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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 사비냑(Raymond Savignac) 의 비주얼 스캔들!

15.07.13 0

* 전시장에 흐르던 배경음악. 지극히 ‘프랑스 스러운’ 선곡이었다. 재생해놓고 이 글을 읽으면 조금 더 분위기가 배가될 듯.

 

 

 

서울의 한낮 온도가 34도를 기록하던 그 날에도 홍대는 변함없이 사람으로 들끓었다. 더운 날이니 한산할 것이라 예상했던 갤러리는 예상 외로 입구부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오아시스 같은 에어컨 바람이 관람객을 이끈 것일까, 프랑스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배경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원색의 포스터가 빼곡히 전시된 레이먼 사비냑의 <비주얼 스캔들>展은 호황 그 자체였다. 주최측이 20세기 두 번째 거장으로 선정한 레이먼 사비냑(Raymond Savignac, 1907~2002)은 프랑스의 포스터 아티스트이자 광고 아트디렉터로 20세기 프랑스의 광고물이 거의 다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1950년대를 시작으로 10년 마다 구분돼 있는 작품들이 더욱 경쾌하게 느껴진 것은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원색과 (그것에서 아이디어를 따 온 것으로 보이는) 원색의 가벽 덕분이었다. 갤러리의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배치를 잘못하면 자칫 조잡해 보일 수 있는 100여 점의 수많은 작품이 제자리에 알맞게 배치되어 있었다.

- 트루빌의 집에서, 1988년의 레이먼 사비냑. 출처: http://www.wikiwand.com/en/Raymond_Savignac

 

 

 

 

마크 로스코(Mark Rothko)展에서 함께 소개된 인물이 스티브 잡스(Steve Jobs)였다면, 레이먼 사비냑은 캔버스 위의 찰리 채플린(Charles Chaplin, 1889~1977)으로 소개된다. 사비냑 본인이 채플린의 위트를 존경한다고 밝혔을 정도로 그의 작품에서는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역동감이 느껴진다. 그만큼 화면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날아가고, 이동하는 효과를 연출하는 것이 그의 특기이자 특징이다. 무엇보다 전시 초반부터 사비냑의 작품이 쉽게 눈에 들어오는데, 이는 다른 일반 회화작품과는 다르게 '제품광고'라 한 눈에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어서다. 원색과 함께 두텁고 힘찬 필치 역시 사비냑의 작품들이 몇 십 년 전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트렌디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는 이유다.


- 찰리 채플린, 출처 : https://namu.wiki/

 

 

 

전시의 대표 작품으로 선택된 <마기 포토프 (Pot-au-feu maggi)>는 사비냑의 작품을 정의하는 '비주얼 스캔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비주얼 스캔들은 ‘동떨어진 두 요소의 결합으로 충격을 주는 광고 기법’이다. ‘마기’는 우리나라의 다시다 같은 제품으로 주 원료가 되는 소가 직접 자신의 절단된 부위가 들어간 수프의 향기를 아주 감미로운 표정으로 맡으면서 귀여움과 충격을 안겨준다. 이렇듯 사비냑의 작품이 쉽게 다가오는 두 번째 이유는 광고하고자 하는 제품을 절단하거나 확대해 그 의도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빅 시리즈의 면도기 광고에서는 아주 반질반질한 얼굴과 면도기를 함께 배치한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 <마기 포토프 (Pot-au-feu maggi)> 1959, 출처 : http://scorpiocollections.com

 


- <BIC 면도기 시리즈> 1977, 출처  : http://www.lesartsdecoratifs.fr/



- <트루빌에서의 사비냑 (Savignac a Trouville)> 1986, 출처 : http://slap-boutique.com

 

 

 

 

프랑스에서 활동한 작가들에게서는 유난히 프랑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작품에 잘 드러난다. 이런 부분이 가능한 이유는 프랑스인들이 자국의 예술가들에게 퍼붓는 무한한 애정 덕분이 아닐까 싶다. 사비냑 역시 프랑스 포스터 문화의 대표주자로 포스터 아트(심지어 제품광고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아티스트라는 호칭이 붙는다.)하면 곧 사비냑, 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그가 바로 ‘대기만성’형 작가라는 것이다. 40대에 인정받기 시작해 50대부터 70대까지가 그의 전성기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유럽 전역과 미국,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활발하게 전시활동을 펼쳤다. 물론, 70년대에 이르러 유럽에 거대 광고 에이전시들이 생겨나며 사비냑같은 개인 광고 아티스트들의 입지가 좁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사비냑은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남부 프랑스의 트루빌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며 아티스트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전시 브로셔에 삽입된 <트루빌에서의 사비냑(Savignac a Trouville)>이 바로 그의 말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때부터 그는 개인 작품에 몰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그의 명성은 여전해서 ‘에르메스’같은 명품 브랜드나 유명 행사의 제작을 도맡았고 클라이언트가 없는 상태에서 제작한 수많은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 수 있을 정도였다.

 

 

 

이번 전시는 파리장식미술관, 트루빌 몬테빌로 시립미술관, 파리 푸에니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사비냑의 원화작품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여태까지 영 알 수 없는 작가의 의중이나 기법으로 어딘가 접근하기 힘들었던 전시와는 달리 쉽고 유쾌하게, 웃으며 관람할 수 있는 전시가 바로 이번 <레이먼 사비냑>展이 아닐까 한다.

 

전시기간 2015년 5월 15일 – 2015년 8월 30일
장소 KT&G 상상마당 갤러리 2층 (서울 서교동)  
관람료 7천 원 (멤버십 회원가 4천 원)
관람시간 월-목 11:00~22:00 / 금-일 10:00~22:00 (입장마감시간 21:00 / 휴관일 없음)
도슨트 월-금 오후 2,4,7시 / 토-일 오후 1,4,5,7시
문의  상상마당

 

 

김월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예술과 친근한 세상을 만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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