바느질하며 멋진 옷을 만드는 꿈도 꿔야 한다. 때문에 인턴들은 예쁜 옷을 입고 싶은 ‘마음’과 고된 몸의 피로를 푸는 ‘쉬는 시간’까지 디자이너에게 바쳐야 한다. 열정만 헐값에 팔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유명 디자이너들이 이룬 경력에, 우리는 에누리를 줘도 너무 줬다.

 

* 메인 이미지 출처 : 비주얼다이브

 

 

정미 (Jeongmee)

일상 속의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는, 큰 손을 가진 작가를 꿈꿉니다.
정(情)과 미(美)를 찾아 정미(精微)하게 그려내는 글쓰기를 희망합니다.
instagram,com/leejeongmee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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