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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라는 존재

15.10.23 0

<Portrait of the artist's father> Marcel Duchamp

 

나의 아버지는 스스로를 ‘노가다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건축 관련 일을 하다 보니 항상 현장에 있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술을 많이 마시고 나를 많이 혼냈고, 엄마와도 많이 싸우고 회사도 많이 옮겼던 사람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몇 달 쉬는 그를 보면 나는 항상 패닉이 왔다. 이모부나 다른 친구들의 아빠를 비교하면서 나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고, 솔직히 이해 하기도 싫었다. 부모님의 부부싸움을 본 기억은 아직도 내가 어떤 상황이 오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 내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 갇히는데 일조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감성적이어서 그랬을지 몰라도 부모님이 싸움을 하면 삶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기분을 느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동생에게 그들의 관계를 에둘러 말하며 울곤 했다. 어떻게 보면 ‘애정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가장 어려웠는데 그렇기에 나는 그것을 보상받고자 으레 애정이 부족한 아이들, 혹은 자의식이 낮은 아이들이 그러하듯 친구들 앞에서는 아주 착실하고 세상을 밝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둔갑했다. 그리고 그게 나의 성격이라고 믿었지만, 자의식이 올라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는 예상대로 대학원을 간다고 했을 때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회 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은 감히 내게 말하지 못했던 독설을 내게 허락도 없이 내뱉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웠지만, 그 독설을 막아서고자 고군분투했다.

<Portrait of The Artist's Father painting> Jules Bastien Lepage (쥘 바스티앙 레파주, 1848년-1884년) : 프랑스의 화가. 단비레에서 출생, 파리에서 사망. 정확하고 엄밀한 소묘력을 지녔으며 밀레와 쿠르베의 자연주의 영향을 받았고, 때로는 마네의 예술과도 가깝게 보인다.

 

그런데 요즘은 아버지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하고 있다. 사람은 나이가 먹으면 자기가 가졌던 많은 것들을 누그러뜨리는 모양이다. 평생 외로움을 느꼈던 아버지는, 당신이 나온 남고의 동창회에 참석해 다시 친구들을 만나 즐거워졌다. 그리고 카카오톡 속 귀여운 이모티콘은 그가 감정을 쉽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아버지는 이제 <아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기도 한다. 항상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고 2주일에 한 번씩 집에 왔던 탓에, 아버지와 나는 이렇다 할 큰 추억이 없다. 그래서인지 부녀의 추억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을 보고 그도 애교 많은 딸을 원하는 것 같아 마음이 시렸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점점 없어지는 지금의 내가 덜 바빠지는 방법을 찾아야 할지 궁금해졌다. 날카롭게 얼어 나를 다치게 하던 아버지의 화는 요즘은 아주 조금씩 해동되고 있다.

 

<R. H. La Thangue (Portrait of the Artist's Father)> Henry Herbert La Thangue (헨리 허버트 라 생: 국적 영국, 출생-사망 1859년~1929년, 사실주의 화가)

 

<Portrait of my father> Salvador Dali (살바도르 달리)


그러면서 아버지에 대해 생각했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 아버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버지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자, 나는 아버지에 대해 그리 많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아가야 할 지 솔직히 막막하다.

 

<Portrait of the Artist's Father> Paul Cézanne (폴 세잔)



현대미술을 시작했다는 ‘폴 세잔(Paul Cézanne)’의 아버지는 은행가여서 세잔의 그림과 그의 정부와 아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완강히 반대하는 아버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근 30년간 무명으로 지내면서 그의 친구였던 에밀 졸라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그리곤 했다. 다행히 그림과 예술에 조예가 깊은 어머니 덕분에 30년의 긴 무명 생활에도 집에서 내쫓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 유약해지기 시작했을 때, 세잔에게도 유산을 나누어줘 중년의 세잔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상황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부정(父情)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폴 세잔의 첫 그림을 사준 사람도 아버지였다.

 

<Portrait of the Artist's Father> Gustave Courbet (귀스타브 쿠르베)



그에 반해 ‘귀스타브 쿠르베(Jean-Désiré Gustave Courbet)’의 아버지는 아들의 의견을 듣는 사람이었다. 쿠르베의 부모님은 아들이 법률 공부를 하길 바래 파리에 보냈다. 그러나 법률 공부보다는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쿠르베가 아버지에게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자, 아버지는 쿠르베의 물질적인 측면을 모두 지원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후로 쿠르베는 그림 공부와 살롱전에 출품할 작품에 몰두할 수 있었다.

쿠르베의 아버지는 아들답게 ‘신(新)남성’의 면모를 보인다. 그들의 삶이 1800년대이니, 지금과 200년의 차이가 나는데도 부모님들의 모습과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이렇게 비슷하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결국 그 시대를 사는 모두가 꿈을 걱정하고 미래를 걱정하고, 부모님과의 불화를 겪고 밥을 먹고, 친구를 만난다. 그러니 인간의 형상을 갖고 태어난 존재들은 모두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부모님이 된다면, 진심으로 쿠르베의 아버지처럼 나의 자식의 꿈을 열렬히 지원해줄 수 있을까? 부모는 언제나 자녀의 안녕과 존재의 안정이 최우선이기에 자녀의 도전이 그들을 항상 불안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하지는 못해도, 쿠르베의 아버지처럼 적어도 자신의 자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식은 나와 모든 것이 다른 또 다른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Portrait of My Father> Frida Kahlo (프리다 칼로)

 

 


한 걸음도 다가 설 수 없었던 내 마음을 알아 주기를 얼마나 바라고 바래 왔는지, 눈물이 말해 준다.
점점 멀어져 가버린 쓸쓸했던 뒷모습에 내 가슴이 다시 아파온다.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 싶다.
가까이에 있어도, 다가서지 못했던 그래 내가 미워했었다.
점점 멀어져 가버린 쓸쓸했던 뒷모습에 내 가슴이 다시 아파온다.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 싶다.
가까이에 있어도, 다가서지 못했던 그래 내가 미워했었다.
긴 시간이 지나도 말하지 못했었던, 그래 내가 사랑했었다.


– <아버지> 인순이

 

 

나의 아버지는, 스스로를 노가다 판에서 일한다고 말하는 그는 또 가족이 아무도 없는 현장에 내려가 일을 시작할 것이다. 폴 세잔의 아버지에서 쿠르베의 아버지의 모습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나의 아버지는, 요즘 나를 이해하려고 무던히도 애쓰는 듯 하다. 그 모습이 나는 참 고맙다. 가끔, 공부하고 있는 내게 다른 방에서 보내는 아빠의 ‘사랑한다’는 메시지의 카카오톡은 내가 굳이 선택해서 하는 공부가 나를 지치게 할 때 나를 다잡게 해주는 힘이 된다. (물론 아직은 일반적으로 고맙다는 답장밖에는 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카카오톡의 도움 없이, 우리가 서로 우리의 수줍은 마음을 직접 이야기 하고, 인순이의 노래처럼 과거가 아닌 현재에 서로가 마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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