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정신병과 마약과 예술

15.06.25 0

 

자, 이 글을 쓰는 나는 꽤 거하게 취한 상태다. 오늘까지 장장 1주일동안 여러 가지 주제로 글을 쓰려 했지만 죄다 5줄을 넘기지 못했다. 고로, '아.. 이거 안 되겠다! 나는 모른다! 술이나 마셔버리자!' 하고 동네 술집을 다녀왔다. 친구와 통마늘닭똥집볶음을 먹었다. 쫀쫀하니 소주가 철철 넘어간다. 술집에는 500원을 넣으면 혈중 알코올농도를 측정하는 기계가 있었는데, 내 술 상대를 해 준 친구와 술값내기를 했다. 삐-삐삐- 3초간 힘찬 날숨 발사! 친구는 0.40 범칙금 천만 원, 나는야 0.18. 역시 나의 간은 위대했다. 술에 적셔지는 내내 해독하느라 힘써준 간에게 영광을 돌린다. 여하튼 낄낄대며 술값을 계산하는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내기에 져서 계산하는데 뭐가 그리 행복한지, 알딸딸한 기분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공짜 술이니까! 그런데 잠깐, 내가 이렇게 알딸딸한데 핏줄 속에 나보다 3배 더 많은 알콜이 흐르고 있는 친구는 얼마나 취한 걸까? 저 친구의 행복한 모습은 분명 술의 힘이다! 눈이 번쩍 뜨였다. 그때 당신이 내 눈을 봤다면 눈이 멀어 버렸을 거다. 왜냐면 내 눈이 미친 듯이 반짝반짝 했을 테니!

 

어디서 봤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인류의 역사를 지탱한 가장 큰 힘 두 가지를 꼽자면 종교와 술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100% 맞는 말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두 가지 모두 버거운 현실을 잠시 잊게 하는 안식처이자 도피처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이제 술을 비롯하여 마약 같은 환각성 약물과, 그와 비슷한 성분을 띄는 예술에 대해 언급할 예정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취해있다. 그러니 글이 두서없어도 이해 바란다. 취중 집필 또한 환각예술과 비스무리 한 신선한 재미일 수도 있으니까!


- 정신분열증 발병 이후 고양이 그림, 루이스 웨인, 출처 : http://www.toxel.ro/

 


- <Third Eye> 알렉스 그레이, 출처 : https://tigrepelvar3.wordpress.com/2009/01/03/


*사이키델릭 아트(psychedelic art)를 말하기 앞서 두 명의 작가를 소개한다. 루이스 웨인(Louis Wain)과 알렉스 그레이(Alex Grey)다. 루이스 웨인은 작가활동 말년에 지독한 정신분열증에 걸려 정신병원에서 여생을 보낸 화가다. 그는 발병 이전에 고양이를 의인화한 귀여운 그림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러나 정신병의 발병 이후 그린 고양이 그림들이 꽤나 그로테스크하고 사이키델릭하다. 그렇다고 그가 환각예술에 뜻을 둔 예술가였느냐? 그건 아니다. 그냥 정신병으로 투병중인 예술가였을 뿐이다.

 

* 사이키델릭 아트 (psychedelic art) : 사이키델릭이란 ‘psycho’와 ‘delicious’를 합성한 일종의 심리적 황홀 상태를 가리키는 신조어로서, 이러한 상태를 연출하는 것이 사이키델릭 아트이다. 환각 미술 혹은 일명 ‘엘에스디LSD 아트’라고도 불리며, 환각제 복용에 의한 환시와 환청 등의 체험을 재현할 것을 추구한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사이키델릭 아트 [Psychedelic Art] (세계미술용어사전, 1999., 월간미술)

 

그에 반해 알렉스 그레이는 환각예술에 뜻을 둔 아티스트다. 대부분의 사이키델릭 아트가 자극적이고 어지러운 느낌을 표현하듯, 그의 다른 그림들 역시 이런 식의 복잡하고 자극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그림과 사이키델릭 아티스트의 그림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두 그림에 차이가 있다면 한 명의 작가는 의도하지 않은 채 그림을 그렸다는 거고 다른 한 명의 작가는 철저한 계산과 의도 아래 작품을 그렸다는 것이다.


예술가는 마약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아마도 보통 사람들과 다른 시선을 가져야 한다는 통념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미치지 않은 채 미친 눈을 갖는 방법 중에 마약만한 게 있을까? 어떤 연구소에서 마약의 한 종류인 LSD를 흡입한 후, 시간대별로 자신의 얼굴을 그려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 출처 : http://www.nieuwsblad.be/cnt/DMF20131119_022?pid=2929129


여자의 핏줄에 LSD가 흐르는 동안, 여자의 정신세계에서 변해가는 ‘자기인식’을 살펴볼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LSD의 효과가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여자의 그림이 루이스 웨인과 알렉스 그레이의 작품과 유사해진다는 것이다. 전문적인 미술 트레이닝을 받지 않은 일반인의 그림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그들의 그림 속 난색(연두색, 노란색, 붉은색)의 조합과 색감은 비슷하다.

 

 

 


- 알렉스 그레이의 작품, 출처 : http://imgur.com/gallery/CpsWNJ2


그렇다면 사이키델릭 아트는 정신병 환자와 마약쟁이를 표현하는 예술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보이는 유사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맨 정신으로 그들이 보는 세계를 표현하는 예술가나, 별다른 노력 없이 세상을 그렇게 볼 수 있는 정신병환자나, 미치지 않고서도 미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마약중독자 모두 같은 색조의 우주를 표현해냈다.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 글을 통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결론을 내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냥 내가 느낀 신기함과 의문점을 당신들과 공유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써 내리는 이 글이 당신의 세상에 '아 이런 것들도 있구나!' 하고 작은 느낌표 하나를 선물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취해있다. 취했다는 말은 어떠한 문제나 상황에 대해 명확하고 올바른 결단을 내릴 수 없다는 말이다. 반대로 생각하자면, 결단을 내릴 필요가 없다는 말도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혹은 내가) 사이키델릭 아트를 볼 때 그것을 정의하고 이해하려고 고민 하지 않아도 좋다. 술에 취한 채 바라본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도 그에 관련된 여러 역학적, 물리학적, 의학적 사실에 대한 이해가 필요 없듯이 환각예술 역시 있는 그 대로 수용하면 될 일이다.

 

박차

반가워요, 박차입니다.
뇌가 섹시해지는 것을 인생의 과업으로 삼은 애정결핍증 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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