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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신문수와 김춘수의 <꽃>이야기

16.02.05 2

 

어린 시절, 글과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아버지의 책장에 꽂혀있던 노트를 꺼내보길 좋아했다. 아주 어릴 때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노트 속에는 굵고 거친 선으로 그린 꽃과 새, 사람들이 있었고 간혹 만년필로 적힌 아빠의 시(時)도 있었다. 아빠의 노트를 훔쳐보는 게 재미있던 건 아마도 아빠의 글과 어수룩한 그림을 통해 태어나 처음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껴서인 것 같다. 

 


<만화일기> 시리즈 일부, 출처: http://www.book4949.co.kr/


맹꽁이서당, 출처: http://www.lgchallengers.com/


같은 이유 때문인지 유아기 때의 나는 ‘명랑만화’를 참 좋아했다. 지면의 2/3는 그림, 1/3은 글자로 채워진 ‘그림동화 덕후’이기도 했지만 어수룩하게 생긴 ‘꺼벙이’의 <만화일기>시리즈나 캐릭터 ‘허풍이’, <맹꽁이 서당> 속 아이들을 좋아했다. 모두 다 다른 작가의 그림이었지만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겉보기에 쉽게(?) 생겼지만 정작 따라 그리기엔 어려운 캐릭터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1997년 5월 4일, 만화가 신문수 아저씨를 우연찮게 조우하는 일이 있었다.

 

 

만화가 신문수, 출처: http://navercast.naver.com/


엄마는 이른 아침부터 오빠와 나를 데리고 종로에 갔다. 지금은 세종대왕이 있는 광화문에 이순신 장군 동상만 자리했을 때 일이다. 동상은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있던 것보다 훨씬 커서 신기한 마음에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곧장 교보문고에 갔다. 당시의 교보문고는 지금보다 더 작고 낡았을 텐데, 내 머릿속에는 ‘엄청나게’ 큰 서점으로 기억하고 있다. 바로 다음날이 어린이 날인지라 서점에는 또래 아이들로 넘쳐났다.

한창 명랑만화에 빠져있던 내게 엄마는 <만화 이솝이야기>를 사주셨다. 만화도 만화지만 마침 또 <이솝우화>나 <탈무드>에 심취해있던 탓에 ‘인생을 사는 지혜’를 얻어 볼까하고 흔쾌히 초이스한 것이다. 사실, ‘왜 하필 그 책인데?’라고 계속해서 묻는다면, 그 날 어린이 날 행사로 신문수 저자의 사인회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솔직히 말하겠다. <만화 이솝이야기> 첫 장에 직접 그림을 그린 작가의 사인이 있다니! 8살 초딩에겐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렇게 신문수 아저씨의 사인을 받기 위하여, 결의에 찬 표정으로 줄을 섰다. 오빠는 이미 다른 코너로 이탈한지 오래였다. 그렇게 홀로 줄에 떠밀려 신문수 아저씨의 사인을 받았다.

 

 

당시 구입한 <만화 이솝이야기> 신문수, 두산동아, 1996.08.20에 출간.


‘이름이 뭐죠?’하는 아저씨의 물음에, 여전히 습관처럼 하는 멘트대로 “김해인이요. ’해‘는 바다 해(海)” 라고 답했다. 아저씨는 만화 속에 나오는 꺼벙이를 홀짝 그리시더니 ‘김해인 어진이’라고 쓰셨다. 순간 신문수 아저씨가 경이롭게 보였다. 나는 그저 내 이름만 말했을 뿐인데, 아저씨는 신기하게도 오빠 이름까지 써주신 것이다. ‘역시 어른들은 모르는 게 없구나!’는 뿌듯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아빠에게 만화가 아저씨가 내 이름을 정확하게 써주고, 덩달아 오빠 이름도 써줬다고 자랑을 했다. 책 앞장을 펼치며 보여드리니 아빠가 조용히 웃으셨다. “이건 ‘김해인 어진이’가 아니고 ‘김해인 어린이’라고 쓴 거야. 글자 공부 다시 해야겠다!” 그 순간, 왠지 모를 실망감과 배신감이 물밀듯 몰려왔다.



<만화 이솝이야기>中, 염치없는 낙타와 주인


친오빠 이름은 ‘김어진이’ 네 글자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끝에 ‘이’자(字)도 이름인지 모르고 ‘김어진’이라 부른다. 또, 처음 만난 사람들은 내 이름이 ‘김혜인’인 줄 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바다 해(海), 아이(ㅐ) ‘해’자요!”라고 습관처럼 말하곤 한다. 그러던 그 때, 우리 남매의 이름을 정확하게, 그것도 여타부타 설명 없이도 바르게 써주는 사람이 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하찮고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어린 나는 누군가가 내 이름을, 그리고 오빠의 이름까지 정확히 부르고 써주는 게 감동이었던 모양이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아마 당시의 나는, 만화가 아저씨의 부름에 의해 ‘잠시나마’ 꽃이 되었나 보다. 누군가의 정확한 부름에 ‘내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또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처음 경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와 생각해보니 내가 아주 잠깐 동안만 ‘꽃’이 된 건 아닌가 보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우리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준 만화가 아저씨를 이렇듯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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