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딱지들을 위하여! 김영만 &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15.07.23 0

 

 

 

"우리 친구들~ 착하게 잘 자랐구나!" 아직도 세상엔 어려운 게 너무나 많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인이 됐으므로 더 이상 징징거릴 수만은 없다. 그런 우리들에게 김영만 아저씨와의 재회는 그야말로 ‘눈물 나는 일’이었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에서 김영만 아저씨와 함께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가며 다시 해본 종이 접기는 어쩐지 어린 시절 실력 그대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들에게 ‘착하다, 할 수 있다, 잘 자랐다!’고 말하는 따뜻한 음성 덕분에 우리는 지난 몇 주간 커다란 위안과 다독임을 받았다. 대학생활의 판타지를 심어준 <논스톱>의 고시생 앤디는 당시 40만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토로했지만, 2015년 현재 청년실업자는 150만 명에 육박하고 2,30대들의 인생은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에서 오포세대(+ 내 집 마련, 인간관계)로 전이됐다.


- 오포세대, 출처 : http://m.sisunnews.co.kr/

 

 

 

세상이 얼마나 팍팍하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김영만 아저씨 신드롬뿐 아니라 여러 커뮤니티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가까운 예로 '이거 알면 할매', '이거 기억나는 애들 좋아요 눌러봐' 같은 제목을 달고 있는 게시물들이 그렇다. <달려라 하니> <영심이>같은 만화에서부터 100원만 들고 가도 언제나 풍족해 우리를 결정장애의 꿈나무로 키워준 문방구 한 켠의 불량식품들, 주욱 뜯어 열심히 만들었던 편지지의 원천이었던 <와와 109>와 <Mr.K> 까지. 무한도전의 '토토가' 열풍에서부터 계속되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더없이 지금을 즐기고 있어야 할 젊은이들에게 자꾸만 아련한 추억여행을 떠나게 한다.


- 알렉산더 칼더, 출처: http://kaufmann-mercantile.com/alexander-calder/

 

 


주름진 얼굴이 자동 보정될 정도로 여전히 쾌활한 동심을 가지고 있던 김영만 아저씨를 보며 자꾸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다. 코딱지보다 더 작았던 시절, 처음으로 우리가 접했던 ‘유희거리’를 혹시 기억하는지? 눈을 감고 한번 떠올려보자. 엄마 뱃속에서 막 나와 병원 신생아실에서 잠시 수많은 산부인과 동기들과 OT를 마치고 돌아온 집, 그리고 우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됐던 그 때 우리의 머리맡을 항상 지켜주었던.. 그거! 그래, 모빌! 오늘 만나볼 누군가는 바로 모빌과 키네틱 아트의 선두주자,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1898~1976)다.


- 눈물 짓는 김영만 아저씨, 출처 : http://enews.imbc.com/News/RetrieveNewsInfo/143035

 

 

 

먼저 키네틱 아트(kinetic Art)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키네틱 아트는 작품이 움직이거나 움직이는 부분이 있는 예술 작품을 뜻한다. 그 전까지의 회화나 조각에서 ‘움직임’을 포착하려 노력했다면, 키네틱 아트는 '움직임’ 그 자체가 작품이 된 것이다. 196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키네틱 아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움직임을 일으키는 동력이 바람이나 사람의 접촉처럼 수동적인 것에서 자동적인 것으로(즉, 기계에너지나 전기를 이용해서) 변하는 양상을 띄고 있다. 그래서 모빌(mobile)은 가장 기초적인 단계의 키네틱 아트라고 할 수 있다. 원래 기계공학도였던 칼더는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예술, 즉 모빌을 만들어냈다. 처음 그에게 영감을 준 것은 철사와 서커스였다. 철사는 자유롭게 움직여 모든 것을 만들 수 있었고, 서커스는 인간의 움직임을 극한까지 볼 수 있는 유희였다. 칼더는 파리에서 함께 활동하던 동시대의 추상화가인 호안 미로(Joan Miro, 1893~1983)와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 그리고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과 함께 매주 자신의 아지트에서 직접 만든 철사 서커스를 선보였다. 칼더는 사교성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는지 이 아지트에 모이는 사람들의 부류가 다양했다고 전해진다. 화가, 소설가, 무용수, 가수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칼더의 서커스를 보기 위해 기꺼이 함께했다.

 

-모빌, 1932, 출처: http://theredlist.com

-물고기 모빌, 1944, 출처: http://theredlist.com/

- 칼더의 서커스, 1926~1931, 출처: http://www.wikiart.org/en/search/calder

 

- 칼더가 직접 진행하는 서커스

- 네 마리의 코끼리, 1961, 스톡홀름 현대미술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Alexander_Calder

 

 

 

그 중에서도 칼더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작가는 호안 미로와 피에트 몬드리안이었다. 초현실주의의 마지막 세대였던 호안 미로의 서정적이고 어딘가 아동틱한 회화는 철사그네를 밀며 즐거워하는 칼더의 동심과 딱 맞아 떨어졌다. 또한, 네덜란드에서의 우울한 신지학(神智學: 우주와 자연의 불가사의한 비밀)에서 벗어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를 접한 몬드리안의 화려한 색감 역시 칼더를 자극했다. 그래서 칼더는 그들의 작품을 3차원 세상으로 옮겨 생명을 불어넣었다. 덕분에 태어나자마자 우리는 모빌이라는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이 후, 그는 본업인 조각가로 돌아가 '스태빌(stabile)' 이라고 불리는 설치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현재 삼성미술관 <리움>의 마당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설치작품이 바로 칼더의 것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장 아르프(Jean Arp, 1887~1966)는 '움직이는 게 모빌이면 안 움직이는 건 스태빌이야?' 라며 말장난을 쳤고 그 농담은 정말로 ‘모빌’의 반의어가 되었다.


- <빨강의 승리> 칼더, 1959~63, 출처: http://artobserved.com


-<밤중의 여자와 새> 미로, 1971~1975, 출처: http://www.wikiart.org/

 

-<머큐리의 샘> 칼더, 호안 미로 미술관

- 출처: http://archigroupma.com/

 

 


귀엽고 아기자기한 그의 작품을 보고서야 김영만 아저씨가 떠오른 것은 아니다. 동영상 속에서 서커스를 직접 진두 지휘하는 칼더의 손놀림과 얼굴 표정을 보고 있자니 말로는 표현 못할 즐거움과 동심이 그대로 전해진다. 순간, “색종이를 손톱만큼만~ 자, 뒤집어서~ 이야!”하시던 김영만 아저씨의 미소와 칼더의 미소가 닮아 보인다. 칼더가 손으로 직접 만든 작은 철사 소품들, 철사 초상에는 예술을 즐거운 놀이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있는 작가 본연의 마음이 배어있다. 손에서 탄생하는 작은 소품들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의 표정과 감정을 보며 우리 역시 그 따뜻한 아기자기함에 함께 미소 짓고 위안을 받는다. 이 사실만으로 두 사람은 존재만으로 충분하다.

 

김월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예술과 친근한 세상을 만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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