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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돌아, 어디니? 내 목소리 들리니?

16.04.05 0

출처 : GDX태양 Goodboy 뮤직비디오, 2015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 캡쳐

 

그의 회귀를 처음으로 목격했던 시점은 몇 년 전이다. 애타게 기다리던 GD와 태양의 싱글 앨범 <Good boy> 뮤직비디오를 본 날이었다. 아니 본인들의 생년인 ‘88’을 이렇게 써먹다니. 스냅백에는 서울 올림픽 로고와 호돌이가 떡하니 박혀 있다. Seoul이라는 글자와 호돌이가 뿜어내는 익숙함 때문일까, 갖고 싶어졌다. 그 이후에도 그들은 동갑인 광희와 함께 무도 가요제에서 ‘88’과 관련된 것들을 잔뜩 들고 나와서는 남들과 다른 ‘팔자’임을 과시했다. 그리고 그해 연말 방영된 <응답하라 1988>에서 정봉 오빠는 가슴에 호돌이를 안고 브라운관에 등장했다.

 

 

호돌이 티셔츠를 입은 <응답하라 1988> 출연진, 출처: <응답하라 1988> 페이스 북

 

누군가의 서랍 속 인형으로, 앨범 속 우표로, 옷장 속 배지로, 맥주 컵 로고로 20년 넘게 박혀있었던 호돌이는 어느 날 갑자기 후드와 티셔츠에 그려져 불티나게 팔렸다. 그 티를 입는 친구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상모를 돌리고 있었던 호돌이다. 아마 호돌이는 자신을 입고 있는 20대에게 묻고 싶을 것이다. “넌 누구길래 나를 아니?” 어느 덧 서른 살이 넘은 호돌이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호돌이가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시기가 ‘88올림픽’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돌이가 1988년에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진짜 출생년도는 1983년이다. 지명공모를 통해 당선된 호돌이는 본격적인 데뷔를 앞두고 올림픽조직위원회와 동물전문가, 김현 디자이너의 힘을 합쳐 약 9개월간의 변신 과정을 거쳤다. 긴 여정 끝에 호돌이는 83년 11월 공식 마스코트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김현디자이너가 스케치했던 동그란 배와 전체적으로 푸근했던 외형은 사라지고, 강한 윤곽선으로 몸과 다리를 단순히 표현함으로써 통일감과 조형미를 더했다.


김현 디자이너가 그린 호돌이 초안, 출처: <네이버 캐스트> 김현 

              

공식 마스코트가 된 모습. 훨씬 또렷하고 단순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출처: 서울 올림픽 기념관

 

서울의 ‘S’를 그리는 농악대 상모모자와 맞아떨어지는 도형 같은 몸매, 승리의 ‘V’를 그리는 손을 보고 있으면 ‘자와 컴퍼스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려낼 수 있어!’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는 80년대 당시 우표, 엽서, 포스터나 포장디자인에 사용되었던 그래픽 디자인 트렌드를 호돌이에 고스란히 반영했기 때문이다. 당시 순수미술과 디자인을 구분하기 위해 디자이너들이 가장 중시했던 요소는 ‘조형미’였다. 김현, 김교만, 나재오 등으로 대표되는 80년대 그래픽 디자인은 포스터칼라, 자, 컴퍼스, 실크스크린 등 도형으로만 구성된 평면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요소가 순수미술에서 추구하지 않는, 디자인에서만 구축 가능한 ‘조형미’라 여겼다.

 

 



호돌이와 88서울 올림픽 휘장, 출처: 상상발전소

호돌이는 마스코트와 휘장사업을 통해 88년도를 ‘호돌이의 해’로 만들었다. 서울올림픽에서만 자그마치 712억원의 수입을 벌어들인 그는 문구와 과자, 음료, 생필품 등에 인쇄되어 불티나게 팔렸다. 심지어 호돌이 통장이 생겨나고 매달 ‘15’일이 호돌이의 날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호돌이의 전성기는 올림픽대로처럼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서울올림픽 마스코트로 지정되기 직전 호돌이는 미국 켈로그사의 ‘토니’로부터 유사하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시리얼에는 나타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토니와의 싸움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집안 구석구석까지 상모를 돌리며 활약하던 호돌이는 언제 잊혔는지도 모르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그렇게 11살이 되던 94년, 호돌이는 슬하에 서울시의 마스코트, 이름하야 ‘왕범’이라는 자식도 놓게 된다. 하지만 더 이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한 채 호순이, 왕범이와 함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꿈돌이, 출처: 대전엑스포 39 기념화사업 

 

88올림픽을 위해 조성된 올림픽조직위원회는 올림픽이 끝난 뒤 호돌이를 데려가지 않은 채 해체되었고, 호돌이의 주인은 국민체육진흥공단으로 바뀌었다. 때문에 음료나 크레파스, 컵과 옷에 호돌이를 박아 팔았던 사장님들은 새 주인에게 허락받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호돌이는 점점 상모 돌릴 곳이 사라져갔고, 93년에 호돌이 아빠 김현은 둘째 꿈돌이를 낳았다. 이후 시간이 지나 정부는 호돌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었고, 호돌이 아들 왕범이는 서울시 마스코트 자리를 해치에게 내주었다. 그렇게 2010년이 밝았다.

 

 

 

종목별 응원단장 모습, 출처: http://www.kns.tv

 

2009년 대통령 직속기구로 국가브랜드위원회가 출범하고, 이후 2009년 한국디자인문화재단에서 호돌이를 디자인 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 2010년, 이전의 호돌이 응원단은 '한국호돌이문화재단'으로 새 단장하면서, 호돌이는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해 바지런히 뛰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호돌이는 뭘 하고 있을까, 웹 사이트를 뒤져봤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한국호랑이문화재단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찾았으나 14명이 구독하고 있었고, 2011년 이후로는 활동내역도 없었다. 링크되어 있는 사이트마저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PRRC1936에서 디자인한 호돌이의 모습
출처: PRIVATE ROAD RUNNING CLUB

 

작년 말 호돌이가 달리는 모습이 그려진 티를 내놓은 PRRC1936(Private Road Running Club, 1936은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한 해)는 원래 클럽 구성원만을 위해 호돌이 에디션을 한정판으로 제작했다. 끊임없는 생산요청 이메일에 PRRC1936에서는 추가 제작을 통해 호돌이 티를 온라인으로 판매했고, 뛰는 것과 상관없이 호돌이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적지 않은 가격을 주고 후드를 구매했다. 심지어 호돌이 한정판 후드를 ‘중고로운 평화나라’에서 미친 사람처럼 찾아다녔다는 후기도 볼 수 있었다. 이 인기를 접한 다른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재빨리 호돌이를 그린 제품들을 내놓았고, 길에서는 누군가의 동그란 배 위에서, 모자 위에서 뛰고 있는 호돌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88년 절찬리에 판매되었던 호돌이 인형과 호돌이 코카콜라컵, 오비맥주잔
출처: <응답하라 1988> 페이스 북, 
http://blog.naver.com/deeplove1213

 

찬장 구석, 책상 서랍, 할아버지 장롱 안 깊숙이 숨어있던 호돌이들은 2-30대의 추억템으로 응답하러 2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타임캡슐 안에 누워있던 호돌이에 대해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설명해주는 이가 하나도 없다. 호돌이를 검색하면 호돌이 문화재단 이사장이 사기혐의로 구속됐다, 정봉 역을 맡은 안재홍이 어렸을 때 호돌이 티를 입었다, 호돌이 맥주잔을 13000원에 팔겠다는 등의 글밖에 보이지 않는다. 호돌이에 매겨진 금액들을 보며 얼마 있지 않아 호돌이는 다시 옷장 안, 의류수거함 깊숙이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왼) <88올림픽 공식포스터>조영제, 1985 (우)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마스코트 호돌이> 김현, 1983, 출처: http://m.designdb.com


88년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호돌이의 진짜 모습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한 건 스냅백을 쓰고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PRRC의 호돌이도 아니고, 기아 타이거즈의 호돌이도 아니다. 80년대 전성기를 보낸 호돌이가 왜 전혀 사후 관리되지 않은 채 ‘슈가맨’이 되어버렸는지 제대로 된 설명을 듣고 싶다. 호순이는 왜 한복만 입고 경기는 안 했는지, 뱃살을 늘려 푸근한 디자인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지, 묻고 싶은 것이 많다. 일단 제일 먼저 호돌아, 어디에 있니? 내 목소리는 들리니?

 

 

정미 (Jeongmee)

일상 속의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는, 큰 손을 가진 작가를 꿈꿉니다.
정(情)과 미(美)를 찾아 정미(精微)하게 그려내는 글쓰기를 희망합니다.
instagram,com/leejeongmee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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