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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절대 고독, 김종학 화백

16.02.11 0

출처: http://www.imagian.net/board_essay/detail.asp?serial=604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스스로 삶을 제어하며 살아갈까?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이 아주 부드럽게 모난 것 없이 이뤄진다고 믿어본 게 언제일까? 사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 생각부터 말, 시선, 감정 기복, 웃음까지. 나는 점차 ‘내가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을 제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흘러가기만 할 뿐, 우리는 그 어느 것도 붙잡을 수가 없다. 지금 당장을 아주 잠깐만 멈추고 싶어도 1분 1초는 지나가고 있으므로 어떨 때면 문득 그 시간들이 아쉽게 느껴지기만 한다. 


출처: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61247871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은 일이 통제가 되지 않는 건 아마도 내 인생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 나와 연결된 수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높은 나이대의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고 앞으로 나가기 때문에 스스로 많은 것들을 제어하려 한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드라마 <내딸 금사월>의 ‘오혜상’이라는 캐릭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미친 듯이 화를 낸다- 를 보면, 그녀는 항상 자신을 통제하지 못해 사람들을 악다구니로 해하려 한다. 나쁜 일을 했다가 다시 나쁜 일을 생각하기까지의 시간이 아주 짧다. 그건 자존심일까? 아니면 저 멀리 날아가 버린 자존감의 찌꺼기일까? 이 일에서 저 일로 넘어가는 순간에 잠깐이라도 자기반성을 했다면 그녀의 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그러나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 저렇겠지.’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될 때도 있다. 모두가 나를 손가락질 할 때, 나마저 스스로를 몰아붙이면 현실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출처: http://www.hyundaihwarang.com


그럴 때면, 절대적인 고독이 생긴다. 그리고는 같은 언어로 대화해도 허무함을 느끼는 관계를 정리하고 싶어진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마음 속에 하나씩 큰 돌을 이고 산다. 그 큰 돌은 누구에게나 무겁기 때문에 모두들 자기긍정을 외치며 노력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그저 혼자 있고 싶다.


출처: http://people.incruit.com/news/newsview.asp?newsno=2462471


때론 ‘절대적인 고독’을 느끼고 싶어 새벽에 명상을 해보았다. 그런데 명상을 하면 괜히 몸이 싸-해지고 요동치는 마음만 느껴져서 도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 우연히 김종학 작가의 <설경>을 통해 절대적인 고독을 온 몸으로 느꼈다. 회색 빛 하늘과 밝은 달, 그리고 달과 하늘을 받치고 있는듯한 눈 덮인 산 봉우리들. 그렇게 능선을 따라 주욱 내려오면 빽빽한 나무들이 세밀하게 서있다. 인간은 그 나무의 중간 정도 되려나. 

그림을 보며 (마치 전우치가 족자에 그려진 당나귀를 그림 밖으로 불러내 그림 속으로 다시 들어갔듯) 나도 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 적막한 봉우리를 거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저 나무 옆의 회색 빛 산과 달빛을 받아 하얗게 반사되는 봉우리를 넘어 달이 있는 곳까지 말이다. 그런데 상상에 이르고 나니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단지 모니터에서 본 그림일 뿐인데, 작가의 작품에는 끌어당김이 있었다.

출처: http://www.kimchonghak.com/ko/artwork.html


김종학 작가의 작품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설악산이 녹아있다. 각 계절마다 느껴지는 설악산의 정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 그래서 아름답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나를 안아줄 것 같다. 자연은 정말 그런 존재인 것 같다. 1930년대 생인 작가는 마흔 즈음 설악산으로 들어갔다.


“1979년에 내가 이혼을 했어요. 서울대 나왔으니 잘나가는 작가여야 하는데 무명 생활을 오래 하지, 돈은 못 벌지… 그만 이혼을 당한 거야. 우리 형님이 날더러 설악산에 작은 집이 한 채 있으니 거기 내려가 있으래요. 설악산에 귀향 간 셈이지. 내가 살던 집을 떠나올 때 우리 딸이 그걸 봤어요. 얘가 국민학교 5학년이었는데 가게에서 칫솔이니 수건이니 그런 걸사서 이삿짐 트럭에다 던져 넣더라고. 그러고는 막 쫓아오다가 주저앉아 울어요.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죽 울면서 대관령까지 왔는데, 동해가 보이니까 마음이 좀 시원해지더라고. 그 해 겨울은 죽음을 생각할 만큼 괴로웠어요.”

-<행복이 가득한 집> 2012년 5월호, 츌처: http://happy.designhouse.co.kr

 

죽음을 떠올렸던 겨울이 지나자 설악산에는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폈다. 작가는 봄의 야생화를 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앵포르멜 사조를 선호하던 그는, 꽃 그림을 그리며 ‘꽃 그림은 이발소에 걸리는 것’이라는 몹쓸 이야기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설악산의 향기를 그림으로 담았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수많은 꽃들은 정제된 느낌의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자연 본연의 모습이다. 꽃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바람에 맞춰 춤추고 있다. 그가 그린 설경도 마찬가지다. 생각해보건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모습이 이런 게 아닐까. 그 누가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을 흐드러지게 꽃피우면서 말이다. 김종학의 그림은 마치 인간의 ‘절대 고독’을 지지하는 것 같다.


출처: http://news462.ndsoft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6425


현재 여든을 넘긴 작가는 하루에도 몇 시간씩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김종학 화백작품 속에 등장하는 자연은 고독을 무시하지도, 숨기지도 않는다. 다만 흘러가는 대로 경험하고 느낄 뿐이다. 인간은 참으로 나약해서 자연의 큰 뜻을 모두 읽어내지는 못한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고독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고독을 대면하는 것이 삶의 격을 높이는 방법이라 말한다. 적막한 고독이 그리운 하루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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