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Column  /  십사

진부한 외로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6.02.25 2

Hotel Window, 1955

한낮의 카페는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과외 시간이 붕 떠 앉아 있던 한 카페에서 아주머니들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오후의 대화를 엿듣게 됐다. 아주머니들은, 아니 그 여성분들은 굉장히 즐겁게 서로의 외모를 칭찬하고 여행지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일부러 들으려는 것은 아니었고, 그분들의 목소리가 워낙 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렸던 대화였다.

한 40분정도 지났을까, 나는 끼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다음 과외를 가기 위해 자리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들의 대화 내용이 바뀐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주제는 남편에 대한 이야기와 대학원에서 석•박사 공부를 하는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자신이 왜 대학원을 다니지 않는지, 공부는 왜 어려운지, 박사 하는 친구가 힘든 이유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주제가 남편과의 여행으로 바뀌던 찰나에 어떤 분이 갑자기 “이번에 유럽에 갔는데 남편한테 유적들을 좀 보라고 해도 안 봐서 외로웠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옆의 여자 분이 “그게 뭐가 외로워~ 같이 가주는 게 어디야! 나는 지겨운 시간들이 외로워.”라며 응수했다. 그들의 대화는 순식간에 사그러드는 불처럼 끝이 났다. 그 이야기 후 그들은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깔깔대면서 다른 디저트 카페를 찾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는 그들에게서 방배동의 화려함에 감춰졌던 민 낯을 본 기분이었다. 

Railroad Sunset, 1929

Carolina Morning, 1955


처음에 그분들의 대화를 듣고 ‘외롭다’는 감정을 저런 때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말을 곱씹어 볼수록 ‘외롭다’는 말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원하던 대로 할 수 없을 때, 다른 사람이 내 맘 같지 않을 때, 그 것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닐 때, 아마도 우리는 혼자라는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만이 겪어 나갈 수 있는 그 많은 일들을 다른 사람들이 항상 응원해주고 격려해주고 지켜봐 주기를 바라지만, 세상은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어쩌면 사람은 성숙해질수록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닐까. 어릴 때는 모두 한 덩어리 같던 것들이 점점 각각의 개체로 쪼개진다. 

Automat, 1927

Morning In a City, 1944


어쩌면 인간에게 외로움은 항상 따라오는 수식어인 듯싶다. (이 말조차도 진부하다.) 그렇지만 이 진부함이 계속 수긍되는 건 인간에게 외로움이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런 인간의 외로움을 그려낸 화가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다. 말 그대로 ‘진부한 외로움’에 딱 어울리는 그림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은 양차대전 사이에 미국 도시민들의 삶을 특징지었던 고독감과 절망감을 환기시킨다. 그의 작품 속 장소들은 커다랗고 텅 빈 공간과 자연광과 인공과의 대조로 인해 황량하고 삭막해 보인다. 호퍼의 대중적 인기는 평범한 일상을 시간을 초월한 듯한 장면으로 표현할 줄 알았던 그의 능력에 기인한다. 그는 일상적인 모습을 인간 조건에 관한 의미심장한 진술로 바꾸어놓았다. 호퍼는 유화 작품으로 가장 잘 알려졌지만, 그에 못지않게 수채화와 에칭에도 뛰어났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High Noon, 1949

진부하다 못해 눅눅하고, 오래된 껌처럼 끈끈하게 붙어있는 외로움이 나타난 그림이다.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그의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외로움을 잘 표현해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호퍼의 그림을 보면, 우리 인생에는 빈틈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빈틈은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빈틈이다. 빈 곳들은 스스로가 메워가야 하는 공간인데, 아마도 그 공간이 주는 외로움을 견뎌내며 사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위대한 화가로 꼽히는 호퍼도 1906년에 대학을 졸업한 이후 광고회사에 취직했다가 전업작가가 되었지만 1923년까지 무명화가로 작품을 팔지 못했다. 아마 그의 고독한 마음이 작품에 잘 표현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파리에서 유행하던 입체주의를 보고도 감흥을 갖지 못하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사실주의 풍을 버리지 않았다. 누구든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고독과 기다림, 그리고 자신을 믿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Nighthawks, 1942

Chop Suey, 1929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中


타인의 이해를 바라는 것도 욕심이라면, 카페에 있던 여성분은 꽤 큰 욕심을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 욕심이 커질수록 외로움도 커지는 법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나아가는 연습을 한다면, 우리의 진부한 외로움이 조금은 덜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