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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의미 : 미학적 태도로 패션 바라보기

15.10.12 0

<구두> 고흐, 출처: http://www.arte365.kr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명품 구두에는 미학이 없다. 오직 가격만 존재할 뿐이다. 반면에 고흐의 <구두> 연작에는 미학적 감상이 담겨있다. 하이데거가 고흐의 그림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 것처럼 고흐의 구두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고단한 삶, 고흐의 삶, 당대의 사회, 자연 같은 주제들이 말이다.

 

- 출처: http://www.sandrascloset.com/tag/gucci-museo/

 

그래도 패션에 대해 짤막하게라도 글을 쓰는 나로서는 이 구두철학에 의문이 들었다. 물론, 브랜드 구두에 전통적이고 복잡한 미학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요소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저 ‘가격’만 존재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구두들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장인이 손수 만드는 유서 깊은 구두들은 바느질 한 번에 그들의 인생이 담긴다. 그들은 붓 대신 바늘과 실을 든 셈이다. 구두를 넘어 패션이라는 큰 영역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나 또한 패션이 단순히 가격표를 단 천과 지퍼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패션 자체가 우리의 인생이고-입고 벗고 고민하는 모든 순간마다 패션이 존재한다는 차원에서- 패션을 감상하며 미적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듦과 동시에 패션을 바라보는 인식이 조금 더 넓어졌다.


미적 경험을 하는 데 필요한 마음의 상태가 있다. 이것을 ‘미적 태도’라 한다. 마음은 주관적이니 당연히 미(美)는 자기 마음 속에 존재하는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미적 경험에 필요한 태도의 요소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그 중에서도 패션과 미학의 교집합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제롬 스톨니츠가 주장한 “무관심성, 공감, 관조”라 생각한다. 물론, 최근에야 미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접근이 조심스럽다. 미적 경험과 미(美)는 함부로 정의하기도 어렵거니와 아직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흥미를 가지고 배운 만큼 최대한 아는 선에서 패션과 미학의 만남을 주선해보려 한다. 배우는 사람이 직접 응용해 글을 쓰는 것도 하나의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샤넬 2015년 가을/겨울 컬렉션, 출처: http://www.luxuryfacts.com/

 

제롬 스톨니츠는 미적 태도론을 대표하는 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미적 경험을 하기 위한 세 가지 요소로 무관심성, 공감, 관조를 꼽았다. 셋 단어 모두 익숙한 단어지만 함의는 꽤나 깊다. 먼저 관조(觀照)는 감상 대상을 분석하거나 질문을 제기하지 않고 대상에 몰입해서 주목하는 것을 말한다. 즉, 어떤 예술을 바라보는 감상자의 지각이 대상 자체에만 향해있는 상태다. 패션을 바라볼 때도 이러한 태도가 필요하다. 트렌드를 하나의 옷에 주입해 어떤 요소가 이번 트렌드와 맞아 떨어지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아닌, 옷 자체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진보적인 패션 윤리관으로 이어진다. 때문에 ‘상대방이 어떤 옷을 입든 트렌드라는 잣대를 무조건 들이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관조라는 단어에서부터 출발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는 트렌드에 치중해 ‘분석 당하는 옷’을 만들지 않는다. 때문에 샤넬이라는 브랜드의 전통과 옷 자체에 대한 디자이너의 몰입이 담긴 관조적인 옷을 선보인다. 더 난해한(?) 예는 꼼데가르송의 디자이너 레이 카와쿠보(Kawakubo Rei)를 꼽을 수 있다..그녀의 꼼데가르송은 미술로 치자면 극단적인 초현실주의 작품이다. 그녀의 옷에는 현재 유행하는 -일명 웨어러블한- 트렌드는 찾아볼 수 없다. 때문에 패션이 분석대상이라기 보다 하나의 걸어 다니는 예술 작품으로 옷 자체에 주목하게 하는 힘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힘에 이끌린다. 이는 하나의 패션 브랜드가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을 받는 비결이 관조에 있는 것을 보여준다.

- 꼼데가르송 2015년 가을/겨울 컬렉션, 출처: http://www.bloginvoga.com/

- 꼼데가르송 2015년 가을/겨울 컬렉션, 출처: http://graveravens.com


- 꼼데가르송 2015년 가을/겨울 컬렉션, 출처: http://blog.daum.net/the-fashional/4570

 

꼼데가르송의 패션은 난해하다. 기성복 컬렉션이 세상에서 제일 난해한 ‘오트 쿠튀르’ 수준이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보면 기성복 패션쇼가 내세울 수 있는 디자이너의 철학과 예술의 경계선을 허물었다는 의미가 된다. 특히, 2015년 가을/겨울 컬렉션은 관객들을 삶과 죽음의 경계선으로 이끌었다. 하얀색(삶)과 검정색(죽음)이 반복되던 컬렉션은 마치 화려한 수의 같았다. 살짝 그로테스크해 보이기까지 한 새장 형태의 옷이 움직였고, 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접점을 보여주었다. 이런 해석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공감(共感)이라는 미학적 태도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공감은 대상이 우리를 이끄는 대로 몸을 내맡기는 행위다. 또한, 대상이 보여주는 대상 자체의 의미와 형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상태’다. 즉, 누군가는 꼼데가르송의 솜 뭉치 같은 드레스를 거부할 수도 있으나 미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그것은 드레스를 미적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꼼데가르송을 비롯한 패션 브랜드들이 안내하는 미의 세계에 그대로 몸을 맡기고 받아들이는 공감의 태도가 바로 패션을 바라보는 미학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올랭피아> 마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무관심성이다. 무관심성을 설명하기 위해 이번에는 패션 컬렉션이 아닌 마네의 <올랭피아>를 들여다보자. <올랭피아>는 여성의 나체가 여신(女神)과 성스러움을 표현할 때만 그리도록 허용되던 시절에 탄생했다. 그러나 정작 그림 속 여인은 여신도 아니었고 성스럽다기 보다는 대담하기까지 한 표정의 매춘부였다. 만약 <올랭피아>에 도덕적 관심을 보이며 비도덕적인 작품이라고 비난한다면 ‘작품 외 관심’을 가진 것이다. 작품을 감상하고 가치를 매긴다면 그것 또한 ‘대상 자체 외 관심’이다. 심지어 작품에 쓰인 기법과 상징을 논하는 것 역시 ‘지식적인 관심’일 뿐이다. 즉, 무관심성이란 기존의 무관심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비유하자면 ‘Free from interest’ 라고 풀어야 맞을 것이다. 이렇듯, 대상에 대한 세속적인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것이 미학적 태도의 세 가지 요소 중 마지막인 무관심성이다.


패션을 구경하고 글을 읽으며 알면 알수록 이런 무관심성이 패션의 영역에서 꼭 필요한 요소임을 체감하고 있다. 물론, 트렌드를 읽고 마케팅을 논하는 것이 상업적으로 아주 중요하다는 것에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모든 출발은 어떤 세속적인 관심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관심이다. 패션은 ‘경제적인 관심’과 ‘지식적인 관심’ 등, 많은 관심이 섞인 예술인 동시에 무관심이 존재한다. 세속적인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패션은 패션의 영역에서 일하고 싶은 이들에게 순수한 영감을 주고 일상에서 패션을 만났을 때 진정으로 패션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 A.F.반데보스트(A.F.Vandevorst)의 2015년 가을/겨울 컬렉션, 출처: https://screwitimfierce.wordpress.com

 

- A.F.반데보스트(A.F.Vandevorst)의 2015년 가을/겨울 컬렉션.,
출처: http://www.theskinnybeep.com/2015/06


- A.F.반데보스트(A.F.Vandevorst)의 2015년 가을/겨울 컬렉션. 페인트 퍼포먼스의 주인공인 밴드,
출처: http://anibundel.com/2015/03/09

 

그러나 미학자 조지 디키가 비판한 것처럼,무관심성에만 주목하고 다른 요소들을 배제하면 오히려 올바른 감상과 이해를 저해할 수 있다. A.F.반데보스트(A.F.Vandevorst)의 2015년 가을/겨울 컬렉션이 그 중 하나다. 반데보스트의 모델들이 낀 마스크와 독수리 모자 그리고 옷은 디자이너들의 생각을 보여주기에는 1% 부족하다. 때문에 모델의 옷과 음악을 연주하던 밴드에게 페인트를 뿌리는 등의 퍼포먼스가 컬렉션을 100%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패션의 순수함을 무관심성을 통해 지켜내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패션은 완벽히 세속적인 것과 분리된 예술이 아니기에 조지 디키의 관점 또한 섬세히 적용시켜야 한다.


미학과 패션의 공통점이 있다면 배우고 즐길수록 더 많은 궁금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시대는 점점 패션에 대한 가볍고 밝은 텍스트를 원하지만, 그런 글 역시 패션에 대한 깊이 있는 궁금증에서 출발한 것이라 생각한다. 원체 공부하는 게 가장 쉬웠던 성격이 아닌데도 계속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걸 보면 패션은 참 무궁무진한 의미를 가진 단어인가보다.

 

Lyla

오아시스와 에드워드 호퍼, 이브 생 로랑과 아제딘 알라이아를 사랑합니다.
많은 일을 경험해보고 싶고 이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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