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담은 공간] 01. 에드워드 호퍼, <Automat>

15.05.15 0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있다. 미술관, 카페, 캠퍼스, 골목길 등. 그 장소의 감정이 환기하는 것이 그림으로 표현될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무언가가 있다. 과거의 그림이 현재에도 '동일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보고자 한다.

 

 

 

#01. 24시 카페, 에드워드 호퍼 <Automat>

 

늦은 밤에서 새벽 사이, 모두가 잠들 시간. 24시 카페는 다양한 이유로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마감을 앞두고 작업을 끝내지 못한 사람, 곧 코앞에 닥칠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 그리고 불면증을 못 이겨 밤을 새려고 나온 사람 등. 카페는 사람들로 꽉 찼지만 다들 혼자 왔기 때문인지 아무도 없는 듯 조용하다. 각자 테이블 하나, 의자 하나씩 차지한 채 새벽에도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잠잘 시간조차 아껴야하는 혹은 밤잠을 설치며 고민과 걱정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독감이 소리 없이 흐른다. 그리고 그 고독과 함께 적막한 빈 공간에 부유하는 밤 시간은 그들의 주위에서 정지한 듯 서서히 침잠한다.

 

- <Automat> 에드워드 호퍼​, 밤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1927

 

 

 

1927년에 그려진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 <Automat>은 21세기 서울, 24시 카페의 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가게 유리창에 비친 실내조명이 환하게 켜 있고 실내의 조명이 유리창에 뚜렷하게 비칠 만큼 바깥이 깜깜하다. 히터와 여인의 두꺼운 옷, 그리고 장갑을 낀 손이 늦가을 혹은 겨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왜 이 여인은 춥고 어두운 밤에 홀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일까. 한쪽 장갑만 벗은 채 커피 잔을 잡고 있는 두 손은 그녀가 잠시 이곳에 들른 것이고 곧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다리를 가지런히 모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자세와 푹 눌러쓴 모자, 그 아래 가려진 무표정한 얼굴, 커피 잔을 응시하는 공허한 눈빛이 눈에 띈다. 그리고 제목을 보는 순간, 여인의 고독감은 극대화된다.

 

<automat>. 심지어 종업원조차 없는 자동판매기 식당이다. 맞이하는 사람도 없고 마중하는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 혼자인 사람들은 혼자가 되는 고독을 재차 확인한다.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공간이기에 시간의 흐름도 정지된 듯하다.


-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 에드워드 호퍼

 

 

 

밤에도 잠들지 않는 사람들, 오롯이 혼자가 되는 시간을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들은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서 단골로 등장한다. 그래서일까. 굉장히 공허하다. 항상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지만 그 시선이 한 곳에 머물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다. 뉴요커로서 도시인의 고독감과 외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이를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에드워드 호퍼는 외부의 상황보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방법으로 고독감을 나타냈다. 외부의 상황이 인물을 외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고독감을 작품을 통해 들춰낸 것이다.

 

엄청나게 발전하는 과학 기술과 산업화 되어가는 도시, 그리고 1, 2차 대전과 대공황의 격변 속에서 삭막해지는 현실. 그러한 현실에 적응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은 그들의 내면을 향했던 것 같다. 커다랗고 빈 공간 속에서 강조되는 빈 의자, 빈 거리, 빈자리는 보는 이의 공허함으로 채워지고 응시하는 순간 완성된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무미건조함에서 쓸쓸함까지 감정의 폭이 다채롭다. 그 중에서도 특별한 것은 그가 ‘인물의 고독감’을 ‘모두의 고독감’으로 압축시킬 줄 알았다는 점이다.

 

‘모두의 고독감’이라는 말은 누구나 다 이런 고독감을 안고 산다는 뜻이다. ‘나만 외롭지 않구나.’는 느낌을 주는 그의 그림은 나와 비슷한 처지에서 나와 비슷한 감정을 공유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손을 갖다 대면 은은한 온기가 손바닥에 퍼질 것만 같다. 사실, 이러한 위로는 피부에 닿는 ‘촉각’이라기보다 내면에 느껴지는 ‘감정’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다.

 

고독은 경험해본 사람이 가장 잘 아는 것일까. 에드워드 호퍼는 계속해서 무명 화가의 신세로 서른 살까지 단 한 작품도 팔지 못했다. 그리고 40대가 돼서야 독특한 그림 스타일을 인정받았다. 그 스스로도 오랜 시간동안 고독과 싸웠던 화가는 결국 자신이 그려온 그림 속에 고독감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게 됐다.


-<cafe> 출처 : http://www.notefolio.net/ainhan7777/30364

 

 

그의 그림은 외로운 ‘나’와 외로운 ‘너’를 마주하게 한다. 잘 시간에 깨어있는 사람들로 가득 찬 카페에서 누군가와의 눈 마주침이 알 수 없는 동질감을 일으키듯 고독이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

 

 

“그리하여 밤이 밤을 밝히었다.”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솔비(Sol-B)

글을 씁니다.
기억과 공간,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를 닮은 글이 누군가에게 기억되길 바라며
나를 바꾸고 이전과 같이 생각하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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