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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흔적, 임민욱 <만일(萬一)의 약속>

16.03.11 0

Bigdata, 출처: http://www.muycomputerpro.com

 

“SNS는 인생의 낭비다.”라는 말이 있지만 이미 우리의 일상은 SNS와 함께 가고 있다. 아니, 오히려 인터넷의 사용과 함께 일상의 기억이 모조리 기록되는 점도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과거, 혹은 내 친구의 과거까지도 어제 일처럼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FACEBOOK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았을 때 한 도둑이 어떤 사람의 페이스북을 보고 여행 중이라는 것을 알아 빈집털이를 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이렇게 인터넷에 남은 우리의 정보는 ‘빅데이터(bigdata)’라불리며 개인정보가 손쉽게 남의 손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우리의 흔적은 가지각색의 형태로 남아있다. 어떤 대리운전 기사는 술 취한 고객이 집 주소를 모르자, 그의 네비게이션에 남아있던 주소를 물색해 집에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것들은 정말 극단적인 경우지만 우리는 여전히 모든 것을 (스스로는 알지 못하지만) 기록하고 있다. 꼭 필요한 것들만 기록되기를 바라지만 요즘 세상은 우선 순위 없이 나의 모든 것을 기록한다. 그리고 흔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간파 당한다.

- 온 카와라의 작품, 출처: http://magazine.notefolio.net/column/on_kawara

 

그렇다면 흔적이란 무엇일까? 내가 지나온 거취, 나의 사람들, 나의 관심사 등, ‘흔적’의 다른 말은 ‘나의 인생’이다. 미래는 아직 모르지만 과거부터 층층이 쌓아온 내가 그 흔적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흔적에서 빠질 수 없는 작가가 바로 ‘온 카와라’다. 이전에도 글을 한 번 썼었지만, 온 카와라는 자신의 모든 것들을 기록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몇 시에 일어났는지, 오늘이 어떤 날인지, 오늘 어떤 기사가 실렸는지 기록한 것이다.

<I went> On Kawara


위의 작품은 <I WENT>시리즈 중 하나로, 온 카와라가 그날 자신이 다녔던 장소를 지도에 표시한 것이다. 나의 기록, 나의 흔적. 한 장의 지도가 그의 모든 것들을 말해줄 수는 없지만, 이것들이 축적되면 큰 힘을 발휘해 작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래서 과거를 보면 그 사람의 앞날을 조금은 추측해볼 수 있다.

개인이 가진 흔적이라는 범위에서 그 범위를 가족, 친구, 동료, 학교 사람들, 나이별, 성별 등등으로 넓혀가다 보면 우리나라, 그리고 ‘전 세계’라는 카테고리를 만난다. 전 세계의 흔적은 역사(歷史)이고, 우리나라의 흔적은 ‘우리나라의 역사’일 것이다. 그런데 이 역사라는 흔적은 개인적이지 않기에 필요한 부분들만 공유되고 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껴안을 용기가 없는 걸까? 아니면,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는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애써 기억을 덜어내고 있는 것일까?

온 카와라의 개인의 흔적과는 조금 다르게, 이번 임민욱 작가의 개인전, <만일(萬一)의 약속>을 보며 내가 잊고 있었던, 그리고 우리가 잊고 있던 나라의 흔적을 보았다. 바로 1983년에 이뤄진 KBS<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이었다.

- 52분 부터 

작가는 이 장면을 편집해 큰 스크린으로 보여주었다. 좌, 우로 보이는 희망과 약간의 불신, 그리고 간절한 마음을 담은 얼굴이 비출 땐 참으로 인상 깊었다. 당시 10만 여명의 신청자 중에서 1/10인 1만명만이 가족을 찾을 수 있었던 그 때, 작가는 남은 9만명의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했다고 한다. 영상에서는 1·4 후퇴 시 헤어진 가족을 찾는 사람들도 나왔는데, 그 때는 나의 할머니도 피난을 나온 때라 그 분들의 만남에 더욱 심장이 요동쳤다. 이 영상은 유네스코 기록 유산에 등재가 됐다. 너무나도 많은 감정을 몰고 오는 이 장면이 박제된 과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지 않을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아직 몇 십 년도 채 되지 않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흔적을 이로써 덜어낸 것 일수도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실종되고 결여된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모두들 앞을 보고 나아가지만, 중요한 건 우리의 흔적이다. 그리고 모든 흔적을 기억할 수 없다면,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흔적의 우선순위가 될 것이다.

 

2012~2013년 슬럼프에 빠졌어요. 그런데 보도연맹 관련 유해 발굴지와 증언자들을 보면서 개인적 연관성과 더불어 “이것이 국가란 말인가”에 대한 질문에 더 세게 엮이게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죽은 나무에 물 붓기’같은 뉴스룸 형식을 띤 작업들이 나왔고, 반은 사람이자 반은 자연인 오브제 작업들이 이어졌지요. 그러면서 질문은 근대화에 뿌리박은 이분법적 사유가 분단국가의 미디어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로 번져갔어요. 그 때 ‘분리’가 아니라 ‘만남의 장’이었던 방송국을 떠올리게 된 거죠.

- 재현당시의 사진 출처: KBS http://office.kbs.co.kr/mylovekbs/archives/152612

이산가족들이 점령한 방송국, 그 강렬했던 순간들은 감성을 다르게 배치했던 미디어의 역사적 사건이었어요. 그러나 그 방송은 시간이 흐르고 시스템을 찾아가면서 다시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현장으로 돌아갔지요. 그런데 리서치를 하다가 마침〈KBS 이산 가족 찾기-1983 생방송〉을 인류 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해 재현하는 현장을 보게 되었어요. 역사를 재현의 대상으로 다루고 있었던 거지요. 마네킹들을 사용한 상황 재현과 사연판 복사 설치, 그리고 당시 김동건 아나운서와 닮은 분장을 한 아나운서의 연기모습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이 초현실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그 때 촬영한 것을 전시장에서 짧게 보실 수 있었던 겁니다.

〈만일의 약속〉은 이 흩어진 공동체가 점령한 방송국 현장이길 바라면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KBS 이산가족찾기’ 방송을 일종의 회전축으로 바라보고 편집한 거예요. 〈만일의 약속〉이 실황이라면 이것을 중심으로 계속 잃어버린 누군가를 찾아주려는 상상의 방송국이 있고 기억과 사라진 존재들을 연결하는 거죠. 시간을 뛰어넘는 감각의 미디어를 상상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슬픔의 끝에서 작업을 통해 다른 흐름의 가능성을 열어주고자 하는 것이 저의 미디어에 대한 생각입니다.”

- 출처: 미술세계 <임민욱 작가 인터뷰>中 

 

앞서 실종과 결여에 관심이 있다고 했던 작가는, 그 전에도 사람들에게 ‘흔적’만이 남겨져 있는 ‘폐허’와 ‘버려진 것’에 관심을 두었다. 이 작품은 <포터블 키퍼(portable-keeper)>라는 작품인데, 작가가 만든 오브제가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누군가에게는 버려진 공간, 누군가에게는 쓸모 없는 공간으로만 남아있는 공간의 과거와 미래를 서로 연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에게 ‘결여’란 ‘새로운 채움’이다.

<포터블 키퍼(Portable Keeper)>  

 

퍼포먼스 장소로 선택된 곳은 폐허와 공사장이라는 간극이 공존하는 모래내 시장 근처였다. 어느 추장의 주술적 오브제와 닮아있는 ‘Portable Keeper’, 이 휴대용 지킴이는 미래가 ‘이미’ 와있는 과거를 ‘지금 여기’로 이송한다. 좌표에 따르지 않고 좌표를 남기지도 않으면서 단지 출몰한다. 시인 이원은 ‘중심을 지운 것들은 전신이 날개’라고 썼다. 포터블 키퍼는 잊혀진 시공간을 매개시키는 풍경의 무기이자 대화의 시작, 그리고 흩어진 세계를 잇는 운송수단이다.

- 출처: 임민욱 작가 홈페이지

 

또한 그녀가 선택한 또 다른 작업은 ‘열 감지 카메라’를 사용한 것이다. 미술관의 도슨트가 설명해준 영상의 내용은, 아주 차가운 바닥을 사람이 손으로 몇 번 문질러주면 바닥의 색이 변한다는 것이었다. 즉 바닥이 사람의 열을 ‘느꼈다/혹은 감지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만큼 흔적이란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손의 무게>라는 작업인데 여기서도 열감지 카메라를 사용한 작업을 볼 수 있다.

 

작가의 작품을 보며 주변의 모든 것을 새롭게 보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되새겼다. 잊혀진 것은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 새로운 기억의 창조를 도와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새롭게 태어나는 나의, 우리의, 세계의 결여를 그저 땅에 묻어버리지 않고 꺼내 보아야 하는 게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아마 그것들이 우리에게 새 역사를 만드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 모든 사진은 플라토미술관작가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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