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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와 허상, 발레리 블랑(Valerie Belin)

16.01.22 0

<Still life with mirror>

얼마 전 읽은 신문 기사에서 아이들의 장래희망 중 공무원이 적지 않은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읽는 내내 공무원이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알고는 있을까 궁금했지만 몇 십 년 전의 아이들이 ‘대통령, 의사, 과학자’를 꿈으로 삼았던 과거와는 달리 많은 아이들이 ‘안정적인 공무원’을 꿈꾼다는 사실에 씁쓸해졌다. 아마도 부모님이 주입한 장래희망이겠지. 하기야 꿈이 사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누굴 탓할 수는 없지만, 모순적이게도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읽히는 책 중에는 반기문, 김연아, 유재석 등 자신만의 꿈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어릴 때는 ‘꿈꾸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막상 아이들이 꿈을 꿀 때는 ‘안정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가르치는 학생 중, 아주 어릴 때부터 ‘검사’가 꿈이라는 아이에게 ‘검사’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물으면 아이는 대답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이들에게 <5급 공무원이 되는 방법>같은 자기계발서를 읽어주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still life with dish>

<still life with mask>


하지만 ‘꿈’은 아름답기에 우리는 아이들이 ‘꿈을 가진 공무원’으로 자라도록 교육한다. 가히 낭만적이다. 그렇게 ‘낭만적인 오해’ 안에서 자란 아이들은 낭만적으로, 계속 계속 자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낭만은 인위적이라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라지 못한다. 학원만 다니며 엄마 차 안에 갇혀 ‘가려진 진실’만을 배우게 된다. 허상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그 누구도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기에 만들어지는 것. 아니, 오히려 그것들이 모여 더욱 ‘진한 진실’을 만들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허상이란 진실의 반대가 아닌, 진실의 직시일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없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어머님들도 무엇이 옳은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건 ‘인위적인 허상’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자랄 수 없다는 것이다.

<Mask>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지 못한 것들은 모두 떨어져 나간다는 사실을 배웠다. 자연스럽지 못한 생각은 자연스럽지 못한 글이 되고, 결국 자연스럽지 못한 결과로 마무리 된다는 것을 오롯이 느낀 것이다. 특히, 그 자연스러움은 ‘시간의 절대량’에 비례한다. 급하게 결과물을 내면 급함이 모두 글에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급한 사고에는 자연스러움이 흘러 들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급하게 짜맞춰진 생각은 그만큼 부서지기 쉽다. 강이 잘 얼어붙은 것 같이 보이지만 가운데 부분이 얇은 얼음으로 뒤덮여있는 것처럼, 아마 정신이라는 것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그 안 쪽까지 견고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 이다. 결국, 우리는 겉을 견고하게 보이기 위해 얇디 얇은 내면을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외로운 사람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사랑을 하고 있어도 외롭고, 혼자 있어도 외롭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을 1988년이 배경인 드라마에 열광하고, 흉흉한 살인사건에 댓글로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삶이 모두 인위적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Bodybuilder>

프랑스 사진 작가인 ‘발레리 블랑(Valerie Belin)’은 이런 인위적인 모습들을 사진에 표현했다. 1964년 프랑스 파리의 외곽인 블론뉴 빌랑꾸흐에서 태어나 현재 파리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프랑스 부흐쥬의 국립미술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파리1대학에서 예술철학으로 학사를 받은 후 19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 출처: 월간 사진, 2009년 3월호 

<Bodybuilder>

<Mannequin>


사람처럼 보이지만 생명이 없는 마네킹과 사람의 얼굴을 가졌지만 영혼이 없는 마스크들은 인간의 형상을 한 허상이다. 표정과 생각을 알 수 없는 저것들 사이에서 감정이 자유롭고 사소한 일에도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 인간은 오히려 불필요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차갑고 날카로운 저 모습들이 요즘 우리 사회에도 자주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은 왜일까? 내 팔을 툭툭 치고 가는 세상의 차가움, 사람들의 인위적인 모습들이 잠시 기억에 스친다. 성(性)의 구분이 없어진 듯한 보디빌더들의 근육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오일을 잔뜩 바른 구릿빛의 피부에 ‘자연’은 없다. 마치 사람이 아닌 듯 보이기도 한다.

<Mask>


나는 좀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이러한 시대에 아주 나약한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바싹 말라 금이 간 땅을 봉합하는 흐르는 물처럼 나 역시 숨통 트이는 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인위적인 것들을 접합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연스러움뿐이다. 나는 점점 척박해져만 가는 세상에서 진득한 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인위와 허상에서 오는 허무함을 이기기 위한 방법은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는 것이다. 추운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깨질 것 같은 쨍한 햇살, 밥 짓는 소리, 할머니, 친구의 웃음, 연필소리, 전화 통화, 따뜻한 차, 진심 같은 것들이 이 시대를 구원할 수 있다. 그리고 점점 엷어져 가는 이 모든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 이 감정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할 것이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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