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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과 판타지 그리고 앤 해밀턴(Ann Hamilton)

16.01.06 0



서른이 됐다. 갑작스러운 ‘서른’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 나름의 낭만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새해를 맞이했다. 어릴 때 생각했던 서른은 지금의 모습과 달랐던 것 같은데,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조금 가까워지고자 1월 1일 새해부터 <어린왕자>를 조조로 관람했다. 생텍쥐페리의 유명한 소설을 영화로 만든 이 영화는 포스터도 예쁘고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 좋아 선택했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다 갉아진 것 같은 나의 감정을 다시 끌어 올릴 수 있기를 바랐다.



- 어린 왕자 포스터 

인생 스케줄을 모두 짜놓은 엄마와 그 밑의 착실한 딸이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이사를 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이야기와 많이 다르지 않다. 물론, 어린 왕자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인다는 점과 그의 할아버지가 <어린왕자>에 나오는 조종사였다는 사실이 새롭기는 하다. 이야기가 꽤 전개된 것 같아 시계를 보니 시작한지 한 시간 남짓이다. 나머지 한 시간은 어떤 이야기로 버틸까 궁금하던 찰나, 갑자기 성인이 된 ‘어린 왕자’가 등장했다. 효율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며 사장의 눈에 잘 띄기 위해서 노력하는, 눈 아래가 퀭한 어린 왕자였다. 병이 든 조종사 할아버지가 애타게 찾은 어린왕자와 그가 살고 있는 도시는 참혹할 정도로 흙빛이었다. 어른들은 눈에 맥이 빠진 채로 돌아다니고 사장은 ‘쓸모없는 것을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가 모았던 ‘쓸모없는 것’이란 다름 아닌 하늘에 떠있는 별이었다. 생텍쥐페리의 소설에 나온 각각의 별을 지키던 사람들을 현실성 있게 만들어놓으니 그 현실감에 기분이 애매해졌다. 애니메이션을 보는데 이렇게 힘이 빠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어린 왕자는 어릴 때의 모습과 꿈을 기억해 그의 작은 소행성을 지키는 왕자가 된다. 그리고 많은 애니메이션의 끝이 그러하듯, 주인공은 자기의 일상으로 찾아와 조종사 할아버지와의 우정을 지속한다.



- 영화 <어린왕자>

영화는 아침에 보기에는 좀 지루했고, 특히 의미를 느끼고자 선택한 영화로써는 많이 졸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눈에 띄는 회색빛 얼굴의 ‘어른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혹시 지금의 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쓸모없는 것이라고 규정되어 온 많은 것들이 실은 내 인생에서 꼭 필요한 것이었을까 과거를 되돌아봤다. 새해를 맞으며 다른 년도와는 유난히 다른 중압감과 부담감을 느꼈는데 아무래도 숫자에 부가된 부담감 때문이었다. 그 또한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무기력해졌다. 그리고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슬럼프라면 슬럼프일까? 공부를 하면서 내 인생이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느끼는 부분들이 있었고 그런 것들이 죄책감으로 다가오곤 했다. ‘나는 지금 이렇게 어른답지 못하게 살아도 되는 걸까?’ 라고 많이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이 빨래 개듯 인생을 착착 살아나가는 게 부러워 보이기도 했다. 선택한 것은 후회하지 않아야 하는데 자꾸 뒤를 돌아보는 내가 부끄러웠지만, 내가 선택해 온 길이 너무나 뒤엉켜있는 것 같아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미술사를 공부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생각했다. 그 누구도 답할 수 없지만,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꼭 알아야 하는 질문이 매번 못이 되어 나를 짓눌렀다.





그러나 영화를 보며 느낀 점은 효율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 좀비처럼 살고 있지만, 다들 마음속에는 어릴 때의 판타지를 기억하고 있다. 예술은 어릴 적의 판타지를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도와준다. 예술은 그 판타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당신의 인생이 옳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앤 해밀턴(Ann Hamilton)의 <The event of a thread>은 일상에서 판타지를 느낄 수 있는 작업이다. 그녀는 그네를 이용해 판타지를 실현했다. 아직도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면 그 순간만큼은 하늘을 나는 것 같지 않은가. 아주 큰 공간에서 흰 천은 바람을 타고 펄럭인다. 그녀의 작업 속, 아무 무늬도 없는 흰 천이 살랑거릴 때 관객들은 그네를 타며 바람을 느낀다. 그네를 타지 않는 사람들은 흰 천 아래 누워 여유를 만끽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일상의 판타지는 사람들을 현실로 하여금 지켜준다. 팍팍하고 날카로운 현실이 그들을 덮칠 때, 흰 천과 바람, 그리고 그네는 그들에게 삶의 방패막을 만들어준다. 그래서일까? 앤 해밀턴의 그네를 타는 사람들은 모두 꿈속을 거니는 것 같은 표정을 지닌다. 행복해 보인다. 그 순간만큼은 웃을 수 있게 해주는 것, 그 순간에 몰입하게 해주는 것, 그게 무엇일까 하고 사고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미술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 무기고였던 파크애버뉴아모리(Park Avenue Armory)에서 열린 앤 해밀턴(Ann Hamilton)의 대규모 인터렉티브 설치 작업이 뉴욕에서 화제를 모았다. 바닥까지 드리워진 거대한 하얀 커튼이 5천 평 넘는 ‘웨이드 톰슨 드릴 홀(Wade Thompson Drill Hall)’을 드라마틱하게 반으로 가른다. 관객은 곳곳에 드리워진 42개의 나무 그네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혼자 타는 사람, 친구 혹은 연인과 함께 타는 사람, 딸을 밀어주는 엄마 등 가지각색이다. 커튼 바로 아래는 일종의 캠프촌을 형성하고 있다. 많은 관객이 바닥에 편안한 자세로 누워 너울거리는 커튼의 풍경을 밑에서 감상한다. 뉴욕에서는 탁 트인 실내 공간을 만나기 힘들기 때문에 이 정도 규모의 인스톨레이션은 마치 신기루처럼 느껴진다.

– 앤 해밀턴展, 출처: 아트앤컬쳐





예전에는 서른이 되면 어릴 적에 먹던 떡볶이가 맛이 없어지고 <성공시대>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저 ‘지치지 않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어른이 될수록 일상을 판타지처럼 느끼는 것, 일상에서 판타지를 잃어버리지 않고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느낀다. 이 글과 함께 나의 서른의 문을 활짝 연다. 더 이상 효율에 목숨 걸지 않는 내가 되기를, 다시금 내 안의 감정을 소중히 하는 어른이 되도록 서른을 맞이한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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