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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 솔져(Angel Soldier) by. 이용백

15.05.18 0

 

 

 

몇 일전, 예비군 훈련에서 사고가 있었다. 그 날 밤에 이 글을 쓰려고 했으나 가해자의 유서를 보니 마음이 뒤숭숭해서 쓰지 못했다. 원래 사건 사고에 관한 유서를 찾아보지는 않는데, 그날 밤의 유서는 기존의 글과 달리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그의 유서가 유서 같지 않았다. 총과 자살, 사살에 관한 이야기만 빼면 지금의 20대들이 겪는 고민과 걱정이 담긴 일기 같았기 때문이다. 걱정거리가 있다고 해서 죄 없는 사람을 다 없애버리는 것은 명백히 옳지 않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가 담긴 유서는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우울함이란 뭘까? 내가 우울할 때는 배고프거나 자고 싶은데 잠이 안 오거나, 남과 비교되는 때이다. 그러고 보면 나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우울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기본적인 감정은 사실 누군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낸 것’이다. 나도 작년부터 이번 년도 초까지 우울함을 많이 느꼈다. 내가 사회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마음, 단절되어 있다는 그 마음 때문에. 어떤 동화나 자기 계발서에서도 훌륭한 어른들이 자신이 닥쳤던 고난을 극복한 과정을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들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몰랐다. 고난을 이기는 방법과 이 현실을 격하게 맞서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걸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도 잘 몰랐다. 환상 속에서 ‘훌륭한 어른은 죽을 때까지 훌륭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문구가 무슨 뜻인지, 훌륭하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훌륭하게만 살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건 우울함을 이겨내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사회가 나를 위태롭게 해도 사회를 격하게 안아주고 포용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잠시나마 우울함을 잊게 했다. 사실 정말 바쁘면 우울하지도 않은데 (왜냐하면 우울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바쁜 사람들도 점차 그 바쁨에 익숙해지면 다시 우울해지게 된다. 그럴 때의 특효약은 바로 공부와 독서, 예술을 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긍정적인 생각을 위한 매개체가 필요하다. 이는 논리적인 사고를 꾀하는 이론적인 것들이 아닌, 원래 가지고 있던 감성과 마음을 이끌어주는 독서와 예술이 역할을 수행한다. 왜냐하면 아주 예전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이 발달하고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기계의 힘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삶의 패턴은 변하지 않았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감정을 가지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 누군가 ‘나는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데? 밥을 먹지 않아도 되는데?’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리적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 삶은 편해졌지만, 우리의 감정은 편하지 않다. 그렇다면 ‘심플한 인간’은 존재할 수 있을까?

 



다시, 예비군 총기 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기사를 보며 흥미로운 혹은 소름이 돋는 내용을 발견했다. 총살을 한 사람은 탄알 10발 중, 한 발만 표적을 향해 쏘고 나머지를 옆 라인에 있는 사람들에게 쏘았다고 한다. 가해자는 자신의 옆에 있던 사람들의 목숨을 단숨에 앗아갔다. 그래서 나는 내가 탄 버스 옆자리의 사람을 바라봤다. 그리고 앞 사람을, 저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 폰을 내려다 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문득 스마트한 세상에서 원초적인 본능을 가진 인간이 기계의 스마트함에 맞춰가며 부정적인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버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견고한 벽을 쌓고 있는 것 같아서 불쌍했다. 이 무너질 듯 요동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용백 작가는 <Angel Soldiers>시리즈를 기획했다. 일전에 ‘G-seoul 아트 페어’에서 도슨트를 할 때도 많은 사람들은 이용백 작가의 작품에 공감했다. 영상 작업을 하는 이용백 작가는 온통 꽃으로 뒤덮인 세계와 꽃무늬 문양의 군복을 입은 세상을 그렸다. 그리고 꽃무늬 군복을 입은 100여명의 사람들과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후배와 소주잔을 기울이던 어느 날이었다. “
아, 내일 예비군 가야 하는데, 귀찮아.” 후배의 푸념에 이용백의 대답은 돌연했다.
“군복은 모두 꽃무늬로 만들어야 해.”
금세 무슨 뜻인지 눈치 챈 후배는 “좋은 아이디어”라며 손바닥을 쳤다.
이용백의 대표작 [엔젤 솔저(Angel Solider)]가 탄생하게 된 순간이었다. – 네이버캐스트

 


 

 

 

사람들을 ‘오!’ 하게 만드는 것은 항상 단순한 것에서 출발한다. 나는 예비군 총기사건을 보면서 이용백 작가의 작품이 떠올랐다. 꽃과 꽃무늬로 뒤덮인 군대라니. 가능하지 않겠지만 가능했으면 좋을 것 같다.

 


공평한 하늘 아래 하찮은 배역은 없다/ 비중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각자는 수줍은 대로 신이 선택한 배우/ 가장자리에 놓여 호되게 짓밟히다가/
세찬 바람 앞에 철썩 무릎 꿇더라도/ 새벽이슬에 기어코 소생하고야마는/
질기디 질긴 생명/ 아파도 용케 참아내며/ 슬플 때 대신 울어주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피는 그대

– 들꽃, 강명숙

 



수 많은 어려움이 있고, 인생의 매 순간이 어렵겠지만 피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더욱 격하게 꽉 안아주어야 한다. 꽉 잡은 인생의 경험들은 내가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그리고 힘이 들 때는 글과 음악과 미술을 통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느꼈으면 한다. 너무 뻣뻣하고 뻑뻑한 세상은 아니라는 것을, 조금만 다르게 보면 흐르듯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치기 쉬운 세상이기에.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처럼, 나뭇잎처럼, 아주 조금씩만 유연해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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