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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도 익숙한 : 먹으로 만든 이야기

15.10.19 0

 

머릿속이 복잡한 날엔 가벼운 외투를 챙겨 문 밖을 나선다. 목적 없이 걷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생각이 정리된다. 하루 중 절반을 보내는 회사가 가로수 길에 있다는 것도 큰 축복이다. 건물만 빠져나오면 개성이 흠뻑 묻어나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고, ‘핫하다.’는 아이템들을 거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으니. 저녁 약속이 없는 날은 일부러 먼 길을 돌아 골목 곳곳을 돌아보기도 하는데, 숨겨진 보석들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즐거움이 배가 된다. 최근 이여운의 <원더랜드>展이 그랬다.

<청마와 용머리>

 

<백담사>

<백련사와 심마니>

<금산사 미륵전>, 모든 작품 출처: http://gallerykoo.com/wonderland/



3층에 위치한 갤러리. 9월 한 달간 진행된 이 전시는 들어서는 순간 작품 하나 하나를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미 15회 이상의 개인전을 연 바 있는 이여운 작가는 도시의 외관이나 건축물을 먹을 활용해 캔버스 안에 담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금산사 미륵전>, <월정사 수광전> 등 절 시리즈를 선보였다. 세필을 활용해 여러 번 색감을 쌓아가는 표현법은 은은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먹’이라는 재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지보다 캔버스 천을 택한 것도 작품에 무게감을 실은 중요한 요소다. 스며들지 않은 채, 차곡차곡 쌓아 만든 작품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그래서 자꾸만 가까이 들여다보게 된다.

 

<악당 조커 선생상>

<악당 배트맨 선생상>

<왕의 초상>

<막강 이인조 슈렉 앤 동키도> 

 



그렇다면, 재료가 아닌 소재가 달라지면 어떨까. 이여운 작가의 작품을 보며 떠오른 작가가 있다. 2005년 데뷔하자마자 신예로 주목 받은 ‘손동현’작가다. 그는 영화 속 캐릭터는 물론, 세계적인 스타까지 그 동안 시도하지 않은 파격적인 소재를 택했다. 동양화의 전통적인 초상화 방식과 잘 어울릴까,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친숙한 캐릭터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작품에 쉽게 공감했고 가깝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한 인터뷰를 통해 독특한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김홍도가 현 시대를 산다면 무엇을 그렸을까 고민했어요.”

 

답변에는 당대의 모습을 전통적인 표현법을 통해 조화롭게 구성하고자 하는 그의 고민이 느껴졌다.

 

<코카콜라>, 모든 작품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여운 작가의 작품들을 만난 후, 가로수 길의 풍경이 조금은 달라 보였다. 갤러리 앞에는 지난 달, 여행지에서 봤던 소품들이 이곳 저곳 요란하게 디스플레이 돼 있었다. 그 나라에서만 살 수 있다는 말에 한 개 필요한 걸 두 세 개씩 담아왔는데 괜한 짓을 했구나 싶었다. 우린 하나뿐인 것에 더욱 특별함을 느끼니까.

독특한 ‘하나’를 위해 재료는 물론 소재까지도 세심하게 고르는 두 작가의 작품들이 앞으로 어떻게 확장되어 갈지 궁금하다.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시선은 훨씬 더 넓어질 것만 같다.

 

손수

놓치고 싶지 않은 일상
때로는 글 때로는 그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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